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와 살았다.

아니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5남매의 막내인 우리 아버지가 왜 할머니를 모시게 되었는지는 의문이 많지만

어쨌든 나는,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살았다.


담배를 피우시는 할머니 방의 공기는 언제나 좋지 않은 냄새로 가득했다.

어머니도 돌려돌려 할머니 방에 가지 말기를 말씀하셨던것 같은데

너무 오래 두어서 부서진 담배 가루가 묻어있던 그 오백원짜리 동전이 탐났던 나는

자주 할머니 방에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웠었다.

어머니도 딱히 숙제해라 심부름 해라 따위의 일로 나를 부르지도 않고 말이지.


"할머니 재밌는 얘기 해줘."


무릎을 베고 천장을 쳐다보며 발을 까닥이는 불순한 태도의 손자가 뱉은 말에도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본인의 기억 밑바닥 이야기를 하나 꺼내 주었다.


"조금 무서운 이야긴데, 할머니는 어릴때 고양이를 싫어 했어.

아마도 쥐띠라 그런가, 고양이가 너무너무 싫고 무서웠어.

그러던 어느날 내 어머니의 심부름을 다녀오는데 작고 검은 고양이가

계속해서 할머니를 쫓아오며 우는거야.

어찌나 그 울음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응? 고양이 귀여운데.. 그래서 할머니 어떻게 했어? 도망 갔어?"


할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손자에게 해도 될까 라는 표정을 잠깐 지으시더니

말씀을 이어가셨어.


"아니 가다 보니 작은 개울이 있는 다리를 건너게 되어서.."

"그래서?"


"그 악마 같은 짐승을 잡아서 물에 던져버렸어."


"와우.."

고양이를 좋아했던 나는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 였던지 형식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그날 밤에 말이지."


끝난줄 알았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온 동네 고양이들이 할머니 집을 둘러쌓고 밤새 울어대더라고. 마치 복수라도 하려는것 처럼."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말에 소름이 돋았다.

그게 무서워서 인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일에 대해 존재했다고 믿는 할머니 때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고양이를 한마리 키우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했을 당시에 아버지 집은 잘 사는 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둘째부인에게 가고 얼마 안가서 우리 아버지를 낳으셨다고.

항상 천덕꾸러기 였던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남은 유일한 자식이라 생각하셨는지

엄청 잘 해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어머니와의 결혼을 크게 반대 하셨다고.

지금은 미안해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것 같다. 할머니에게.


어느날이었던가 학교를 다녀온 나에게 어머니는 할머니 밥상을 가져오라 시키셨다.

할머니는 모든 끼니를 방에서 드셨는데 어머니께서 상에 따로 차려서 올려드리곤 하였다.


그날 나는 봤다.


그 작고 귀여운 고양이가 밥상위에 올라가 무서운 눈으로 할머니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마치 사냥감을 본듯한 그러한 표정과 행동은 내내 키우면서 처음 보는 것이라 굉장히 놀랐었다.

밥상을 보니 할머니는 한술도 뜨지 못하시고 떨며 고양이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얼룩아 내려와!!"


크게 소리 지르며 고양이를 낚아채 방 밖으로 살짝 던졌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몸을 추스르시며 나와 눈을 마주 쳤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공포에 빠진 할머니의 눈이었다.

나는 그날의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중학생 올라가고 얼마 되지 않던 어느날, 차가왔던 날씨가 조금씩 포근해 지던 그 어느날

학교에 다녀온 나는 조금은 소란스럽고 분주한 분위기의 집에 들어섰는데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얘기를 들은 그 어느날, 3일장을 마치고 소복을 입고 있던 울 어머니께서 집에 있던 나와 내 동생에게

장례 내내 보일러를 켜두어 너무 더워졌어 라고 말씀하시며 햇살에 비춰 보이던 그 얼굴에

보일듯 말듯 살짝 미소가 비친것 처럼 보인 그 어느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