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거울 앞
병원에 가기 전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 지도.
매일 오후 10시. 거울 앞에서 깨어난다. 이유를 알 수 없다.
기억이 끊기기 시작한 것은 한 달 전쯤부터였다.
처음엔 필름이 끊기거나, 건망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술 마신 것도 아니었기에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매일 오후 7시쯤 퇴근해서 집에 오면
그 뒤로는 기억이 안 난다.
오후 10시. 항상 거울 앞이었다. 욕실 거울 앞에 서 있는 나.
2~3시간 정도 지났는데 그 사이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났다.
핸드폰을 켜보면 문자나 전화를 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모두 내가 먼저 보낸 것들이었다.
한 번은 연락을 보낸 친구 중에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한 친구들도 있어서
괜한 오해를 산적도 있었다.
“야, 너 많이 바뀌었다? 나한테 쌓인 게 많았나 보네?”
나는 내 마음 속에 담아둔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다.
공포스러웠다. 내가 뭘 했는지 모르는 시간.
일주일 전에는 핸드폰엔 동영상 하나가 남아있었다.
재생해보니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보였다.
근데 나 같지 않았다. 나완...달랐다. 그 표정은....
"오늘도 좋은 하루였어. 그 나쁜 상사 새끼를 드디어 혼내줬다니까."
내 목소리인데 내가 아니었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였다.
그 다음 날, 회사에서 상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날 불렀다.
나는 긴장한 채 그와 얘기를 하던 중 충격적인 것을 알게 되었다.
상사는 왜 밤중에 전화를 걸어서 욕을 하냐면서 음성 녹음 하나를 들려주었다.
입에 담기 어려울 험한 소리를 하며 상사를 비난했다. 분명 내 목소리였다.
상사는 한 번은 봐줄 수 있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정식으로 얘기하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겁이 났다. 이건 내가 아니야! 절대로.
그 후로 거울이 두려워졌다. 그렇지만 정신병처럼
나는 그 날 이후로도 오후 10시. 거울 앞에서 깨어났다.
며칠 전부터는 또 다른 “나”가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다.
“네가 하고 싶었던 거잖아.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 후련하지 않아?”
어제는 녹음을 시도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핸드폰에 녹음 기능을 켜두었다.
오후 10시, 거울 앞에서 깨어나자마자 녹음 파일을 확인했다.
처음엔 일상적인 소리. 샤워하는 소리. TV 소리.
그러다 9시 즈음. 거울 앞에서 대화하는 소리.
“오늘은 누가 나설래?”
“내 차례지. 어제는 네가 했잖아.”
“그래, 근데 조심해. 녀석이 주도권을 지키려고 하고 있어.”
다 내 목소리였다. 모두 다른 말투였다. 마치 여러 명이 대화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오후 9시 50분. 곧 10시였다. 아직 “난” 거울 앞에 있다.
이번엔 깨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주도권을 지키고 싶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미소 짓고 있다. 원래 “내”가 아니었다.
“원래 걔처럼 버티려고? 소용없어. 곧 네 차례 끝나.”
거울 속 내 모습이 손을 뻗고 있다.
안돼!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이제 겨우 몸을 차지했건만!
“내”가 거울 밖으로 나오고 있다.
도망가려는데 몸이 안 움직인다. 거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거울 뒤에 누군가 보였다. 여러 명이. 모두 나. 다른 모습의 나.
9시 59분.
곧 10시다. 누군가 도와줘. 제발. 이대로 사라질까봐 무서워.
거울이 손을 뻗어 오고 있어. 날 잡으려 해. 이건 말이 안 돼.
시계가 10시를 가리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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