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는 일반인이라도 체험할 수 있는 경험도 존재는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루시드 드림, 즉 자각몽이라는 유형의 꿈이다.
쉽게 말해서 꿈 속에서 꿈인 것을 자각한다.
그러므로 그 꿈속에서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영적인 체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도 이 루시드 드림이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신비로운 경험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시절이라서
루시드 드림이란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많이 도전했지만,
나는 영적인 체험과는 연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쉽사리 루시드 드림을 체험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순간적으로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가 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 자체로 너무나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부던히 애를 써도 번번히 실패하다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 자각몽에 성공하다니... 우선 몸을 움직여 봤다.
전체적으로 의식이 부옇게 안개가 낀 듯한 기분이다.
몸이 원하는대로 원활하게 움직이지만 정상적인 감각과는 다른 느낌,
뭐랄까... 마치 혈관 속에 혈액 대신 공기가 흐르는 듯 부자연스럽게 가벼웠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는 거다.
루시드 드림에 대해서 접하고 별 생각없이 나도 저것을 경험하고 싶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것을 경험할 때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두지 않은 것이다.
이를 어쩐다... 낭패였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쉽사리 허락되는 기회가 아니다.
이것을 허무하게 날려 버리고 싶지는 않아서 무엇이라도 좋으니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현실이라면 절대 할 수 없지만,
꿈속에서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바로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준비물,
바로 회칼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대략 30cm 정도의 칼... 회를 뜰 때 이용하던 칼이었다.
내가 자각몽에서 경험하고자 정한 것은 사이가 좋지 못한 새어머니를 살해한다는 것이었다.
현실에서라면 절대로 할 수도 없거니와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꿈이라면 다르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우스워서 실소가 세어 나왔다.
겁쟁이라서 무전취식도 못하고 굶어 죽을뻔한 놈이 꿈이라지만 살인이라니...
하지만 당시 새어머니에 대한 내 증오는 상식을 초월하는 단계여서 그대로 거리로 나섰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모습이다. 사람이 많은 로타리를 회칼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
그렇게 2개의 횡단 보도를 건너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꿈이 끝나기 전에 한방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평소 자주 술을 마시던 친구와 마주쳤다. 그 친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대체 어디를 가길래 칼을 들고 가고 있는거냐고 캐물었다. 순간적으로 찌를까 싶었는데,
어차피 꿈이니깐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찔러도 되지 않나? 생각했다가
저 꿈 속의 친구가 저항을 거세게 해대서 이 꿈에서 벗어나게 되어버리면 정작 목표를 찌르지 못하니깐,
찌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순간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니 자각몽이라고 아나? 모르나? 아무튼 꿈 속에서라면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지 않냐?"
친구는 그건 맞는 말이라면서도 불만 어린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어딜 가냐고 묻더라.
역시 꿈 속의 존재라서 평소와 달리 눈치가 별로 없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말해줬다.
"지금 나는 꿈속에 있으니깐, 평소에 재수없게 굴던 새어미를 담그러 간다.
담그고 나서 깨지않는다면, 뭘 해야 하지? 꿈이니깐 X체를 치울 필요는 없고..."
진지하게 생각해봤지만 역시 낭비였다. 굳이 치울 필요는 없다. 꿈에서 깨어나면 끝이니...
순간적으로 목에서 우득, 소리가 나면서 시야가 강제로 하늘을 향했다.
자각몽 속에서 누군가에게 턱주가리가 돌아갈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친구의 일격을 방어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걸 싫어하지만 이 실패는 좋게 생각하고 있다. 한대 쳐맞으니깐,
부옇던 의식과 뭔가 허공을 떠도는 듯한 몸의 감각에 현실감각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돌아오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건 그거고 한대 맞은 건 한대 맞은 거니깐 나도 친구의 턱주가릴 돌리려고 했는데,
"야이 새끼야 칼!!, 칼!! 칼!!!"
정말 위험했다. 나는 연쇄살인범의 범행등을 조사하면서 시간을 떼운적이 있어서
집에서 나설때부터 칼을 역수법으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턱에 한대 꽂았다면
친구의 목은 아마 길다란 자국의 자상이 새겨지면서 피를 뿜어냈을 게 뻔했다.
이것도 형의 가르침이 날 한번 구해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형에게 배웠거든.
상대에게 확실히 유효타를 먹이기 위해서는 몸을 비틀어서 뻗을 주먹을 뒤로 젖힌 다음에
직선이 아니라 약간 밑 방향의 곡선을 그으며 내리찍듯이 쳐야 큰 대미지를 먹일 수 있다고...
덕분에 역수법으로 회칼을 잡고 있던 내 팔은 중간에서 무사히 멈출 수 있었다.
사실 이 시점에선 또 다시 역시 이건 꿈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턱이 돌아가면서 목관절이 비틀릴때는 확실한 통증을 느꼈는데 친구가 후려친 턱 자체는 별로 안 아팠다.
근데 자각몽이란 게 이 정도로 지랄맞을 정도로 현실적일리는 없다는 생각 같은 게 들었기 때문에,
얼어붙어 있는 친구의 손에 칼을 쥐어줬다. 이미 누군가 신고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고 있었거든.
뭐가 어찌됐든 내가 취했던 포즈는 역수법으로 회칼을 잡은 손을 친구를 향해 뻗으려는 자세니깐.
그리고 그 곳은 연산 로타리라고 하는, 무려 지하철 역이 있는, 환승역이 있는...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니..
친구는 내게 불안해 보이니깐 차라리 경찰을 따라가자고 했고 나는 그것에 동의했다.
여전히 나에 대한 신용이 들지 않는 것인지, 칼을 건네 받고도 친구는 거리를 좁혀오진 않더라.
하긴, 나라도 굳이 거리를 좁히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 같긴 하다.
경찰이 왔고, 간단한 경위서 같은 걸 작성했다.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으니깐,
심각한 알콜 중독과 그에 따른 해리성 정동장애 의심 증상이 있다, 라고 진술하고 대부분의 추궁에
"나도 잘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안 찔렀으니 된 거 아니냐." 라고 대답했다.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예의를 차릴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멈춘 곳은,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사는 빌라가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였기 때문에 심란했다.
만약 친구를 마주치지 못 했다면 나는 새어머니가 저항하는 것에 웃으면서
"꿈이니깐 좀 곱게 가십쇼. 짜증나게 하지 마시고..." 같은 소리나 해대면서 공격했겠지.
아니, 만약 중간에 마주친 친구가 이 친구가 아니라 조금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였다면
너도 꿈이니깐 죽어버리겠다며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예의를 차릴수가 없었다.
경찰은 보호자가 오지 않는다면 집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다.
번화가에서 회칼을 반쯤 휘두른 인간을 돌려보낸다면 그거야 말로 제 역할을 못하는 무능한 경찰이다.
그래서 형사님에게 국밥이나 냠냠 얻어먹으면서 다음 날 친형이 데리러 올때까지 경찰서에 앉아 있었다.
어릴적부터 사고치면 매번 보는 형사님이라서 딱히 가두거나 수갑을 채우진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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