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5월말에 전학을 와서 벌써 한 달 정도가 흘렀다. 6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엄마가 만나자고 하지만, 아직은 만나고 싶지 않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세수를 대충하고 거울을 보니 오 마이 갓- 주근깨가 하나 둘 셋 넷- ...아무래도 어제 남자애들 농구하는 거 구경한답시고 햇빛을 본 게 실수였다. ...이게 언제나 다 없어지나- 휴우... 아침 먹는 건 꿈도 못 꾸고 코코아를 후다닥 마시고 있는데 문득 시계바늘이 눈에 들어왔다. 4시 40분... 뭐. 4시-?! 자세히 보니 초침이 멈추어 있다. 질겁을 했다.

“이게 뭐야- 이게-!”

황급히 뛰쳐들어가 방 책상 위의 시계를 보았다. 8시 14분... 난 죽었다-! 전학 온지 겨우 한 달에 지각이 무려 일곱 번이다. 한 번에 벌점 2점씩, 14점이고 거기다 그저께 점심시간에 늦어서 1점 합이 15점이다. 20점이면 특수교육인데- 오늘만은 절대 안 된다!! 문을 잠그자마자 뒤도 안 보고 내달렸다. 지각만은 안돼. 뛰자- 15분 안에 학교에 도착해야 된다. 내가 생각해도 바람처럼 달리고 있다. 지금, 죽어라고 달려서 드디어 교문이 보이는 곳까이 왔다. ...이제 500미터 오르막길 전력질주다. 심호흡을 한번하고, 가자- 하는데,

“...이제 가냐.”

바로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말했다.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 쪽 어깨에 스포츠 백을 비스듬히 맨 이지상 녀석이다. 웬일인가 이 녀석이, 먼저 말을 다 걸고-.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판에 대꾸할 기력도 없다.

“응.”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가려는데,

“이마는 좀 괜찮은가?”

또 뒷덜미를 잡는다.
나쁜자식-!!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이 녀석을 눈 하나 깜짝 않는다.
제 놈 때문에 맞은 거 아니냐구-! 미안하다고는 못 할 망정...!

어제 일이었다. 점심 시간에 밖에서 놀다가 종이 쳐서 후다닥 뛰어들어오는데 웬걸, 교실에 도착해 보니 몇 명 없는 게 아닌가.

“야, 김선경! 다 어디 갔어?”

학생회장 자격으로 공식 행사 참관하러 가서 지명이도 없었다.

“너네는 안 나가? 지금 밖에서 농구할거래는데?”
“몇 반이랑?”
“...1반-!”

선경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뭐 1반? 야, 조이혜 뭐해 나가자!”

윤선이가 옆에 있다 갑자기 소리쳤다.

“빨랑! 응원안해-?!”

...1반과 우리 3반은 꽤나 사이가 나쁘다. 나는 체육대회가 끝난 후에 전학을 와서 보지는 못했지만, 그 때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고들 한다. 혈투 끝에 우리 반이 이기긴 했지만, 준우승한 1반과는 지금 꼭 고양이와 개사이다.

“꼭 나가야 되나?”

더운데...

“-그럼 안 나갈거냐-ㅅ!”

김선경, 한윤선이 합창으로 소리쳤다.

“저번에 여자 배구 진 것도 열 받는데! 남자 농구는 이겨야지-!”
“네 짝도 나올 텐데, 안 볼 거야?”

선경이도 거들었다. 흠, 내 짝?

“그 녀석, 뭐가 예쁘다고-! ...어차피 오늘 학교도 안 왔지만.”
“...오늘 이지상 안 왔어?”

선경이는 자리가 멀어서 몰랐던 모양이다.

“어떡해~ 나쁜 자식~ 왜 안 와 가지고...”

발을 동동 구른다.

“걔 없으면 뭐, 안 될 거 있냐?”

허구헌날 안 오는걸 뭐...

