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90년대 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오싹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고,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한국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테니 여기에는 적지 않겠다）. 그리고 사람은 무언가에 염증을 느끼면, 그 무언가를 둘러싼 주변의 것들도 싫어하게 되기 마련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기의 나는 한국의 거의 모든 걸 싫어했다. 오죽했으면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입간판과, 퇴근할 때마다 보이는 아파트의 모습마저 불쾌했다.

특히 불규칙적으로 불이 들어와 있는 아파트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닭장에 가까워 보였다. 그곳으로 들어갈 때마다 어쩐지 내가 인간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상태에 있던 나는 우연히 미국의 프린스턴으로 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프린스턴 대학교의 초청을 받게 된 것이다. 어째서 그런 곳에서 나를 객원 교수로 초청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의 나는 뛸 듯이 기뻤고,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초청에 응했다. 그리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정말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머물게 된 곳은 프린스턴 교외 지역에 있는 2층짜리 벽돌집이었다.

미국 중상류층 사람들이 사는 단독 주택을 상상했을 때 떠오르는 그 모습 그대로다. 마당이 있고, 잔디가 있고, 차고가 있다. 집집마다 사오백 평이나 되는 부지를 차지하고 있고, 서로 멀찍이—아파트에 비하면—떨어져 있다. 자연스럽게 사람보다는 다람쥐가 더 많이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곳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더 이상 퇴근할 때마다 숨 막히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고, 각종 소음 문제도 겪지 않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집안을 뛰어다닐 수 있고（물론 실제로 뛰지는 않았다）,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턴테이블 위에 레코드를 올려놓을 수 있었다.

평생을 너무 정신이 없는 한국에서 살아왔던 탓일까. 나는 한동안 프린스턴이 주는 고요함에 푹 젖어 있었다. 아니, 아예 잠겨 있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곳에는 사람의 머릿속마저 침묵으로 물들이는 미지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펑 소리를 내며 마치 폭탄처럼 터져버렸다. 내가 프린스턴에 온 지 9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의 옆집에는 팩슨이라는 백인 남성이 살고 있었다. 팩슨 씨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서양인의 외모만 보고 나이를 맞추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 정확한 지는 모르겠다. 그는 변호사이자 전형적인 여피였고, 키도 훤칠했던 탓에 나는 금방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내가 마당에서 의자를 펴고 책을 읽고 있으면, 매일같이 그 근방을 달리던 팩슨 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가끔은 그가 흰 울타리에 팔을 얹고 내가 읽는 책을 바라보며, “그 책 재밌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재밌는 책이면 재밌다고, 재미없는 책이면 재미없다고.

내가 무슨 대답을 하든 팩슨 씨는 하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고선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군요”라고 굉장히 엘리트다운 어투로 말하며, 자연스럽게 나를 대화 속으로 끌고 갔다.

그와 나눈 대화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미국적이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제가 어제 영화 한 편을 봤는데요”, “명함을 하나 새로 팠는데요”…… 그렇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던 팩슨 씨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에게도 호감을 사던 사내였다.

그러니 팩슨 씨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건 새벽 1시 경이었고, 나는 물론 잠을 자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던 날이었다. 학교에서 동양학 수업을 하고, 오피스 아워에 학생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선 집으로 돌아와 간편하게 저녁을 먹고, 음악을 듣다가 잠자리에 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잠에 들었던 나는 한밤중에 깼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 두 발의 총성이 울렸기 때문이다. 쾅쾅 소리（대개 총소리를 ‘탕탕’이라고 표현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총소리를 표현하는 데 있어 ‘탕탕’은 너무 약한 것 같다）가 연이어 두 번 울려 퍼진 것이다.

나는 평소 잠자리에 들면 잘 깨지 않는 타입이다. 하지만 총성은 그걸 깡그리 무시할 만큼 컸고, 거의 창문을 뒤흔들다시피 했다. 그건 분명 총알이 가까운 곳에서 발사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잠에서 깬 나는 물론 어리둥절했다. 도대체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창문 밖에서 빨간빛과 파란빛이 점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밖을 내다보자, 밖에는 경광등이 켜진 경찰차 5대가 팩슨 씨네 집 앞에 줄줄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방탄조끼를 입은 경찰들이 팩슨 씨네 집 앞에 우르르 몰려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식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팩슨 씨가 총에 맞은 것 같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미국 경찰은 공포탄을 쏘지 않는다. 그리고 팩슨 씨가 경찰을 향해 총을 쏜 것이라면, 저 수많은 경찰들이 연이어 팩슨 씨에게 사격을 가했을 것이다.

