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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오늘 따라 기분이 좋아 보인다.



진이: 나 요즘 좀 큰거 같지 않아?



나: 응?... 아.. 그러고 보니..





한 0.5 나노 미터 정도?






진이는..


전신 사진을 찍어 놓고 보면


사실 작은지 아닌지 잘 구분 못한다.





작은 애들은 보통 척 봐도...


신체 비례상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진이는 성인 여자의 사이즈를 그대로 줄여 놓은 듯..


말하자면 미니어쳐 같다.








진이: 난 나중에 이~ 따만해 질거다~





까치발을 하고 손을 번쩍 들어야 겨우 내 키를 넘는다.






나: 어? 그럼 진이 이렇게 올려다 봐야 되나?






자리에 쪼그려 앉는 시늉을 해보였다.






진이: 응..



나: 그럼 싫어..



진이: 그럼 요만큼만 클거다~






내 어께 높이 만큼 손을 가져다 댄다.






나: 우와.. 그럼 쭉쭉빵빵 섹시걸 되는거야?

딴 남자 애들이 자꾸 쳐다보면 어떻해~



진이: 걱정 마아~ 내가 안 쳐다 보면 되지~






우리의 대화란 것이 대충 이런 수준..


진이랑 있다보며 나도 모르게....-_-;;







진이: 그럴려면 우유 많이 먹어야 돼..



나: 응 많이 먹어~





진이는 독서실에 우유를 한 통씩 사 다닌다..


매일 먹겠노라고 다짐을 하지만..


정작 용량은 200mm도 안되는 모양..





진이: 쿠엑 더 이상 못 먹겠다.. 너 먹어.



나: 진이 먹구 커야 되잖아..



진이: 못 먹겠어.. 먹어줘..



나: 나두 사실 방금전에 밥 먹어서 배 불러.. 못 먹겠어..



진이: 음식 남기면 지옥가서 다 먹어야 된단 말야~!






결국 매일 800mm 이상의 우유 덕에 튼튼해 지는건 나..






나: 꿀꺽 꿀꺽.. 꾸에엑..


진이: 잘 먹는다..





한국인 중에는..


우유 소화 효소가 적은 사람이 더러 있다.


실상을 말하라면..


내가 그런 종류의 인간이다.






나: 진아.. 생각해 보니..

진이는 착해서 지옥도 안갈건데.. 걱정 할 필요 없을 것 같아.



진이: 아냐 아냐.. 그래두 몰라..

엄마가 음식 남기면 지옥 간댔어..





진이의 어머니는 도대체 무슨 종교를 믿고 있는 걸까?





나: 다.. 다 먹었다. 우욱...



진이: 우리 둘다 우유 많이 먹구 커지겠다..





활짝 웃는다.


그래..


저 웃음을 보는 댓가라면..


소화 효소가 없어서 유유가 그대로 줄줄 나온대도..


무슨 상관 있으랴..





그러던 진이..


언제부턴가.


200mm짜리를 들고와..


자기만 마시고..


나에게 우유를 주지 않는다.


뭐.. 나야 좋지만..






나: 요즘엔 왜 안줘 우유?



진이: 생각해 보니까... 너 더 커지면 안될 것 같아서.



나: 왜? 키큰 남자 좋잖아?



진이: 니가 더 크면 내가 더 커봤자 소용 없잖아...





음.. 과연..


어린애 다운 발상이야..


...라고 웃어 넘겼지만..






진이가 언젠가 어른이 된 후에도..


항상 옆에 있을 나를 상상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초등학교 때의 진이는..


중간 보다 약간 작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 때는 친구들하고 말타기를 하고 놀았을 정도 였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나랑 있을 때 나오는 성격이 본성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은 점점 크고..


자기는 혼자 그대로..





뭘 해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조용히 혼자 교실 앞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소심한 아이로 변해 갔을 것이다.






난 그런 점을 다행이라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이에게 있어서..


그냥 아는 남자애 정도가 아니라..


단 하나 뿐인...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 이기적이고 나쁜 생각인가?


미안 진이야..


하지만 솔직히 그런걸..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진이가 키가 커져서..


내 어께에 올 정도가 되었다.






진이: 우유를 많이 먹어서 그래~


나: 와.. 잘됐다 진이야 축하해..





그러자 진이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생기고..


아는 남자들도 생겼다.





진이와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비둘기가 편지를 전해 준다.




[미안해.. 오늘 모임이 있어서..]





나는 진이를 찾아 거리를 해매다가..


길에서 발견 했다.




진이는 하이힐을 신고..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모르는 남자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 진아~~ 어디가!!



소리를 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나: 무.. 무슨 꿈이..





독서실에 가서 진이를 보니..


아직 1cm도 자라지 않았다.






나: 휴우..


진이: 왜?


나: 아냐..






그렇게 크고 싶어하는 진이가..


자라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하는 나를 보며..




내가 과연 진짜로 진이를 아끼고 있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 그런 의구심 정도가 아니라..




깜짝 놀랐다.




나는..




진이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몰랐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이대로 괜찮을까?





진이도 당장 대학이라도 가면..


하다 못해 선배니 후배니..


아는 남자도 생길 것이고..


미팅 소개팅도 하고 그럴 지도 모른다.





우선 진이와 나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나: 그렇다면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을 해보는게 어때?






스스로에게 말 해 보았다.





그런데..


과연 난 진이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일까.


단지 독점욕을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일까.





사귀자고 하면..


저 순수한 진이에게..