“있지 그럼!”
“있어도 한참 있지. ...이지상 없으면 박기호는 누가 막아.”

윤선이가 말했다.

“박기호가 누군데?”
“1반에 웬수같은 놈 하나 있어... 키가 190이다.”
“-190-?! 고2가? 거짓말...”

아니 우유랑 멸치만 먹고 사냐?

“하여간에 나가자. 시작하겠다.”

선경이가 잡아끌었다.

“아참, 4교시 수업은 어쩌고 농구래?”
“...수학 선생님 오늘 결근이란다.”

나가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윤선이가 중얼거렸다.

“오늘 서리나 재수 없군. ...이지상이가 안 오다니.”
“맞아. 우리 반이 지게 생긴 건 안됐지만- 서리나 방방 뜨는 꼴 안 보게 된거 하나는 다행이다 야.”

선경이가 맞장구를 쳤다.

“넌 모르지? 체육 대회 때, 자기가 무슨 이지상 팬클럽 회장이냐? 경기 하는 데 시끄럽게 소리 지르고, 중간에 음료수 사다 바치고, 수건 갖다 땀 닦아주고... 그게 응원이냐?”

또 그 녀석 얘기다.

“아니 대체 이지상이 어디가 좋아서?!”

참다못해 한 마디 했다.

“...그럼 넌 어디가 싫은 건데?”
“한 두 군데냐-? 첫 날부터 없더니만, 맨날 결석에 조퇴에 수업 중간에 들어오고, 있어 봐야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고, 한 마디 어쩌다 했다 치면 십중팔구는 속 긁는 소리고- 난 짝이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구. 뭐 말을 해야 말이지. 사람 무시하는 것 같은 게, 정말 얼마나 기분 나쁜데!”

그랬다. 한 달 내내 이지상 그 인간과 이야기（랄 것도 없지만） 해 본 건, 손으로 꼽을 만큼 거의 없다. 이건 말이 없는 차원을 넘어서 사람 무시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가끔씩 상냥하게, 내 딴에는 부드럽게 말을 걸어보면 대답이라는게 다섯 글자를 안 넘어가니 환장할 노릇이다. 기껏해야. ‘아니’, ‘그래’, ‘필요없어’, ‘몰라’.... 차라리 영원히 오지 마라-! 운동장에 나가 보니 벌써 양 쪽 응원이 장난이 아니다.

“쳐 부셔라! 쳐 부셔라! 쳐 부셔라!”
“밟아라! 밟아라! 밟아라! ...”

...살벌하다. 이제 웬 한일전인가.
여기 와서 세 번째다, 3반과 저 1반의 경기가. 핸드볼은 우리가, 배구는 1반이 이겼었다. 체육대회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각종 경기를 하곤 하는데, 명목상 친선 경기지만 끝낼 때마다 적의는 더욱 이글이글 타오르기 마련이다. 점프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야, 3반-! 지면 죽-어!!”

우리 반 터프걸 세진이다. 얘는 얼핏보면 여잔지 남잔지 잘 구분이 안 가는데, 문제는 자세히 보면 '아~ 남자구나'라고들 한다는 것이다. 전교에서 유일하게 남자교복을 입는 아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세진이가 교복치마 입은 모습은 상상이 안 간다.

“깨 부셔라 1반-! 3반 짱-!”

애들이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얼마간 보고 있자니 정말 유독 큰 한 녀석이 눈에 걸린다.
골을 넣을 때마다 저쪽에선 난리가 났다.

“박기호! 박기호! 박기호! ...”
“저 밉살머리스러운 자식-!!”

윤선이가 분해했다.
20대 11이 되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슬슬 열받는다. 저 자식, 뭐야? 그래도 우리 반에서 정현준하고 윤수민이 잘 뛰고 있는데, 박기호란 녀석이 웬수다.

“이겨라 3반! 더잘해라 3반!”
“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이건 거의 악다구니 수준이다.
한참 응원을 하는데,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지상이다-!!”

