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참 잘생겼었다

젊은 시절 사진을 봤을 때 장국영과 똑같이 생겼다
그에 비해 우리 엄마는 들국화처럼 수수하신 분이였다
난 딸이지만 아빠와 똑같이 생겼고
하나뿐인 남동생는 엄마의 수수함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나는 엄마와 동생의 낮은 콧대가 그리 부러울 수 없었다

어린시절 기억의 아빠는 항상 다방에 날 데리고 갔다
요구르트가 담긴 조악한 파란색 크리스탈 컵이 기억난다
아빠는 참 많은 여자와 어울렸다

우리 엄마는 안쓰러운 분이였다
아빠가 3번째 바람을 폈을 때도 넘어가주신 분이였다
아빠는 집에서 내조를 안 한다는 핑계로 엄마이기 전 여자인 그녀한테 참으로 못살게도 굴었다
나중에 아빠가 원래 결혼을 하고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엄마는 울음 한 번 보이지 않으셨다

이 오지 산간 좁은 동네에서 바람이 나면 입에서 입으로
종국에는 지인들이 슬그머니 엄마에게 물어보아도 엄마는 항상 커피를 내오며 웃으셨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지인들이 싫어 그 커피를 몽땅 텃밭에 뿌려버렸다

바람만 피우면 좋았으련만 아빠는 폭력을 휘둘렀다
술 조차 입에 대지 않던 그 사람 항상 맨 정신에 무자비한
폭력을 엄마와 나에게 가했다 아들인 동생은 면제였다

난 첫 아이가 딸이라 본인의 인생이 힘들다는 죄로
엄마는 그런 딸을 왜 낙태를 하지 않아 본인을 힘들게한다는 죄로 우리는 매일매일 단두대에 올랐다

동생은 그 모습을 보고 자라 성인이 된 지금까지 죄책감에
사무쳐 술만 먹으면 나한테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는다
너무 안쓰러운 내 동생은 단두대에 오르지 않은 죄로
짧은 21년 평생을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

내가 갓 성인이 되었을 때 아빠의 폭력은 극에 달했고
그 무렵 나는 주먹으로 뺨을 맞아 오른쪽 아래 어금니가
깨져버렸다 치과에 가서 마취가 잘 안 돼 어금니의 뿌리를
기어이 쌩으로 뽑아내도 주먹만 쥐었지 울지 않았다

볼이 다 터져 멍이 시퍼렇게 들어도 난 대학교에 갔다
대학교에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 듣고 친구와 어울렸다
교수님이 슬그머니 3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셨던게 기억난다
나는 그 3만원으로 밥을 안 먹고 처음으로 담배를 샀더랜다

어느 날 엄마가 본인은 이혼을 하신다하셨다
이제 내가 성인이 되었으니 더 이상 참고싶지 않다 하였다
들국화 같은 엄마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고 이를 갈며
내가 어린시절부터 아빠가 피운 바람들의 증거를
서랍장 밑 장판에서 가져오셨다 다방 여자가 아빠에게 쓴
러브레터를 읽을 땐 참 아이러니하게 너무나도 달콤했다

그리고 엄마는 처음으로 취해 비틀거리며 내 품에서 우셨다
너희 아빠 또 바람핀다며 이 참에 갈라서고 그 여자와 살게
하겠다며 참 하염없이 우셨다 엄마의 어깨는 가녀렸다

이 후 구질구질한 소송이혼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합의이혼을 하고 싶으셨지만 아빠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아하고 싶었다 폭력이 동반되었고 동생이 자신의 팔뚝을 식칼로 썰어버리며 아빠를 위협했고 아빠는 하나뿐인 아들이 다치는 꼴이 보기 싫어 나가버렸다 나는 부은 뺨과 함께 고양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엄마도 나가버렸고 동생은 팔에서 피가 너무 많이 나왔다
거즈와 수건으로 동생의 팔을 감싸며 출혈 부분을 심장 위로 들어야 지혈이 빨리 된다는 주워들은 얄팍한 상식으로
동생의 팔을 들어올리며 119에 전화를 했다

구급차에 타고 가면서도 동생은 팔보다 나를 걱정했다
동생이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누나 좀 챙겨달라고
구급대원에게 부탁했다 어려보인 구급대원 중 하나는 나를
품 안에 꼭 안아주며 본인이 전부 대신 울어줬다

병원에 도착해서 동생의 팔을 꿰맬 때 보호자분은 보기 너무
힘드실테니 바깥 쪽에서 기다리셔도 된다 하셨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 보호자라는 단어에 이끌려 안 쪽에서 나가지 않았다
근육 안 쪽을 꿰매고 바깥 쪽 피부를 꿰맬 때도
나는 그저 피곤하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지금 동생의 팔에는 타투로 커버업이 되어있어 다행이다

집에 돌아오니 집은 말끔히 정리가 되어있었다
이 후 엄마와 아빠의 사이도 말끔히 정리 되었다
나는 정신병원에 2개월동안 입원해있었다
정신병원은 직계가족밖에 면회가 되지 않는다
나는 친구들이 보고싶었고 퇴원했을 땐 2학기가 시작됐다

나중에 아빠와 4번째 여자는 결혼하여 알콩달콩 잘 사는걸
친척이 전해주었고 나는 그 길로 친가와 연락을 끊었다
아빠하고는 원래 연락이 안 됐으니 별 상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현관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왔다
손에 작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애기엄마 가방을 매고 온
아빠였다 못 본 사이에 아빠의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3~4살 정도 되어보이는 그 여자아이는 아빠의 자식이였다

데리고 온 이유인 즉슨 코로나 때문에 맡아줄 곳이 한 군데도
없어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다 자신과 그 여자는 팬션을
하고 있었는데 요즘 사람이 없어 어쩌구저쩌구 사실 별로
듣고싶지 않아 흘려들었다 친척 친구 지인 모두가 안 맡아준다고 해 언니인 너가 맡아주면 어떨까해서 찾아왔댄다
그 애새끼는 지적장애였다 기분이 매우 묘했다

너 여동생 가지고 싶어했잖아 하고 비굴하게 웃는 아빠가
나는 참으로 보기 좋았더랜다..

나는 담배를 피웠고 아빠는 애 앞에서는 담배 피우지 말라고눈쌀을 찌푸렸다 우습다 아빠는 항상 집 안에서 담배를 피던
그런 사람이였다 동생이 의아해하며 중간문을 열고 나왔고
아빠와 나 그리고 애새끼를 보고 나와서 아빠를 발로 찼다

애새끼 죽여버린다고 하는 동생 앞에 아빠가 무릎을 꿇었다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고 비는 모습이 즐거웠다
하루만 그것도 싫다면 6시간만 돌봐달라고 끊임없이 말했다
나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
애새끼는 글쎄 지능은 떨어져도 무서운건 알았을까 울었다

동생이 꺼지라고 아빠의 뺨을 후려쳤고 아빠는 아픈듯했다
울고있는 애를 안아들며 터덜터덜 공동현관으로 나갔다
동생은 화내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학원 갈 준비를 했다
씻고있는데 이제서야 이제서야 살면서 눈물이 나더랜다

이제서야 목 놓아서 내가 울었더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