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모임에서 내 팬이라는 분을 만났다.

제법 긴 시간 동안 괴담을 쓰고 유튜브에 소개되었기에

너무 감사하게도 팬을 자처하시는 분들은 몇몇 있었던 터였다.

여리고 순진한 얼굴을 한 채 좋아하는 괴담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습은

내게 어딘가 잔혹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침 사는 곳도 멀지 않아 모임 정모때 픽업을 가기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공포 팬들은 다소 어두운 성향이 있기 마련이다.

이분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여느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꽁꽁 얼어붙어 따뜻함이라고는 새어 나오지 않는 빙산 깊은 곳에 있는 듯한 어둠.

거창한 표현을 제쳐두고 보면 따뜻함과 친절함이 필요한 외로운 사람 같아 보였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도, 사랑받아본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는.

이성, 연애, 결혼 등은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난 양해를 구하고 조용히 손을 끌어다 잡았다.

정말 그러한지. 조금이라도 마음의 동요가 생기지 않는지 물으면서.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아무렇지 않다 대답하는 그녀를 그대로 집에 데려다주고

내가 잘못 생각했나 하는 의아함과 약간의 민망함을 가진 채 그날을 끝냈다.

다행히 내 성격 때문인지 그날의 일이 어색함을 가져다주진 않았기에

불편한 관계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음 모임 때 평소처럼 그녀를 태우고 가는 자리에서

그녀는 내게 자기 생각이 틀렸을지 모른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내가 손을 잡아 줬던 그 날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들뜨고 떨림은 물론,

나와 함께 있는 꿈을 매일 같이 꾸고 있다 말해주었다.

어둡고 무서운 꿈만 꾸던 그녀가 달콤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의미했고,

새로운 인연이 시작됨을 의미했다.




이후 그녀는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불면증으로 힘들어하던 게 거짓말처럼 싹 나았고

매일같이 꾸던 악몽에 가까운 끔찍한 꿈들 대신 달콤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부정적으로 보던 세상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보았고

웃음과 즐거움을 알아간다고 말해주었다.

자신을 사랑해 줄 이가 없다 믿고 단단히 잠가놓은 마음이었지만

마주 잡은 손에서 느껴진 작은 온기 하나로 그 단단한 얼음을 녹이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가만한 나날.

언제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만 하던 그녀에게 가만한 나날이 찾아왔다.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세상이 아름답고 유치한 애정 표현도 너무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여전히 괴담을 좋아하기에 지금도 내 팬을 자처하며 글에 대해 이런저런 소재와 의견을 주지만,

이마저도 이전에 보이던 어두운 광기는 아니었다.

그저 공통의 취미를 가진 연인의 달콤한 대화일 뿐.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집에서 안락하고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는걸 즐기는 그녀 덕에

내 마음 역시 한층 가만해졌다.

결국 우린 서로에게 가만히 찾아온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