저 쪽에서 누가 느릿느릿 교문을 통과해 들어오고 있다. ... 그 녀석인가?

“윤선아, 누구냐? 보여? 난 잘 안 보이는데-”

키가 작은 선희가 말했다. 누군가가 총알같이 뛰어나간다.

“...이지상 맞나보네! 서리나 튀어나가는 걸 보니까.”

윤선이가 말했다. 비아냥거리면서도 기쁜 표정이다.

“자식, 이제야 오다니...”

쪼르르 달려가서 가방을 뺏다시피 받는 걸 보니 정말 아니꼽기는 하다. 말 한마디 없이 와서는 교복 와이셔츠 단추 두 개를 풀고는 곧바로 교체해서 들어간다.
애들은 난리도 아니다. 언제부터 그랬다구 이지상 이지상...

“지상아- 왜 이제 왔어-?!”
“왔구나- 올 것이 왔구나-”
“잘해, 이지상!”

본인은 들은 척 만 척이다.
모두들 체육복 차림인데 혼자 교복이다. ...넥타이 같은 건 원래 잘 하지도 않는 녀석이라 단추만 풀면 오케이인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맨날 넥타이 없이 다니면 복장 위반으로 벌점이 쌓이게 마련이지만, 워낙에 각종 바둑 대회에서 수상을 많이 해서 상점이 많으니 상관 안 하는 모양이다. 벌점 1점에 상점 1점씩 없어지는 셈인데, 그게 윤선이 말로는 앞으로 5년간 벌점 받아도 상점이 남을 정도일 거라고 한다.

“플레이 플레이 이지상! 플레이 플레이...”

들어가더니 일 뛰고 저리 나는 것이 말마따나 꽤 한다. 물론 키야 그 박기혼가 뭔가 보다 10센티 좀 넘게 차이가 나지만, 점프력이 좋은 것 같았다. 점점 차이가 줄어든다.
잠시 후 지상이가 레이업슛으로 동점을 만들자 정말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끄아아아아-악!”

이젠 괴성까지도 지른다.

“이지상! 이지상! 이지상!”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옆반에서도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덜태웅! 덜태웅! 죽어라! 죽어라!...”
“덜태웅이 뭐야?”
“지상이가 서태웅 닮았잖아. 저쪽에서 무슨 덜떨어진 서태웅이라나...”

본인은 덜태웅이거나 서태웅이거나 들은 것 같지도 않게 태연하지만 나는 우스워 죽겠다. 덜태웅이라니, 정말 딱 들어맞는 이름이야... 너무 우스워서 주저앉아서 깔깔대는데, 주위 애들이 꺄악 하고 물러섬과 동시에 뭔가가 이마에 와서 딱 하고 맞았다. 농구공... 별이 보이는 게 눈물이 핑 돌았다.

“조이혜, 괜찮아?”

피했던 아이들이 우르르 주위에 몰려들었다.
너무 아파서 엉엉 울고 싶지만 체면상, 그것도 공 얻어맞고 울 수는 없다. 참았다. 결국 12점차로 이기기는 했지만 이마에는 혹이 생겼다. - 재수도 없지. 게다가 알고 보니, 저 쪽에서 슛을 하려는 걸 이지상 녀석이 블로킹한 공이 하필 내가 주저앉아 있을 때 날아왔던 것이다.

이지상 이 녀석-!!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내가 좀 웃었다고 금방 복수를 한 셈이 아닌가.
어쨌든- 어제 그 일로 아직도 이마에 혹이 남아있는 판인데, 그 장본인인 인간이 뭣이 무슨, ‘이마는 좀 괜찮은가’ 라구? 순간 앞뒤 안 가리고 퍼부어 대고 싶었지만, 지금 그러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다.

“...괜찮아.”

하고는 뛰어 가는데 뒤에서 또 말한다.

“지금 뛰어 봐야 지각이다.”

