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르방~

[삶과 문화] '희망' 이름을 짓는 까닭


지난해 수시입학 전형 때 법학과 교수님과 함께 학생 면접을 한 적이 있다. 그 교수님은 들어오는 학생마다 한 가지 공통 질문을 했다. 즉 학생 이름의 뜻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자네 이름의 한자풀이는 어떻게 되지?" 박지수（朴知樹）라는 학생이 답했다. "알 지, 나무 수, 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나무처럼 많이 아는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지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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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생은 이름이 김현영（金賢影）이라고 했다. "어질 현, 그림자 영입니다." 교수님은 되물으셨다. "이름에서 그림자 영은 처음 보는데 무슨 뜻으로 그렇게 지었는지 아나?"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듯이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착한 그림자가 되라고 부모님이 지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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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면접 내내 학생들의 이름마다 그렇게 심오하고 아름다운 뜻이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앉아 있었다. '나무처럼 많이 안다'든가 '모든 이의 착한 그림자가 된다' 얼마나 멋진 의미인가. 새 학기를 시작하고 학생들의 출석을 부를 때면 간혹 좀 독특한 이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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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학생들 중에 '강힘센이'가 있었는데 몸이 약해 힘이 세어지라고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이스안'이라는 학생도 있었는데 나는 '백조'라는 뜻의 영어 '스완'을 우리말로 표기한 줄 알았으나 학생의 아버지가 외동딸을 낳고 너무 기뻐 무슨 이름을 지을까 한 달을 고민하다가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문득 '버'를 빼고 '스안'으로 정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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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름마다 사연도 많고 의미도 각양각색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름이라는 것 자체가 단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장미라고 불리는 저 꽃이 다른 이름을 가진들 그 향기에 변함 있으랴.（2막 2장）"라고 하는 유명한 대사가 있듯이, 한 사람을 특징짓는 것은 그 사람의 품성이나 마음가짐이고, 그거야말로 사람을 구별하는 진짜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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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누군가를 부를 때 '민호야, 영숙아'하고 이름을 부른다 해도 속마음으로는 '에이, 이 심통아'한다든가 '저 구두쇠'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진짜 이름은 '심통'이나 '구두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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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부설 '성 이냐시오 야학'에서 영어 회화를 가르친 적이 있다. 학생 중에 빵집 판매원을 하던 순임이가 있었는데, 정말 이름 그대로 천사 같이 순하고 착했다. 졸업하고 나서 부산에 있는 애 셋 딸린 남자에게 시집갔지만, 채 1년도 안 돼 친정 오빠에게 돈 꿔줬다고 시어머니에게 쫓겨났다. 그때 임신 7개월이었던 순임이는 미혼모 수용시설에서 아기를 낳았고, 이름을 '희망'이라고 지었다. 그때 순임이는 말했다. "이 아이는 제 삶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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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벌써 7년 전이고, 그동안 억척같이 일한 덕에 순임이는 지지난해에 해운대에 작은 밥집 하나를 차렸다. 그런데 이번 태풍에 가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마 전에 새로 들여놓은 컴퓨터까지 다 날아갔다고 했다. 친구가 가보니 넋 놓고 앉아서 다시 일어날 힘도 없는 것 같더라고 했다. "이제 희망이밖에는 남은 게 없어." 아들을 꼭 껴안고 이 말만 되풀이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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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희망만 남으면 된다. 희망이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참혹한 피해를 본 모든 수재민들의 진짜 이름이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모두의 진짜 이름은 '현영', 그들의 착한 그림자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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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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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9 17:59 입력 / 2003.09.20 08:24 수정


자신의 이름에 자부심을 가진다-> 추천

부모님이 이름 지어줬다->추천

조부모님이 지어줬다->추천

내이름은 이스안이다->낭패~

내이름은 ㅁㄴㅊ이다->저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