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당 안, 촛불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차디찬 공기 속에서 붉은 불꽃이 출렁였다.

이진수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잉크로 그린 복잡한 원이 펼쳐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본 구마 의식을 흉내 낸 것이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입술이 떨렸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바하…”

낯설지만 익숙한 주문이었다.
그는 유튜브 영상에서 보았던 여러 의식을 떠올렸다.
의미는 몰랐지만,
이 단어들이 무언가를 불러낼 것만 같았다.

“오므 마니 반메 훔…”

“오지 오지 바라오지 사바하.”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자여.”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고 깊어졌다.
주문이 이어질수록,
공기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촛불이 깜빡였다.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진심이었다.
어둠과 이어지기를 원했다.
그 힘을 원했다.

“문을 열어라.”

“이곳에 내려오라.”

그 순간,

촛불이 꺼졌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그리고,

“응답하라.”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응답했다.

-- 제1부 제2막: “잠식” --

오후 9시.

성황당 안은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곳에는 빛이 없었다.
아무리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진수는 숨을 쉬었다.
아니, 그는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몸이 땅에 닿아 있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었다.

팔도, 다리도, 손끝도…
모든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

마치…

물속에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는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꿈틀거릴 수도 없었다.

그때.

어딘가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나를 원했다.”

이진수는 그 소리를 듣고도,
입을 열지 못했다.

“너는 나를 불렀다.”

천천히,
천천히,
그것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너는 나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저 장난이었다.
의식을 따라 하며,
이상한 것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잘못했어.”

그는 속삭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그가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더 깊이, 어둠이 그를 잠식했다.

“잘못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어.”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입이,
그의 몸이,
그의 정신이—

멈췄다.

그리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카페 안, 따뜻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서현은 지루한 듯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바로 앞에는 과제 정리가 끝도 없이 쌓여 있었다.
이미 몇 시간째 이러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야산.
그곳 어딘가에 버려진 성황당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녀에게는 전혀 흥미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다시 커피를 마시려다 멈췄다.

아까 점심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학교 앞에서 만난 남자.

번호를 물어봤었다.
귀찮아서 웃으며 넘겼지만,
돌아보니 살짝 귀여웠던 것 같기도 했다.

“그냥 줄 걸 그랬나?”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과제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멀리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

카페 안은 조용했다.
그녀는 한쪽 귀를 기울였다.

잠깐 동안,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의 비명.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

산속은 어두웠다.

한 중년남성이 급히 하산하고있었다.

낮에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
조금 더 가볼까 싶어서 계속 올라오다가 해가 져버린거다.

후.. 아까 그냥 내려갈걸.. 애들도 기다릴텐데

그런데, 그때.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는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어디선가,
누군가,
처절하게 외치는 소리.

그는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군가 다쳤을지도 몰랐다.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보았다.

성황당 앞.
그 안의 어둠 속.

한 사람이…

공중에 떠 있었다.

몸이 부자연스럽게 뒤틀려 있었고,
그것의 발끝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는 숨이 멎었다.

“……뭐야, 저건.”

그것이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것은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입술을 조금 열더니,

”……제물이구나.”

그 순간,

바로 앞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

그가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목을 뚫었다.

차악—

피가 튀었다.

등산객은 순간적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목에 댔지만,
손가락 사이로 따뜻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는,
숨을 쉬려 했다.
그러나,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성황당 입구 앞에서…

공중에 떠 있는 존재.

그리고—

완전한 어둠.

⸻

천둥이 울렸다.

하늘이 찢어질 듯 흔들렸다.
검은 구름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폭우.

거센 빗줄기가 모든 것을 덮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성황당 지붕에서 빗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태어난 존재는
빗물에 씻겨나가지 않았다.

성황당 안,
흐릿한 붉은 형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

이서현은 갑작스럽게 가슴을 움켜쥐었다.

숨이,
숨이 막혔다.

그녀는 의자에서 몸을 비틀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무엇인가가 밀려왔다.
설명할 수 없는 압박감.

심장이 뛰었다.
아니, 뛰는 게 아니라—

두드려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산.
성황당이 있는 곳.

그 순간,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