웬 상관이냐.
너 같은 녀석이랑 같이 지각해서 벌을 받느니 차라리 죽겠다-!!
그래서 더 죽을 각오로 뛰었다. 몇 분인가. 손목시계를 보려는 순간,

“너-! 지각이야 또!”

재수 없는 목소리가 말했다. ...주미선.

“...넌 어떻게 매일 지각이니? 참 나...”

밥맛없는 치와와!

“나 5초밖에 안 늦었어, 정말...!”
“5초는 지각 아니니?! 벌점 2점에 조금 있다 선생님 나오시면 기합이야.”

대체 이런 애가 선도부장일 건 뭔가. ...청연고등학교 최대의 실수다. 대들고 싶지만 그래 봐야 승산은 없다. ...치사하게 5초 가지고... 게다가 오늘은 지각생이 겨우 여섯 명이다. 거의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애들이라 워낙 지각생이 적긴 하지만 오늘은 정말 너무 한다. ...적으면 더 쪽팔리는데! 보나마나 오늘도 오리걸음, 선착순에 토끼뜀... 치마 차림으로... 너무한다!!! 체육 선생님이 나오셨다. ...이러다 찍히지...

“오늘은 하나, 둘, 셋... 여섯인가? 웬일로 적군. - 너희들!”

으아아...
그 순간 이지상 녀석이 어슬렁어슬렁 들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 녀석 아까 말만 안 시켰어도-!! 정말이지 철천지 웬수다.
여전히 느릿느릿 들어오더니 선생님에게 다가와서는,

“선생님, 저 출석하러 왔습니다.”

한다. 그랬더니 글쎄-

“아 그래, 이지상. 그래도 학교는 나오는군, 출석체크만 하고 갈 건가?”

하시더니 이 자식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쁠 텐데 기특하다느니 어쩌느니 기가 찬 소리를 늘어놓으신다.

“그래 가 봐라. 연습 열심히 하고! 대회 얼마 안 남았지? 우리 학교의 명예다!”

이러고는 등까지 두들겨 들여보내는 것이 아닌가.
...이쯤 되니 기도 안 찬다. 아니, 제 맘대로 오고 싶을 때, 그 시간에 오는게 학교냐!!
들어가면서 내 옆을 지나가다 한 마디 툭 던진다.

“열심히 해라.”

- 내 이 원수는 언젠가는 갚을 것이다. 꼭, 꼭, 꼭-!!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데, 악마 같은 체육선생님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제발 선착순만 말아 다오... 그것만은...

“기합을 주지 않겠다!”

응? ...지각생들이 모두 흠칫 놀랐다.

“선착순, 오리걸음, 팔굽혀펴기, 모두 오늘은 없다! 대신...”

대신 뭐-

“벽돌 옮기기다! 강당 뒤쪽에 벽돌 쌓아 놓은 것, 저-기 신관 건축장소까지 옮긴다!”

오, 신이시여...

“30분 후에 와서 각자 얼마나 옮겼나 검사한다! 불합격자는, 점심시간에 다시 나와라!”

쌓여 있는 벽돌 더미를 보니 서러워서 울어버릴 지경이다. 이런 빌어먹을... 어쨌거나 옮기기는 옮겨야 되겠는데... 지각생들이 제각기 벽돌을 들고뛰었다. 내 팔자야... 여섯 장 들고 한 번 옮겼는데 벌써 팔이 끊어질 것 같았다.
터벅터벅 다시 벽돌을 가지러 돌아오는 동안에 다른 애들은 벌써 세 번째 왔다갔다한다. 벽돌 더미는 여전히 태산이다. 마지못해 벽돌 두 개를 집어드는데 누가 툭 쳤다.

“...얼마나 옮겨야 되는 거야?!”

이지상 녀석, 또 나타났다. 마귀할멈 같은 녀석-!!

“네가 알아서 뭐하게? 도와라도 줄려구?”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 곱게 나오지 않는다.

