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바리스타이자 현직 항해사입니다.
배를 타면서 커피가 너무나 좋아서 커피 쪽으로 빠졌지만, 취미와 현실은 별개인 법인지 그렇게 잘되진 않았지요. 뭐 코로나 핑계를 댈 수도 있었지만 결국은 제 능력이 부족한게 제일 큰 원인이었겠죠.

그냥 혼자 산다면 그냥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지나친 기다림으로 지쳐가는걸 더 두고볼 수 없어서 다시는 안탈꺼라고 외면했던 배를 다시 작년에 올라가게 되었죠.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24년 초에는 결혼하자는 말을 남기고요.

그리고 첫휴가를 받았던 올해 화이트데이에 연애의 종료를 통보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생각보다는 굉장히 무덤덤하게 받아지더군요. 그 시점에서 전 여친이 된 사람을 우는 걸 달래주느라 진땀 뺐습니다. 왜 차인건 난데 우는건 너냐면서 웃으면서요.



그렇게 7년의 연애가 끝이 났습니다. 원래 저는 비혼주의자였는데, 이 사람이라면 그걸 깨도 되겠다고 생각했었죠. 사실 저한테 과분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배를 타러 올라갔습니다. 20대 땐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잖아! 하면서 배를 마무리 했었는데, 이게 자영업을 하면서 보니 돈이 없는게 무슨 의미인지 너무 아프게 다가오더군요.


제 취미는 카페 투어입니다. 맛집과 카페를 돌아다니는 걸 워낙 좋아해서 지인들에게 데이트 코스를 대신 짜줄 정도였죠. 이전까지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그 가게에 대한 감상을 （전）여친과 대화주제로 삼다보니 딱히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니 좋은 가게에 가도 그 감상이 없는게 너무 아쉬워서 그걸 달랠겸 인스타를 최근에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내년 초에 카페 투어하면서 열심히 올려봐야지 하면서 생소한 sns 기능을 만져보고 있었죠. 그러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전여친의 인스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흰 드레스와 커다란 다이아 백금 반지를 끼고 있더군요.


사실 헤어졌을 때 무덤덤할 수 있었던 것은, 이걸 미리 짐작은 하고 있었던 덕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 자존감과 경제력이 바닥을 찍고 있던 상황이라 오히려 눈치만 보고 있었죠. 그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다시 배를 탔던거였죠. 결국은 늦었지만..


우습게도, 한편으론 우연찮게도 한창 하역작업 중에 제가 갑작스런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날에 그 날에 결혼했더군요.

제 마지막 기억 속에서 울던 사람이 두달 전 결혼식, 그리고 최근의 신혼여행에서의 웃는 사진을 보니 좀 먹먹해집니다. 이 결과를 짐작했던 것과는 별개로, 이걸 절대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제가 느끼는게 분노인지 슬픔인지 미안함인지 구분이 안갑니다. 그냥 헤어지기만 했을 땐 좋은 추억의 앨범으로 남길 수 있었을거 같은데, 지금 그 기억들이 그저 불쏘시개가 된 느낌이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