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은 세계가 멸망하는 날이다. 내가 사라지는 것은 곧 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일이다.

차 안은 이미 일산화탄소로 가득 찼다. 연탄이 타들어가며 내뿜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익숙해졌다. 창문을 테이프로 꼼꼼히 막아둔 덕분에 바깥 공기는 한 점도 들어오지 않았다.

노을이 타오른다. 앞유리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마치 종말 직전의 장면처럼 주홍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는 날이 마지막 날이 되다니.

핸들에 기댄 채 나는 웃었다. 차라리 이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에 세상은 마치 나를 위해 특별한 무대를 준비해준 듯했다.

손끝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두려움일까, 안도감일까. 아마 둘 다인 것 같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지쳐있었을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느꼈던 그 무거운 피로감. 회사에서 받았던 모멸감들, 친구들의 냉대, 가족마저 나를 포기한 그 순간들. 마치 바닥 없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것 같은 기분. 이제 그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보인다. 퇴근길에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부모, 서로 웃으며 대화하는 커플들. 그들은 모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한 사람의 우주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머리가 어지럽다. 숨이 점점 얕아진다.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갑자기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해주셨던 이야기. "명심하렴. 너는 결코 특별하지 않단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잠깐,
뭔가 잘못되었다.

창밖의 노을이 너무 붉다. 너무 선명하다. 마치 피처럼. 그리고 저 하늘에... 뭔가 있다. 새까만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저것은 구름이 아니다.

의식이 멀어져 가는데 저 하늘의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있다. 마치 거대한 박쥐의 날개처럼 펼쳐지며 도시 전체를 덮으려 하고 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세상이 정말로 끝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원했던 그런 종말이 아니다.

어둠이 밀려온다. 그 기분 나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웃고 있다.

그때, 차 안에서 누군가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브라보! 정말 장관이군."

낮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렸다고 생각했다. 내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는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조수석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완벽하게 다림질된 검은 양복, 그리고 입가에 걸린 악마 같은 미소. 그의 눈은 마치 용암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연탄 냄새에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자신이 초자연적 존재임을 과시하듯.

"누구... 누구야?"

악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니, 내가 아직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이상했다.

"나? 나는..." 그가 우아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네가 불러낸 존재라고 하면 될까?"

"무슨 소리야..."

"아, 아직도 모르겠나?" 그가 킬킬 웃었다. "세상은 네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고 했지? 하지만 틀렸어. 너는 정말 특별한 존재야. 그도 그럴 게 세계 멸망의 트리거는 너의 자살이었으니까."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소리쳤다. "내가... 내가 그런 일을 했다고? 나 때문에 사람들이...?"

절망이 밀려왔다. 죽음으로도 도망칠 수 없는 죄책감. 내가 원했던 것은 단지 내 고통의 끝이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나는 괴물이야. 나는..."

악마는 손뼉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절망도 좋지만 그런 건 너무 뻔하잖나? 내가 보고 싶은 건 좀 더... 다른 거야."

그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생각해봐. 너는 평생 무시당했지? 회사에서, 친구들에게서, 심지어 가족에게서도.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도 너를 알아주지 않았어. 넌 그냥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지."

그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던 거야. 너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어. 아니, 이미 바꿨지. 특별했던 너를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격하시킨 세상이 잘못한 거라고."

나는 그의 말에 빨려들어갔다. 그래, 맞다. 나는... 나는 늘 특별했는데...

"넌 혼자서 이 거대한 세상을 무너뜨렸어. 너 하나의 선택으로 말이야. 이보다 더 특별할 수 있을까?"

절망이 서서히 다른 감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묘한 희열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래... 그래! 나는 특별했어!" 나는 웃기 시작했다. "세상은 나를 무시했지만, 결국 나는... 나는 그들 모두를 심판했다고!"

"그렇지, 그렇지!" 악마가 박수를 쳤다. "죽어서야 비로소 네 특별함을 세상에 알렸구나!"

나는 황홀했다. 그 모든 굴욕과 무시, 외로움이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에 온몸이 전율했다.

"나는... 나는 신이었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악마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어. 이 악마 같은 친구야!"

악마가 악마 같다는 말을 하다니, 이건 유머인가?
그런데 그의 표정이 갑자기 차갑게 변했다.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고, 그는 나를 마치 사물을 보듯 관찰했다.

"하지만..."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리고 창밖을 다시 보라고 손짓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비명지르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평범하게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하늘의 그림자도, 거대한 날개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석양이 지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 거짓말이었어." 악마가 씁쓸하게 웃었다. "넌 그냥... 평범하게 죽어가고 있을 뿐이야. 특별할 거라는 마지막 환상이었지."

그의 목소리는 이제 악랄한 연민으로 가득했다.

"세상은 네가 죽어도 그대로 돌아갈 거야. 아무도 네가 사라진 걸 눈치채지 못할 거고. 넌 그냥... 한 명의 통계가 될 뿐이야."

나는 전신이 얼어붙었다. 그 황홀했던 순간이 산산조각 났다.

"그럼... 그럼 나는..."

"그래. 넌 아무것도 아니야.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의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차 안에는 다시 나 혼자만 남았다.

연탄은 여전히 타고 있었고, 내 의식은 점점 멀어져 갔다.

정말로,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