“...그럴까.”

하더니 주섬주섬 벽돌을 주워 한 아름을 들고 간다. ...얼씨구? 이거야 완전 병 주고 약 주는 식이지만 도와준다는데 마다할 건 없다.

“조회는 어떡하고 나왔어...?”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건지 원...

“출석 체크만 하고 간다며-?”
“한시간만 하고 갈 거야.”

그러고는 도로 입을 다물어 버린다. ...저 자식은 아마 전생에 입 꽉- 다문 조개였을 거야. 한참 왔다갔다 옮기더니 휙 돌아서서 들어간다. 역시 나 들어간다는 말조차 없이.
...내가 고마워할 줄 알고? 벌은 끝났지만 벌점은 남았단 말이야-!! 이제 17점이다. 3점만 더 올라가면... 특수교육, 일명 ‘환상의 풀 코스 정찬’ 이 기다린다. -주미선 말로는 전학 한 달만에 이렇게 선도부 장부에 화려하게 등장하다니 대단한 일이란다.
풀 코스 정찬 이란, 벌점 20점이 넘으면 그 주 일요일에 등교해서 하루 종-일 애들 굴리는 것이란다. 하루종일 반성문, 각종 기합, 거기에 봉사활동이란 이름의 강제노동（예를 들어 벽돌 나르기, 풀 뽑기...）까지 하고 나면 정말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다고 한다. 뭐 이런 제도가 다...;;;; 어쨌거나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내일부터는 절대 지각하지 말아야지!
이윽고 체육선생님의 검사가 있었다. 내 벽돌 더미를 보시더니 한 말씀.

“...투포환 해 볼 생각 없나?”

...... ;;;;
들어가 보니 윤선이는 아침부터 책상에 엎어져 자고 있고, 서리나가 내 자리에 떡하니 앉아서 이지상에게 말을 걸고 있다. 기가 막혀서... 옆에 가서 섰는데도 비킬 생각을 안 한다. 열심히 떠들고 있다.

“...그래서 그 신문 열 개나 샀어! 사진 너무 잘 나왔더라 정말-”

하는데 이지상은 그 말을 들은 체도 않고 나를 보더니 말한다.

“...왔네.”

자리 주인 왔으니까 가라는 투다. ...고소하다. 저런 애를 누가 부반장을 시켰는지... 서리나가 마지못해 비킨 후 앉았는데, 책상 위에 웬 신문 조각이 놓여 있다.

“이게 뭐야-?!”

무심코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다. 이, 이녀석-!!

“이거 이지상 너 아냐-? 맞어?”

물을 것도 없다. 사진 속에서도 무표정한 얼굴, 틀림없이 지금 내 옆자리에서 볼펜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녀석이다.

“맞아.”

기사를 읽어보니 이지상 이 녀석이 무슨 LG배 주니어 기왕전에서 우승했다는 소리와 함께, 한국 대표로 일본에서 열리는 한·중·일 친선 대국에 출전한다는 내용이다. 우-와...

“이거, 언제 우승했다는 건데-?”
“어제.”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스포츠 신문이다. ...바둑도 스포츠인가.

“그래서 어제 너 점심시간까지 다- 끝나고 온 거니?”
“그래.”

...신기하다. 이런 녀석한테 그런 재주가 다 있다니.

“대단하다- 와...”

다시 신문을 들여다보는데 누가 와서 확 채어간다.

“...내거야.”

서리나다. 황당했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지상이 너, 쟤랑 친해?”

도저히 눈꼴 시려 못 봐주겠다.

“누구?”
“누군 누구야 서리나지- !”

피식 웃는다.

“...눈이 어떻게 됐냐?”
“근데 쟤는 왜 저래? 맨날 저러는데 가만있을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답답하다. 저쪽에 앉아 있는 서리나를 노려보는데- 눈이 딱 마주쳤다. 가슴이 철렁했다.모른 척 책을 펴고 들여다봤다. ...눈이 마주칠 건 또 뭐냐.