집착도 생기고 화를 내는 일도 생기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도저히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보통의 문제라면...


여성 심리학의 전문가 색마군에게 자문을 구해 보겠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놈이..


이런 복잡 다단한 문제를 알 수 있을리 없다.




그래서 은경이를 불렀다.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가려는데..


진이가 나를 부른다.




진이: 야~ 머 먹으러 가자~


나: 아.. 미안.. 지금 친구랑 약속이 되어 있어서..


진이: 친구? 갑자기 왜?


나: 응.. 중요한 문제로 이야기 할게 있어서...





은경이를 만나..


이야기를 하려니..





은경: 잠깐~ 이야기를 듣기 전에 계산을 정확히 하도록 하지..



나: 무슨 계산..



은경: 난 프로라서 말야..



나: 알았다 뭐 먹고 싶냐?






예의 그 팥빙수 집에 들어갔다.





은경: 좋아 이야기 해봐.. 잠깐.. 아이스크림은 섞지 말구






자초 지종을 들은 은경이..


어이 없다는 듯이 웃으며..






은경: 쇼를 해라 아주..



나: 뭐가 임마? 난 심각한 문제야.



은경: 니가 시인이냐? 시쓰냐? 응?






은경이의 카운셀링은 이러했다.





은경: 물론.. 평생 둘만 보고 산다면 좋겠지만 말야..

너도 그렇고 진이도 그렇고..

어릴 때 만나서 정말 한눈 한번 안 팔고 살 수 있진 않을거야..




나: 그렇지..



은경: 그러니깐.. 요컨데..

너는 그런 일이 생기는 것도 두렵고..

그런 일로 니가 질투하게 될까봐 그것도 두렵다 이거지?




나: 뭐.. 그렇게 정리 되겠네.



은경: 니가 어떻게 성춘이랑 같이 다니는지 모르겠다.



나: 뭐가? 성춘인 어떤데?



은경: 그 단순왕은.. 내가 그냥 딴 남자 얘기만 해도 삐져가지구..

달래려면 얼마나 힘든지 아냐?



나: 그래?



은경: 사실 이렇게 너랑 둘이 만나고 있는 것만 봐도

아주 난리가 날걸?

덩치는 커서 한마디로..




나: 밴댕이네..



은경: 그렇지..





은경이는 피식 웃으며..





은경: 그런데 신기한게.. 그게 싫지만은 않아..

어떨 때는 그 꼴 보려고 일부러 딴 남자 이야기도 하고 그런다니까..



나: 그래? 정말 그럴까?



은경: 그럼~ 상투적인 말이지만.. 좋아하니까 질투도 하지..






저렇게 시원스럽게 말해주니..


약간 마음이 가벼워 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나: 하지만..





그 때..


팥빙수 집의 문이 열리고..


진이가 친구들과 들어온다.






은경: 아 진아~ 얘들아 오랜만이야~




모두 같은 반 이었다.





진이: 어? 안녕 은경아?



애들: 임은경~ 너 공부 안하냐?





반갑게 인사를 한 후..


나를 발견한 진이.





진이: 어?


나: 진아 팥빙수 먹으러 왔어?


진이: 응......





목소리가 약간 심상치 않다.





은경: 진아 이리 앉아.. 같이 먹자.


진이: 아냐.. 저 쪽에 앉을게..





친구들과 함께 저 쪽으로 가서 앉아..


팥빙수를 시키더니..


퍽퍽 퍼먹고는..





진이: 나 갈게.. 문제 풀게 좀 남아서.. 미안..



...하며 일어난다.




애들: 야.. 같이 들어가..


진이: 미안..




뺨에 바람을 가득 넣고 있는 것을 봐서..


삐졌다..


은경이는 빙긋 웃으며..





은경: 자.. 기분 어때?



나: 아.. 응?





저건 혹시..




나: 질투? 너랑 나랑 있다구?


은경: 아님 뭐겠어..


나: 아.. 에헷..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은경: 어때? 기분 나쁘진 않지?



나: 그렇네..






은경이는 내 어께를 툭툭 치면서..





은경: 하지만 너 같은 경우는 말야..

진이한테 질투 할 일도 별로 없을걸?



나: 그럴거 같긴 해..



은경: 좀 취향이 독특 해야 말이지.. 큭큭..



나: 성춘이 놈 만큼은 아니지..







독서실로 돌아와 보니..


진이가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있다.





나: 진아.. 문제는 다 풀었어?


진이: 응..


나: 너 삐졌지?


진이: 아아니이~


나: 쳇.. 삐졌으면서..


진이: 아냐아..






나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진이는 머뭇 머뭇 거리더니..





진이: 중요한 일이 모야?


나: 비~밀..


진이: 모야아.. 말해조..






나는 씨익 웃으며..





나: 사실은 말이지..

어떻해 하면 진이랑 더 친해 질 수 있을까 물어 봤어..



진이: 엣.. 거짓말.



나: 진짜.





진이는 몇 번을 확인 하더니..


방긋 웃으며..






진이: 아이스크림 사주면 되지요~



나: 진아. 방금 팥빙수 먹었잖아..



진이: 많이 먹지도 못했단 말야..





결국.. 복잡한 걸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진이를 데리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주니..





진이: 우린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



나: 지.. 진아 너...

아이스크림만 하나 사주면 아무한테나 그 말 할거지?



진이: 아니~ 오십개 넘은 사람 한테만..



나: 나.. 난 벌써 오십개 넘었나?



진이: 응..







그렇게..


하루 하루...


여름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