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의 비밀
김지현은 겉보기에 평범한 사무직 여성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에 무고한 사람들의 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은 오직 그녀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꼭... 이곳으로 계약을 하셔야하나요?”
공인중개사는 불안한 듯 김지현을 보며 말했다.
“그게...404호의 직전 입주자가 열흘 만에 실종된 것은 알고 계시죠?”
지현은 미소 지었다. 알다마다. 오히려 그 소문 때문에 찾아왔다.
이런 곳이야 말로 그녀의 열두 번째 살인을 위한 완벽한 장소였다.
“귀신이 나온다거나 하는 건 믿지 않아요. 가격도 너무 저렴하고.”
지현은 의심을 사지 않게 둘러댔다. 여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김민우가 이 근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다.
다음 희생양으로 점찍은 대학생이었다.
“그런 도시 괴담은 집값 걱정할 때나 신경 쓰이는 거죠.”
지현이 계약서에 서명하며 말했다.
공인 중개사는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김민우를 유혹해서 이곳에 불러들이면 그녀의 열두 번째 살인이 완성될 것이었다.
***
지현이 404호에 입주한 지 열흘이 지났다. 오늘 김민우가 집으로 찾아오기로 한 날이다.
이 집에서 사람이 실종되었다는 구실로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모든 준비를 끝마쳤건만
김민우는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을 해도 답이 없어서 신경질이 나는 와중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밤 12시였다.
“민우니?”
“네, 죄송해요. 일이 생겨서 늦었어요.”
지현은 민우를 어떻게 죽일지 속으로 생각하며
날카로운 칼을 등 뒤로 숨긴 채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그곳엔 민우가 아닌 낯선 남자가 서있었다.
그의 얼굴은 이상하게 어둡고 음침했다.
“당신... 민우가 아니잖아. 누구야?”
지현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남자가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민우라... 그렇군요. 당신의 다음 희생양은 그였군요?”
지현은 놀라 뒷걸음치며 자신도 모르게
칼이 슬쩍 보였다.
남자는 그런데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민우라는 남자가 왜 연락이 없는지, 왜 오지도 않았는지 짜증이 났겠고요.”
남자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맞죠?”
지현은 그제서야 이상함을 느꼈다.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변했다.
방 안의 불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남자는 천천히 실내로 들어왔다. 문이 저절로 닫혔다.
“너무 뻔하네요. 당신 같은 이들이 항상 그렇듯”
지현은 칼을 겨누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뭐 라는 거야! 당신 누구야? 당장 안 나가?”
남자는 웃었다. 웃음 소리는 크게 울리더니 곧 여럿의 웃는 소리로 바뀌었다.
“당신은 우리와 동족입니다. 그래서 이 빌라가 당신을 초대한 것이고.”
남자의 몸이 흔들리더니 분열되듯 여럿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열 개의 형체, 열 명의 이전 살인마들이었다.
“우리는 모두 이 방에서 삼켜졌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려다 우리가 죽은 거죠.”
지현은 핏발 선 눈으로 사방을 살폈다.
창문이 보였다. 그 쪽으로 달려가 창문을 열어보았다.
창문 너머로는 끝없는 심연만이 보였다.
“멍청한 건가?”
다른 형체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우리라고 도망칠 곳을 안 찾아 봤을까?”
벽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마치 상처가 갈라지듯 벽이 갈라졌다.
벽 속에는 시체가 있었다. 모두 10구의 시체였다.
썩지 않은 채 고통에 찬 모습 그대로 하고 있었는데,
지현도 TV에서 몇 번 봤던 연쇄 살인범들이었다.
“내일, 당신의 육체도 여기에 더해질 겁니다.”
한 형체가 시체의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현은 그 형체의 팔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과연 너는 민우...라는 사람에게 연락은 한 걸까?”
또 다른 형체가 말했다.
“아니, 그 전에 민우라는 사람이 있었을까? 너는 몰랐겠지만,
404호가 널 부른 거야. 네 마음을 읽고 네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줬지.”
지현은 혼란스러워졌다.
“무슨 소리야? 내가 직접 민우를 봤어! 편의점에서 매일...”
“네가 선택된 순간부터, 네가 본 것은 모두 환영이었어.
민우는 처음부터 없었어. 네 마음이 만들어낸 완벽한 희생양일 뿐.”
열 개의 형체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의 손은 진흙처럼 흘러내리고 불투명했지만
지현의 몸을 붙들었다. 차갑고 축축한 손들이 팔, 다리 그리고 목을 움키어 쥐었다.
“자, 우리와 함께 하자.”
형체들이 지현을 들어올렸다.
“영원히 살인의 쾌락이 있는 그곳에서, 너와 우리가 서로 죽고 죽이는 곳에서.”
지현은 비명을 질렀지만,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 했다.
404호의 벽은 지현의 마지막 살 조각까지 삼키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범한 벽으로 되돌아갔다.
***
공인중개사는 말쑥한 사내를 404호로 안내했다.
“그게...404호의 직전 입주자가 열하루 만에 실종된 것은 알고 계시죠?”
사내는 관심을 보였다. 공허한 그의 눈동자 속에 불빛이 반짝였다.
씻겨나가지 않은 피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흥미롭네요. 이 집으로 하고 싶습니다.”
공인 중개사는 그런 사내의 모습을 보며 눈이 잠시 검게 변했다가 돌아왔다.
그는 미소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네,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404호는 항상 새로운 주인을 기다립니다.”
그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사내가 서명하는 순간, 멀리서 벽이 환하게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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