“조이혜-!”

서리나가 다가왔다. 으...

“너 잠깐 나좀 봐.”

그러고는 따라오라는 듯이 교실을 나가 버렸다. ...오늘은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나가 보니 복도에 서 있다. ...새삼 참 인상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미선은 눈이 큰게 그나마 예쁘장하게라도 생겼지만 얘는 눈꼬리가 올라가고 입매가 굳은 게, 상당히 표독스럽게 생겼다. 쫄지 말자...내가 죄졌냐 뭐?

“왜 그러는데?”
“- 너 아까 운동장에서 지상이랑 뭐했어?”
“벌받았어.”
“무슨 벌?”

슬슬 화가 난다. ...이게 지금 죄인 심문하나-!

“벽돌 옮겼는데 왜?”

나도 지지 않고 노려봤다.

“지상이도 벌 받은 거야?”
“아니, 내가 받은 거야.”
“네 벌을 이지상이 왜 대신 받는데?”

말투 한번 재수 없다. 나는 되도록 싸가지 없는 말투로 말했다.

“누가 대신 받았대?! 도와준 거야.”

서리나, 눈빛이 확 바뀐다.

“걔가 왜-”
“내가 알아?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인걸 뭐.”

이를 악무는 게 제 성질에 못이기는 모양이다. -지가 씩씩대면 어쩔 건데?!

“-너, 솔직히 말해봐-”
“뭘?”
“이지상 좋아해?”
“뭐, 뭐?”

얘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어디 남자가 없어서- ‘내가 미쳤냐?!’ 할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좋아하면 어쩔 건데 지가.

“좋아하면? 네가 어쩔 건데?”

이젠 열받아서 파르르 떤다. 얼씨구- 눈에서 불꽃 튀네.

“너, 너 내가 걔 좋아하는 거 몰라?”

말도 더듬는다.

“알아.”

한 마디로 대답했다.

“아는데 어떻게-”
“이지상이 네 거냐?”

말을 잘랐다.

“-뭐...?”
“걔가 네 거냐구. 네가 이지상 팬들도 다 떼어냈다며? 참 내... 네가 걔 여자친구냐? 이지상이 너 좋대?”
“조이혜...너...”

노려보는 게, 마음 약한 사람이 보면 기절하겠다. 아까 이지상이 ‘눈이 어떻게 됐냐’ 어쩌고 했던 말까지 해줄려다 그건 너무한 것 같아서 참았다.

“너무 그러지 마, 걔 너한테 관심도 없어.”

하고는 들어가려는데,

“그럼 뭐 너한테는 관심 있대-?!”

하고 소리친다.

“...알아서 뭐하게.”

하고는 교실로 들어와 버렸다. 별것도 아닌 게... 들어와서 내 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계-속 노려본다. 내가 이지상 짝인 게 배아픈 게다.

“...오냐. 보고만 있어라.”

혼자 중얼거렸다. 이 기회에 단단히 골탕을 먹여야지.

“-지상아-!”

성을 떼고 불러보긴 처음이다. 닭살도 약간 돋는다. 그러나... 여전히 펜을 들고 연습장에 동그라미를 그리던 지상이가 나를 쳐다봤다.

“...왜.”
“저기, 월요일날 내 생일인데 생일 파티 올래?”

일부러 크게 말했다. 곁눈질을 하니 서리나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하고 있다.

“월요일? ...며칠인데?”
“7월 1일. 올 거지?”
“...아니, 나 그날 일본 가.”

미안하다는 말도 않는다. 이런 나쁜 놈-!! 무안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그래...”

교실 저 편에서 서리나가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은 괜한 짓을 해서 나만 망신... 으아아아-!!! 그러고도 이지상, 이 인간은 태연하게 제 할 일만 하고 있다. 이 은혜는 꼭 갚으마-!!!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