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에서 온 이메일 / 장이지

안녕,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여기 하늘엔 네가 어릴 때 바닷가에서 주웠던

소라 껍데기가 떠있어

거기선 네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가

먹치마처럼 밤 푸른빛으로 너울대

그리고 여기 하늘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마다 찾아와 안부를 물어

​

있잖아, 잘 있어?

너를 기다린다고, 네가 그립다고

누군가는 너를 다정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네가 매정하다고 해

날마다 하늘 해안 저편엔 콜라병에 담긴

너를 향한 음성메일들이 밀려와

여기 하늘엔 스크랩된 네사진도 있는걸

너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어

그런데 누가 넌지 모르겠어 누가 너니?

​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메일들이

오로라를 타고 이곳 하늘을 지나가

누군가 열 없이 너에게 고백하던 날이 지나가

너의 사진이 지나가

너는 파티용 동물모자를 쓰고 눈물을 씻고 있더라

눈밑이 검어져서늠 야윈 그늘로 웃고 있더라

네 웃음에 나는 부레를 잃은 인어처럼 숨막혀

이제 네가 누군지 알겠어

​

있잖아, 잘 있어?

네가 쓰다 지운 울음 자국들이 오로라로 빛나는,

바보야, 여기는 잊혀진 별 명왕성이야

​

​

장이지 시인의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인의 시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시이기도 합니다.

시의 내용을 단번에 해석하기는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글쓰기와 요리가 유사점이 많아서 요리를 통해 글쓰기를 설명하는 일을 즐기는데요.

시를 해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요리를 먹고 그 요리에 들어간 재료가 무엇인지,

어떻게 조리했는지를 유추하는 과정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많은 음식을 먹어보고 자신이 많은 조리를 해보아야 음식을 먹었을 때

어떻게 요리했는지 알 수 있듯이, 시를 해석하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남이 한 요리를 먹었을 때

그 안에 들어간 모든 재료를 정확하게 알거나, 식재료를 그램단위로 확실하게 파악하거나,

굽고 삶고 찌는 세밀한 조리시간을 정확히 유추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듯이

시를 읽을 때 아무리 시에 능통한 사람이더라도,

그 내용을 완벽하게 단박에 파악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가 매번 글을 쓸 때, 부족하게나마 제가 쓴 시를 동봉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시학을 전공한 석박사와 교수님들 조차 특정 시를 분석할 때

시에 대한 견해가 사람마다 다를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요리에 어느 정도 경험과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식재료의 큰 맥락은 때려맞출 수 있듯이

저 시에서 중요한 부분만 오차가 없을 범위 아래에서 중요한 부분만 짚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해석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설명이 필요하기도 하구요.）

시의 내용을 보았을 때, 시적 화자는 명왕성에 있습니다.

잊혀진 별이라는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해서, 그 곳에 지내고 있는 화자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잊혀진 별 명왕성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우선 당장은 잊혀진 것? 정도의 덩이로만 상상하고 넘어가도 무방합니다.

제목을 따라 유추를 해본다면, 시의 내용에 해당하는 편지（E-mail）를

명왕성이 아닌 곳에 사는 누군가가 받고, 그 내용을 읽고 있는 셈입니다.

혹자는 이 시를 해석할 때 이메일을 받는 이와 쓰는 이를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혹은 분리된） 자신이라 보기도하고, 반대로 읽기도 합니다.

혹자는 과거에 연모하던 대상과 거기 갇혀있는 자신이라 보기도 하고요.

다른 해석도 가능할 지모르겠네요.

시의 내용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해석하는 일은

많은 지면을 요구하기도 하고, 제가 인용한 이유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직 시인이  구성한 시적 화자가 살고 있는 '명왕성' 이라는 세계에 집중하시고,

왜 하필 많고 많은 세계중 명왕성에 사는 화자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대상과

이메일로 소통을 하는지를 고민하시면 됩니다.

아래는 제가 쓴 시입니다.

장이지 시인의 시와 상당히 흡사하죠? 맞습니다. 모방한 십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모방한 시를 긁어왔습니다.

（TMI인데.. 장이지 시인은 저를 가르치신 교수님이시고 저 역시도 상당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 시는 제가 쓴 것이니 시적 상황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죠?

저 시의 시적 상황은,

시적 화자가 좋아하던 대상과 늦은 밤에 운동장을 산책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잘 쓴 시는 아닙니다. 왜냐면 현실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만한 근거가 다소 부족하고,

뻔하고 오글거립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과 몇 시간이고 운동장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눗방울을 불면서 놀던 어린아이를 '작은 별'로 치환했습니다.

