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밤길, 한 남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마주 오는 불빛을 노려보고 있다. 남자의 손에는 반쯤 남은 소주병이 들려있었다.

‘그래, 잠깐이면 돼. 잠깐만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게 좋아질 거야.’

남자는 병나발을 불더니 빈 병을 풀숲 멀리 던져버렸다. 불빛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도로 경계석을 내려갔다. 신호등이 비상깜빡이처럼 황색으로 바쁘게 점멸했다. 남자는 다가오는 택시 불빛을 향해 한 걸음 바싹 다가갔다. 택시 지붕의 전광판에는 ‘AI TAXI’라고 선명히 적혀있었다.



“인공지능이 운전이 웬말이냐!”

“로봇은 공장으로! 사람은 일터로!”

“정부는 택시 기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가까운 미래.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단순 서비스 직종은 물론, 판사나 의사까지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었다. 특히 인공지능 택시는 택시 기사들을 빠르게 도태시켰다. 어느새 택시 시장은 인공지능이 70% 대체했다. 마치 MP3가 CD를 대체하듯이. 이대로 가다간 직업이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택시 기사들은 연일 시위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 택시의 사고율은 0%에 가까웠던 것이다. 요금계를 조작하거나 여성 승객에 대한 성추행의 위험도 없었다. ‘AI 택시’라는 단어가 주는 신뢰감은 ‘모범택시’ 이상이었다. 결국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택시 기사 중에는 인공지능 택시인 것처럼 속이고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임시방편이었다. 푼돈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인생을 파멸로 몰고갈 엄청난 과태료였다. 결국 인공지능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입증하기 전까지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라든지.



“이보게 김씨, 자네가 총대를 메어 주게. 좀 위험하지만 우리가 살려면 이 방법밖에 없네. 설마 죽기야 하겠어?”

노래방 단란주점에서 박씨가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현대판 러다이트（주: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시작된 기계파괴운동）로 불리우는 단체 ‘반AI전국노동자연합’의 간부였다.

“만약 제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으면 어떡하죠?”

김씨는 소주를 거하게 들이켰다. 병든 홀어머니와 처자식이 딸린 몸이다. 믿을 건 튼튼한 몸뚱이밖에 없었다. 20년 무사고 경력의 모범택시 운전수였지만 시대의 흐름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걱정말게, 사실 인공지능 이놈들이 보통이 아니야. 어떤 상황에서도 치명상은 피하도록 프로그램되어있다니까.”

박씨가 뒷머리를 득득 긁으며 말을 이었다. 뭔가 난처할 말을 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설령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전국의 반AI조합원이 자네와 가족들을 책임져 줌세.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아닌가?”

김씨는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게다가 인공지능 택시들은 보상금도 엄청나지. 입원이라도 하면 기본 10억부터 아닌가? 인공지능 택시 회사놈들이 자신만만해 하고있는 게야. 인공지능이 절대로 사고를 낼 리가 없다고 말이지.”

10억! 소주잔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지긋지긋한 반지하를 벗어나서 교외에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청춘을~ 돌려다오~젊음을~ 다오~~”

박씨가 마이크를 잡고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촌스런 멜로디와 함께 형형색색의 조명이 돌아갔다.



2개의 불빛이 점점 다가왔다.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없던 용기도 생겼다.

“인공지능 웃기지 말라 그래!”

김씨는 외마디 고함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고 도로로 뛰어들었다.

끼이이익! 쾅!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김씨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고통과 함께 야릇한 쾌감도 몰려왔다. 세상이 노래방 조명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돈다발이 폭죽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이보게 정신이 드나?”

김씨가 정신을 차린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다.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가 감겨있었다.

“흐흐흐..,인공지능..제깟 놈들이 어딜 감히...10억..제 보상금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그게 말이야...”

박씨가 뒷머리를 득득 긁으며 말했다.

“자네를 친 것이 하필 다른 택시 기사가 몰던 택시라네...요새 하도 손님이 없으니까 가짜로 인공택시 간판을 달고 불법으로 영업을 했던 모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