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집 근처에는 새로 도로를 만들고 있었다.

워낙에 시골 마을이었기에 특별한 이벤트가 없던 아이들은

도로를 만들기 위한 공사 현장에 흥미를 보였고 한쪽에 쌓인 건축 자재 주변에서 놀곤 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도로를 건설하려면 지하 수도를 먼저 파낸다.

그리고 지하에 콘크리트 파이프를 심는다.

아직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기에 차들은 다닐 수 없었고 일하는 어른들만 없다면 그곳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가 되었다.

지하 입구와 출구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고 그사이에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담력 시험이라는 명분으로, [동굴 탐험]이라 부르며 그 터널을 통과하는 놀이를 했다.

파이프의 길이는 30m 정도로 기억한다.

중간중간에 지상의 빛이 들어오는 구간이 있지만 대부분 터널 안은 어두웠다.

구멍은 작았기에 어린아이여도 기어가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다 같이 이어서 기어가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한 사람씩 통과하기로 했다.

가위바위보를 하며 순서를 정했고 나는 마지막 차례가 되었다.

하나둘 통과하고 내 차례가 되었다.

밝은 입구로 들어가 어두운 공간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출구에서 애들이 나를 기다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체력이 넘쳐도 계속 기어다니면 지치기 마련이었다.

중간에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저벅저벅'

나는 분명히 멈춰있는데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꼴찌인 나를 놀리기 위해 애들이 장난치나?'

이런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기어 온다.

중간중간 환한 부분을 지나갈 때 겨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누구의 얼굴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동네 친구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계속 기어나가는 것뿐.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목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출구를 향해 기어갔다.

중간중간 팔에 힘이 빠져 앞으로 자빠지기도 했다.

뒤에 따라오는 상대는 지치지도 않는지 속도가 줄어들지 않은 채 내 뒤를 쫓아왔다.

나는 흐느끼며 앞만 보고 기어갔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 소리에 대답할 신경이 없었다.

내가 출구에 가까워지는 것보다 [그것]이 내 뒤에 다가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중얼거림도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마침내 출구에 도달했을 때, 내 발목이 잡히는 느낌이 났다.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야! 왜 빨리 안 나와?]

밖에서 한참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자.

친구 A가 출구로 내려온 것.

나는 그제야 안심함을 느끼고 뒤를 두리번거렸다.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인 듯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