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 :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소리나 기색.



누군가 당신에게 특기를 물어본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는가?

나의 경우는 '딱히 없어요'라고 말하며 넘기곤 한다.

사실 '없다'라기 보다는 특기라고 말하기 애매하다.

나의 특기는 [인기척을 느끼는 것].

그게 무슨 특기인가? 하고 되물을 수 있지만.

남들보다 예민함을 타고났기에 유독 인기척을 잘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을 특기라 말하기에는 민망하지 않은가.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할 적에는 제법 유용했지만, 이제는 그럴 나이도 한참 지났다.

가끔 회사 복도에서 보기 싫은 상사를 피할 때 종종 활용할 뿐이다.
（나는 그들의 발소리까지 외우곤 했다.）

딱 한 번.

그런 예민한 감각을 원망하던 사건이 있었다.

오래전 겨울밤,

오랜만에 만난 죽마고우들과 새벽 가까이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끝나고 친구들과 사는 위치가 달랐던 나는 홀로 집으로 가고 있었다.

시골인지라 택시는 잡히지 않았고 결국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중간쯤 도달했을 때, 추운 날씨 탓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마신 술 탓인지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잠깐 생각하고는 근처에 [개방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발걸음을 옮겨 화장실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도착한 건물은 이미 불이 꺼져있었다.

잠시 좌절했으나 화장실로 가는 통로는 열려있었다.

약하게나마 주황 불이 화장실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겨우 2칸짜리 작은 화장실이었다.

첫째 칸은 잠겨있었고, 바로 옆 칸으로 들어갔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큰일을 해결했다.

그런데 휴지가 애매하다.

나는 옆 칸에 칸막이를 통해 노크를 했다.

- 똑똑

"저기요, 혹시 휴지 남으면 조금 줄 수 있나요?“

반응이 없다.

- 똑똑

"저기요?"

역시나 반응이 없었다.

화장실 안에서 잠이라도 들었나?

아니면 민망해서 대답을 안 하는 건가?

속으로 '너무하다'는 생각을 하며 뒤처리를 했다.

다행히 남은 휴지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볼일이 끝나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바지를 입고 나오려는데.

그때, 하필이면 그때,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나왔어야 했는데….

내 머릿속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옆 칸에 있는 사람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거지?'

분명 나보다 먼저 왔던 것이 분명하다.

내가 건물 안을 들어가는 동안 남이 들어가는 것을 못 봤으니까.

그렇다면 화장실에 들어간 지 꽤 지났다는 얘기다.

서서히 술이 깨면서 내 특기가 발동하고 말았다.

인기척 느끼기.

그러나

느껴지지 않는다.

그 순간, 소름이 돋고 술이 다 깨버렸다.

더 이상 이곳이 편안하지 않았다.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칸막이 문을 열자

끼긱- 하는 문소리가 크게 생겼다.

그 소리가 건물 전체를 울리는 듯했다.

잠시 '내가 잘 못 알았나?' 싶었다.

급히 들어가느라 옆 칸이 잠겼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면서 세면대로 향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씻었다.

정면에 거울을 통해 잠겼다고 생각한 칸을 보았다.

착각이 아니다.

내가 들어갔을 때 본 것처럼 그 칸은 잠겨있었다.

역시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저곳은 왜 잠겨있는 거지.

다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때 객기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인간은 호기심 때문에 일찍 죽는다고 했던가?

나는 그 정체를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신 것은 없다고 확신하고 싶었던 것 같다.

화장실이 오래된 탓에 경첩이 붙은 쪽에 작은 틈이 있었다.

그 틈을 살짝 보았다.

자세히 안 보였지만 실루엣 하나가 내가 있었던 칸막이 쪽으로 기울여 있었다.

뭔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고, 잠꼬대 같은 소리가 들린 듯 했다.

나는 안심하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착각한 것이 틀림없어. 술 때문에 특기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거야.'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분명 취객일 것이다.

추위와 자연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잠든 게 분명했다.

그래야만 했다.

다행히 돌아가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다음날 해장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해장 후 정신이 돌아오자 늦게나마 어제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나 싶었다.

어제 그 화장실이 궁금해져 이번에도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어제 그 건물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건물 입구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경찰관이 통제하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왜들 모여있어요? 무슨 일 있어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어제 여기서 사람이 죽었대요. 그걸 오늘 아침에 발견해서 난리도 아니에요.]

[왜요? 뭐 때문에 죽었대요?]

[그게 이제 조사해봐야 나오겠죠.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네요.]

[이상한 점이요?]

[그게… 시체에 손에 휴지가 들려있었대요. 마치 옆 칸에 전달하려던 것처럼.]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집으로 곧바로 돌아갔다.

왠지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