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마다 끓여 먹던 라면이 슬슬 바닥을 보이길래 겸사겸사 집 근처 편의점에 갔음.
신라면, 불닭볶음면 중에 뭘 살까 행복회로 열심히 돌리던 중에
카운터 부근에서 혓바닥 꼬인 진상 소음이 선명하게 들리더라.
바구니에 신라면, 불닭볶음면 둘 다 넣고 스프라이트 한 병 추가로 담아서 카운터로 갔음.
조금만 건드려도 톡 하고 부러질 만큼 여린 여자 알바생이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는
고주망태 손놈한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고 있었음.

“번호 하나 줘 봐~ 나 이상한 사람 아니야~”

당신이 이상한 사람 아니면 본인 면상 마주 보고 술주정 받아주는 직원이 이상한 사람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흰 면티를 관통해서 보이는 우락부락한 삼두근이 나를 비웃듯이 꿈틀대더라.
범을 알현하는 하룻강아지처럼 잔뜩 움츠려서는 겨우 카운터 위에 바구니를 올렸음.

“아, 그래서 줄 거야? 안 줄 거야?”

손놈 시선을 피해 갈팡질팡 움직이던 알바생의 시선이 나랑 직선으로 맞닿음.

‘도와주세요.’

절벽 끝에 간신히 매달린 사슴처럼 도움의 시그널 보내는 알바생을 보니까
이대로 모른 척, 혼자 도피할 수는 없겠더라.

“어, 희주 맞지? 오랜만이다. 아버님은 잘 계시지? 아직 강남경찰서에서 근무하셔??”

근무복에 달린 알바생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면서 부친 공권력의 힘을 과시했음.
알바생도 대충 상황파악이 됐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맞장구를 침.

“어, 어. 아빠는 잘 계시지. 경찰이 다 그렇지 뭐.”

쳇바퀴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던 손놈 혓바닥에 큰 자물쇠가 걸린 듯 조용해짐.
쉴 틈 없이 알바생과 대화를 주고받으니까
손놈도 손대면 좆될 걸 인지했는지 삼두근 뽐내면서 조용히 나가더라.

“감사합니다.”

해맑게 웃으면서 90도 인사하는 알바생을 향해서 자신 있게 휴대폰을 내밀었음.

“...손님?”

따뜻한 산들바람은 온데간데없이 편의점 내부에 냉랭한 비바람이 몰아침.
이윽고 알바생 오른손이 카운터 밑으로 슬쩍 내려가길래 당당하게 말함.

“안 누르셔도 됩니다.”

애플페이만 됐어도 자연스럽게 계산하는 척했을 텐데.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