몇 번을 생각해 봐도, 팩슨 씨가 총에 맞았다는 게 합당한 추론이었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망연히 밖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에는 자꾸만 ‘왜?’라는 물음이 떠돌아다녔다. 동시에 울타리 건너편에서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던 팩슨 씨의 얼굴도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궁금하다고 해서 곧장 집을 나가 경찰에게 다가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스레 꼬투리를 잡혀 제압당하기는 싫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다시 침대에 눕고 말았다. 물론 잠은 모두 달아난 상태였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건 그날 저녁이었다.

지역 신문을 구독한 옆집（팩슨 씨네 집과는 반대쪽） 아주머니가 신문을 들고 친히 우리집까지 찾아왔다. 아주머니는 처음 보이는 경박한 말투로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이라고 말하며 내게 신문을 건네주었다.

신문 1면을 읽은 나는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왼쪽에는 팩슨 씨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고, 그 옆에는 그가 은행 강도의 주범으로서 벌인 행각과, 오늘 새벽에 끝내 사살된 사실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총을 들고 뉴저지주의 은행을 차례차례 털었고, 최근 세 번째 은행을 털던 과정에서 비디오에 찍히는 바람에 신원이 확보되었다. 결국 새벽 1시에 그의 집으로 경찰이 출동했고, 체포 과정에서 그가 무리하게 저항을 한 탓에 총에 맞아 죽게 된 것이다.

내가 기사를 읽는 동안 옆에서 아주머니는 “하느님 맙소사”를 연발했고, 나는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신문에 붙어 있는 팩슨 씨의 얼굴 사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양쪽으로 살며시 올라간 팩슨 씨의 입꼬리에서 처음으로 ‘미국적 공포’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다.

（참고로 변호사인 팩슨 씨가 은행 강도 행각을 벌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근거는 있다. 미국은 그야말로 변호사가 넘치는 나라라서 경쟁이 매우 치열할뿐더러, 90년대 초 미국은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다. 아니면 단순히 팩슨 씨의 취미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때 느낀 것은 조금 더 근원적인 공포였다. 단순히 ‘당신의 이웃에는 살인마가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라는 유의 공포라기보다는, 어딘가 인간의 근원을 건드리는 유의 공포 말이다.

사실 그때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어렴풋이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처음 그 감각을 느낀 것은 자동차를 몰고 마을에서 마을을 옮겨 다닐 때였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지만, 미국의 마을은 하나같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천편일률적이다.

네모나고 평평한 건물들을 지나쳐 중심가를 빠져나오면, 거대한 복합 쇼핑몰이 나타난다. 영화관이 있고, 드러그스토어가 있는 그런 쇼핑몰 말이다. 쇼핑몰을 지나치면 광활한 자연이 나타난다. 그리고 강이나 숲 따위를 구경하다 보면 다시금 네모나고 평평한 건물들이 나타난다. 건물들이 모습을 감출 즈음에는 또 거대한 쇼핑몰이……

그런 곳을 거닐다 보면 세상의 모든 건 그저 세트장에 불과하고, 나는 그것도 깨닫지 못한 채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가련한 휴지 한 조각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니까, 한 인간으로서의 무력감을 상기시켜 준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감각을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다. 하지만 팩슨 씨의 기사를 본 후로는 아예 감각의 실체가 내 몸에 착 달라붙게 되었다.

‘옆집에 사는 이웃의 정체마저도 제대로 꿰뚫어 볼 수 없는데, 나는 도대체 이 세상의 몇 퍼센트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내 존재란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 그건 분명 미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미국적 공포’였다.

그렇게 고작 1년이라는 기간을 채운 나는 객원 교수직을 연장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프린스턴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아마 은행 강도가 옆집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처음으로 공항에서 나와 고향 땅을 밟았을 때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1년 사이에 무언가 바뀌었을 리도 없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원래 살던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감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안심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추운 겨울날 온몸에 부드러운 이불을 두른 것처럼.

그렇다. 이제 와서 말하기는 멋쩍지만, 결국 나도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미국이 낫다느니, 한국이 낫다느니 떠들 생각은 전혀 없다. 사람 사는 곳은 어느 곳이 되었건, 나름대로 피곤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저 인간의 근원적인 무력함 앞에서, 아파트라는 거대한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는 한국을 선호할 뿐이다.

나는 지금도 한국에서, 닭장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 집 안에서 걸어 다닐 때는 언제나 조심하고, 밤이 되면 오디오 볼륨을 낮춘다（턴테이블은 이제 베란다 구석 장롱에 놓여 있다）. 그런 생활은 여전히 나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물론 내 옆집에 사는 이웃이 지금 목욕을 하며 은행 강도를 계획하는 중일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