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엄마! 정신 차려. 내가 부르는 계좌 똑바로 적어야 돼. 거기다 돈을 넣는 거야, 알겠어? 거기다 넣는 거라고.”

“으응...”

“자 다시 부를게. 삼! 오! 이! 그리고...”

[보이스피싱이 점점 치밀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통화 상대방의 목소리를 복제한 뒤 주변인에게 연락하는 수법으로...]

서원일은 멍한 표정으로 TV를 응시한다.

[피해가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라...”

[이에 따라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상반기 5조 원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정부 당국은 이에 특단의 조치를...]

“야, 이거 참...”

“대표님, 보이스피싱 대부분이 외국인 명의 폰으로 이뤄졌답니다.”

“근데?”

“...우리 정부 공약이 외국인 개통 절차를 간단하게 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면...”

김 비서가 TV를 가리킨다.

[한편 야당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의 외국인 단말기 정책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지금 정부는... 3대 불법 정부입니다. 불법체류 노동자! 불법 보이스피싱! 불법...”]

“저, 저 개자식이...”

서원일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선거가 이제 코앞인데.

“대표님, 만일 이번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면...”

“당장 비서실장 전화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아야 할 거 아냐.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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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늙었다. 그래도 모든 걸 알고 있다.

“후보 되고 나서 한 마디도 안 하더니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응?”

“대통령님, 그래도 일단은...”

“박 실장, 막을 수 있으면 진작에 막았지. 아니 내가 바보도 아니고...”

하지만 이제 끝이다.

“대통령님, 그래도 이번에 협조하셔야...”

“협조? 협조는 무슨 얼어죽을...”

“그래도... 정권이 넘어가면 안되지 않습니까.”

천장만 멍하니 쳐다본다. 별 수 없다.

“어떻게 뭐, 일하는 척이라도 해보라는 거지? 그래, 알겠어, 알았다고...”

그의 굳은 표정 위에 희미한 웃음이 번진다. 재밌는 생각이 떠오른다.

“...한 번 진짜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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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세요, 제가 한가한 사람이 아니에요. 좋은 말로 할 때 협조하시죠.”

“죄, 죄송합니다. 제가 어, 어떻게 하면...”

“아니 죄송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하... 이렇게 합시다. 검찰청 신고 접수란에 계좌 등록하시면 제가 나머지 계좌 정지해드리겠습니다.”

“예...?”

“아, 그게 뭔지 모르세요? 검찰청 홈페이지 들어가서, 우측 상단의 신고 들어가시고, 거기서 전자금융거래... 아 됐습니다. 제가 링크 보내드릴게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고 뭐고! 당장 등록하세요. 아시겠어요?”

“예, 예...”

허겁지겁 타자를 친다. 김은수, 그 자식이 그럴 줄이야... 둘도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주민번호... 성별... 계좌번호... 클릭.



이, 이게 무슨...!



웃고 있는 포돌이 캐릭터, 눈치도 없이 싱글벙글.

다급히 카톡에 들어가 본다.



1이 지워졌다.

삭제를 누르기도 전에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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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보이스피싱도 한 번 당해봐야 안 당하는 겁니다. 국가 차원에서 모의 보이스피싱을 운영하므로써...”]

서 대표의 눈이 요동친다.

“빌어먹을! 이게 지금 뭐하자는 거야.”

[김 대통령은 전국민이 모의 보이스피싱을 당할 때까지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야당 측은... “이제 4대 범죄 정부입니다. 4대 범죄...”]

“대표님, 대표님... 이거 좀 보시죠.”

[대선 30일 앞두고 자충수, 대통령 지지율 20%선 붕괴]

의식도 하기 전에 완전히 꾸겨진 신문.

“이 인간, 진짜... 보통내기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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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제는 경제입니다.”

“서 후보, 항간에 떠도는 얘기를 보니까 말이에요. 그 모의 보이스피싱 할 때 속았다고 하면서 이런 멘트를 덧붙였다는데요. ‘이번 대선 서원일을 뽑아라.’ 뭐 알고 계신 거 있습니까?”

“아뇨 아뇨. 제가 알기론 전혀..”

