동이 채 뜨기전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차가운 방바닥, 이른아침 눈을 뜬 그녀는 아무말없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느릿하고 구부정한 몸으로 비틀거리며 침침한 눈으로 수도를 찾는다.
나이 90의 노년의 그녀이지만 눈빛만은 흔들림없이 한곳을 응시한다.
-감사패 ........
...
..... 공로자 박창섭-
'얼어뒤질 영감....아침부터 어딜갔는지...'
욕을 한바가지 하고싶은 그녀였으나 이내 고개를 돌려 대접에 물을 받는다.

"또옥...또옥...또옥..."
아마 물탱크에 남은 마지막 물이었으리라.
한대접 물을 받은 그녀는 구부정한 몸을 더욱 숙여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결국엔 설탕봉지를 찾아낸다.
숟가락으로 푸욱 퍼낸 설탕을 대접에 한움큼 쏟아내 끼니로 쓸 아침식사를 만들어낸 그녀이지만 감사패를 다시 흘겨본 후 이내 씽크대에 쏟아버렸다.

아침식사를 영감에 대한 분노로 해결한 그녀는 동트기 직전의 거리로 나선다.

"달그락 달그락...." 구부정한 몸으로 유모차를 끌던 그녀는 이내 힘이 달려 인도에 쪼그려 앉아본다.
쌔앵 쌔앵 달리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그녀에게 경고하지만 아무소리도 안들리는듯 가만히 앉아있는다.

도로 반대편의 폐지수거처로 가야하는데 횡단보도 까지는 아무래도 너무 멀다고 느껴진 그녀는 이내 결심한듯 느릿느릿 몸을 다시 일으킨다.

"빌어먹을 영감....."

주름이 가득한 그녀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그녀의 유모차 안은 텅 빈채로 달그락거렸으며,
유모차를 꽉 잡은 그녀의 손이 발발 떨리다 이내 사그라든다.

"영감...습아....나 너 없이 남은삶 다 산다 해도 의미없다....내가 우째사노?...어릴때 우리가 했었던 약속 기억나제?..
한날 한시에 같이 가기로 했던거?...근데....내가....나 화연이가 욕심이 많아 세상에 하루만 더 있다가는거 습아 너는 이해하지?...사랑해 영감...창습아..."

18살의 소녀로 돌아간 그녀는 눈을 꽉 감았다.
눈물이 비집고 나와 얼굴이 눈물콧물 범벅이 되었지만, 새어나오는 소리는 죄다 삼켜버린 그녀였지만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구부정한 몸을 이끌고 도로가운데로 느릿느릿 걸어간 그녀는 이내 18살의 아름다운 꽃 한송이가 되어 떨어져 버렸다.

뒤이어 울리는 경적들이 그녀를 위로해주고 많은 사람들이 뛰쳐나와 그녀 가는길 배웅해주었다.

80전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