 밤의 공전이 끝났다는 내용은 길고 길었던 산책이 끝났음을 상징하기도 하고,

둘의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해석하는 것은 오늘 다룰 내용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저 운동장을 우주라는 세계에 빗대어 표현했구나,

하는 부분만 확실히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처럼 현실이나 상상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번에는

상상이나 생각을 현실처럼 표현하는 경우를 살펴볼까요?

아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입니다.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 이진명

​

김노인은 64세, 중풍으로 누워 수년째 산소호흡기로 연명한다

아내 박씨 62세, 방 하나 얻어 수년째 남편 병수발한다

문밖에 배달 우유가 쌓인 걸 이상히 여긴 이웃이 방문을 열어본다

아내 박씨는 밥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아침신문이 턱하니 식탁에 뱉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차렸다

나는 꼼짝없이 앉아 꾸역꾸역 그걸 씹어야 했다

씹다가 군소리도 싫어

썩어문드러질 숟가락 던지고 대단스러울 내일의

천국 내일의 어느날인가로 알아서 끌려갔다

알아서 끌려가

병자의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들어 추슬러놓고

늦은 밥술을 떴다 밥술을 뜨다 기도가 막히고

밥숟가락이 입에 물린 채 죽어가는데

그런 나를 눈물 머금고 바라만 보는 그 누가

거동 못하는 그 누가

아, 눈물 머금은 신（神）이 나를, 우리를 바라보신다

어쩌면 누군가는, '낯설게 쓰기'처럼 느껴지는 특정 부분을 제외한다면 산문과 다를 것이 무어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시인이 아침 신문에서 읽은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은 시일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의 감정이나 생각등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상황으로 나타냈다는 점입니다.

시를 비롯한 모든 문학은, 설명이 아니라 표현을 해야합니다.

'XX는 슬픔을 느꼈다.' 라는 문장은 적어도 문학에서만큼은 절대로

좋은 문장이 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위에 시는,현대 사회에서 소외되는 노인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

안타까움 등을 나타낸 시라 볼 수있겠는데요.

이런 안타까움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싸한 현실의 '상황'을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더욱 효과적이고, 시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하나 더 볼까요?

친구들 셋이서 방 하나 구해
안될 거 알면서 취했나 꿈에
뭐 어때 어린데 취하고 토해
친구야 해보자 까짓것 Okay
그렇게 앞 치말 매
출근해 고깃집
혼났지 많이 난 왜
이리 또 서툰지
손님인 아줌마의
말이 날 울렸지, wait
공부를 못하면 저렇게 산다고
저런 애 부모는 안 봐도 안다고
난 이를 꽉 물고 꼭 두고 보라고
이민혁 꿈 이뤄 서 돌아온다고
말했지 난 안 보였던 앞
밝혀준 Warmman과 Grandline
그 사랑 난 갚아줄 거니까
내가 외칠 말은 Show Me The Money야

쇼미더머니 Freak - 스카이민혁 부분.

갑자기 웬 쇼미더머니에 나온 노래 부분을 긁어왔나 싶어서 당황스러우실지 모르겠습니다.

스카이 민혁 인터뷰에 따르면, 저 상황은 실제로 존재하던 상황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초년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때 느끼던

사회적 멸시와 모멸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저런 가사를 쓴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알바 존나 빡세다' 가 아니라 '아줌마가 막말을 했어요 ㅜㅜ' 로

본인의 생각을 상황으로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아래는 제가 쓴 시입니다.

저희 집 뒷마당에는 귤나무가 있긴 했었지만, 굉장히 과거의 일이고.

실제로는 귤을 수확해서 이웃에게 나눠준 적은 없습니다（....）

 다만 이웃간의 사랑, 정겨움, 토속적인 정을 표현하고자

저런 시적 상황을 현실처럼 구성하였고,

딱딱하게 '이웃간의 정이 중요하고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는 문장을 대신하여 상황으로 표현하였음을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내용은 와닿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낯설게 쓰기'를 상당히 장기간 연습하다보면

위의 경우도 자연스럽게 습득되곤 합니다만.. 사람에 따라 속도는 천차만별이니까요.

오늘도 간단한 과제를 두 개 드리겠습니다.

1.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상황을 자신만의 세계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하실건가요?

2. 대상이 누가 됐든 상관없습니다만, 사랑과 정을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표현해본다면 어떻게 하실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