“이제 5대 범죄 정부랍니다. 선거법 위반까지 해서 5대 범죄. 아니 이거 뭐 비빔밥도 아니고 범죄를 골고루...”

[일부 모의 보이스피싱이 서원일 후보를 홍보하는 데 이용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서원일 후보는 이에 대해...]

“선거 끝나면 결과 상관없이 한 대 패줘야겠어. 저런 걸 대통령이라고.”

“대표님...”

“왜! 또 6대 범죄 정부 될까봐?”

“대통령님 전화입니다.”

한숨, 전화기를 꽉 쥔 상태로

“대통령님!”

특유의 힘 빠지는 목소리 “내가 한 게 아니에요, 서 대표. 내가 한 게 아니야.”

“그럼 누가 한 걸까요?” 입술을 꽉 깨문다.

“서 대표, 내 말 좀 들어봐. 그거는 걔네가 보이스피싱 업체랑 짜고 친 거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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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통령님 말씀은... 모의 보이스피싱을 흉내내서 일부러 제 홍보를 한 거라고요?”

“그래, 생각해봐. 가뜩이나 시간 뺏겨서 짜증나 죽겠는데, 누구 뽑으라 그러면 얼마나 기분 더럽겠냐. ...말하자면 모의 모의 보이스피싱인 셈이지.”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겁니까.”

“내가 아는 업체 있으니까 연락해 보게.”

“...”

“반대로 상대 후보 측을 홍보해봐. 그러면 사람들이 다 거기서 떨어져 나갈걸? 아 참... 이건 보이스피싱 아니야.”

얇은 웃음, 뚝.

“이, 이... 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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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많습니다. 여론조사인 척 전화해서 뽑을 후보 결정했는지 물어보는 거에요. 만약 아직 안 했다고 하면 상대 후보를 홍보하는 거죠. 그것도 묘하게, 기분 나쁘게.”

억양이 다소 강한, 업체 사장.

“그러면...”

“그러면, 대통령 되는 꼴 보기 싫어서라도 후보님을 뽑겠죠. 중도층이 확 쏠리는 겁니다.”

“그런 걸 할 수는...”

“대표님, 현재 지지율 격차가 어느 정돈지 아시잖아요.”

“...”

“상대 후보도 조만간 시작할 겁니다.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하셔야 해요.”

“...알겠어.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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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전년 동월 대비 10%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 번 전화 오면 한 번이 보이스피싱이에요. 아 그니까 그 뭐야 모의 보이스피싱 말이에요. 이거 뭐 일을 할 수가 있어야지!”

“다 속여놓고 어쩔 땐 이 후보 뽑아라, 어쩔 땐 저 후보 뽑아라. 어휴, 둘 다 뽑기 싫은데 어쩌죠?”

[정부가 모의 보이스피싱을 중단한 이후로도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모의 보이스피싱을 따라하는 신종 홍보 기법이 등장한 탓에...]

“대표님, 더 강도를 높여야 합니다. 상대 후보가 완전 인간 쓰레기처럼 보이게요.”

“그걸 어떻게?”

“이민자에게는 ‘범죄자 이민 결사 반대’라는 문구랑 같이, 고령층에게는 ‘청년 착취 결사 반대’랑 같이 노출시키죠? 그럼 자연스럽게...”

“...맞춤형 보이스피싱이군.”

“그렇게만 하면 조만간 역전입니다, 대표님.”

“...좋아.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보이스피싱 업체가 보이스피싱은 안 하고 이런 거나 하면 돈이 되나?”

“...대표님. 정부가 모의 보이스피싱 시작한 이래로 저희 시장이 4조원 줄었습니다."

활짝 웃으면서 "그럼 누가 그 돈을 지불해야 할까요?”

“...”

“수익 구조가 바뀐 겁니다. 이젠 전국민을 상대로 보이스피싱을 하는 셈이죠.”

“...”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아니 대통령님.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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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표가 이제 거의 완료되었습니다. 그 전에 대통령 당선 인사 듣고 오시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선 저를 대통령에 뽑아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신뢰할 만한 정보에 따르면 강원도에 대규모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국민 여러분,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단돈 1억 원, 1억 원만 투자하시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