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30여년 전이었을 거다.

10살 언저리의 꼬마였던 시기는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이었고, 하교 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터나 동네를 누비며 뛰놀던 시절.

그 날도 실컷 놀고 집에 갈 친구들은 보내고 부모님이 늦게 오시는 친구와 나. 단 둘만 남았다.

친구는 자기네 집에서 놀자고 했고 부모님이 퇴근하시기까지 2시간 가량의 여유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친구들 중에 형편이 좋은 편에 속했던 친구네는 이것저것 갖고 놀만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는 친구의 3살 막내여동생이 가지고 노는 인형도 있었다.

그 인형은 건전지가 들어있고 주사를 놓으면 울음을 터트리는 인형이었는데, 우리는 본래 용도가 아닌, 프로레슬링의 기술대상으로 써먹었다.

그 당시 헐크호건과 워리어, 빅보스맨 등은 대적할 자가 없는 우상이었고 친구는 헐크호건, 나는 워리어로 변하여 신나게 레슬링 기술을 썼다.

로프반동, 찹, 수플렉스, 호박찧기 등등...

그러다가 친구가 로프반동 이후 바디슬램으로 인형을 내팽겨쳤는데 인형이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 길게 우는 인형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친구 여동생의 인형은 제법 길게 울다가 울음을 멈췄다.

친구와 그만할까?하는 눈빛 교환 후 시계를 봤는데 아직 시간은 40여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

좀 더 놀기로 하고 다시 인형을 던지고 때리며 놀다가 이번엔 내가 인형을 바닥에 세게 떨어뜨렸다.

인형은 또 울기 시작했고 그칠 기미가 없었다.

너무 시끄러운 울음에 우리는 배터리를 빼기 위해 인형을 들고 옷을 벗긴 뒤 등 쪽에 장착된 배터리 커버를 열었는데

AA건전지 4개가 들어가는 배터리 통에는 아무런 건전지도 없었다.

친구는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인형을 집어 던졌고 바닥을 두어번 튕기며 날아간 인형을 그새 울음을 그쳤다.

친구의 떨리는 손. 커진 눈.

고장난 로봇처럼 나를 향해 삐걱이는 고개를 돌렸다.

난 던져진 인형을 보고 친구를 봤다. 다시 인형에게로. 친구에게로. 옮겨지는 시선.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저녁7시.

부모님이 집에 오시기까지 1시간 전.

친구에게 말했다.

"인형이 고장났었나보네. 근데 난 집에 가야되는데..."

친구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어...어..."

나의 부모님은 엄한 편이셨고, 오시기 전에 내가 집청소를 해야 되는 걸 친구도 알고 있엇다.

"너네 엄마랑 아빠는 언제 오시는데?"

"어...이제 좀 있으면 오실거야."

"그래. 재밌게 놀았고 내일 또 놀자. 난 먼저 가볼게."

난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도망치듯 친구네 집을 빠져나왔고,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와 만났지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을 꺼내지 않았다.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과 무서웠던 마음이 어지럽게 뒤섞여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친구는 며칠 뒤에 전학을 갔다.

친구도 무서웠겠지... 하지만 나도 너무 무서웠어.

친구가 전학 간 이후. 친구가 없는 하교 후는 재미없었고 난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발견한 친구 여동생의 인형.

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