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Veil - Dark Ambient Music - Immersive Lovecraftian Horror Atmosphere
11.
고석재는 자하층 로비에 다다르자 달리던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불길은 사방에 번져있었다. 검은 연기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놓여있던 검은 비닐 팩들은 시신들이 드러난 채 불타고 있었다. 더군다나 천장의 자재들이 떨어져서 로비 바닥은 울퉁불퉁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이대로 병상을 끌고 가긴 어렵겠어.’
고석재는 병상을 포기하기로 했다. 주민규를 묶고 있는 벨트를 풀고 들쳐 메고 가는 것이 나았다. 뒤에서 어지럽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졌지만 침착하게 구속 벨트를 하나씩 풀어냈다.
발목의 마지막 벨트를 다 풀어낸 순간, 누군가 등 뒤에서 감싸 안았다. 자신의 배 쪽을 내려다보자 괴한의 손이 깍지를 낀 것이 보였다. 얇고 가는 여성의 손이었다. 손에 한껏 힘을 주었는지 손이 허옇게 떴다.
고석재는 망설임 없이 여성의 손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아악!”
괴한의 비명소리를 무시하며 깍지를 억지로 떼어내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곤 여자를 밀쳐내자 그녀는 저항할 틈도 없이 벽으로 내던져졌다.
-퍽!
병상에 놓여있는 몽둥이를 들었다. 주변엔 어느새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7~8명은 되어보였다. 불꽃이 만들어내는 주황빛 아래 그들의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대부분이 체구가 작고 왜소했다. 그들의 시선이 방금 던져진 동료에게 쏠려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한 명씩 제압한다면...’
고석재는 들고 있던 몽둥이를 휘둘러 가장 가까운, 강퍅한 인상의 남자 후려쳤다.
-빠각!
몽둥이가 부러지며 광인이 그대로 쓰러졌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다른 광인들이 일제히 고석재에게 달려들었다. 고석재는 그 중 가장 앞선 마른 체격의 광인을 어깨로 들이 받았다.
-퍽
그 광인은 날아가며 뒤에 있던 동료들과 넘어졌다. 다른 광신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대로 고석재에게 달려들어 엉겨 붙었다. 손톱을 세워 할퀴고 옷을 움켜쥐며 매달렸다. 고석재가 부러진 몽둥이로 달라붙은 광인을 내리쳤다. 그들은 잠시 움찔 거릴 뿐 떨어지지 않았다.
‘다들 미쳐서 아픈지도 모르는 건가? 이대로는 위험하다.’
고석재는 몽둥이을 단단히 쥐었다. 부러지지 않은 반대쪽 모서리로 눈에 보이는 광인의 옆구리를 힘껏 내리 찍었다. 연달아 다른 광인의 어깨를 찍었다.
“으헉!”
“아악!”
광인 두 명이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끼아악!”
머리를 산발을 한 마지막 광인이 고석재의 등에 매달렸다. 고석재는 자신의 어깨에 얹어진 팔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업어 치듯 광인을 던져 버렸다. 날아간 광인은 일어서고 있던 다른 광인들과 부딪히며 그들을 다시 쓰러뜨렸다.
“허억-허억-”
고석재의 흉부가 격렬하게 오르내렸다. 안 그래도 연기로 숨이 막히는데, 격렬하게 움직인 탓에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듯 했다. 이 괴한 무리보다 자신이 체격이 좋았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더 늦게 전에 빠져 나가야해.”
고석재는 서둘러 주민규의 남은 구속벨트를 풀어내고 그를 오른쪽 어깨에 들쳐 멨다. 주민규는 마치 며칠간 굶은 사람처럼 체구에 비해 무척 가벼웠다. 심호흡을 하고서는 지하층 로비 쪽으로 힘껏 뛰었다.
로비는 이미 불길이 사방으로 번져 있었다. 천장에선 불붙은 자재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지하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유리문은 열기로 이미 깨져 있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석재는 더 생각할 틈도 없이 그쪽으로 달렸다. 엄청난 열기가 피부와 폐를 녹이는 듯 했지만 뜀박질을 멈출 순 없었다.
‘제발...!’
유리문을 지나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두 다리가 풀렸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주차장 바닥에 쓰러졌다. 기침은 멈추지 않았고, 온몸의 피부는 화상을 입은 듯 통증이 일었다.
‘다행히... 눈까지 익어버리진 않았군...’
피부 아래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 같았다. 정신을 잃을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이대로 있다간 불이 주차장까지 번질 것이다.’
고석재는 몸을 일으켰다. 주민규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뒤를 돌아보자 주민규가 온 몸이 빨갛게 익어버린 채 쓰러져 있었다. 주민규 위로 깨진 유리문 너머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주황빛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빛 속에 한 검은 실루엣이 서 있었다.
그림자를 따라 고개를 들자 깨진 유리문에 무당이 서있었다. 안지수 였다. 그녀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듯, 맹렬한 불길 속에서도 화상 하나 없이 서 있었다. 부릅뜬 눈에는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광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주변 불길은 마치 그녀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선가 부는 바람 따위가 불길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고석재는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바로 섰다. 그녀에게서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그림자 속에 그녀를 넘어선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방어할 만한... 무기 같은 게 필요해.’
재빨리 주변을 살폈지만, 무기로 삼을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고석재는 안지수에게 눈길을 떼지 않은 채 일단 주민규를 끌어 당겼다. 피부에 생채기가 좀 나겠지만 안지수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에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안지수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고석재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고석재는 안도하면서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떻게 저 불길 속에서 멀쩡히 서있을 수가 있는 거지?’
고석재는 주민규를 안아 올렸다.
“안지수씨.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멈추십시다. 이런...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하실 수 있습니까?”
조심스럽게 뒷걸음쳤다.
“...”
안지수는 말없이 계속 노려볼 뿐이었다.
‘...대화가 의미가 없겠어.’
고석재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그의 몸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뭐...뭐야?”
놀라며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주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벅지에서 압박감이 느껴졌다. 시선을 내리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허벅지에 오목하게 자국을 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운동으로 단련된 그의 허벅지는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굵었지만, 움켜쥐는 힘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고통이 너무 강렬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고석재는 고통으로 눈을 질끈 감겼지만, 주민규를 놓치진 않았다. 오금이 절로 오그라들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엄청난 압박감에 몸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며 눈알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거친 숨을 내쉬며 고통을 견디려 했으나, 점점 더 강해지는 압박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갑자기 안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샌가 그녀가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위대한 힘 앞에서는 미물에 불과한 네 힘은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 의지는 높이 살만하네. 아직 네겐 기회가 있어. 위대한 분 앞에 네가 종이 되길 맹세한다면, 너는 그 쓸모를 증명할 수 있을 거야.”
그녀가 입을 벌려 말을 할 때마다 시체 썩은 내와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났다. 살점이 타버린 것 같은 매캐한 냄새 같기도 했다.
고석재가 눈을 뜨자 안지수의 얼굴이, 너무나도 가까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릅뜬 눈 위로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피부에도 벌레처럼 무언가가 기어 다니고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미...인간이 아닌 건가...?’
그녀의 목덜미 뒤로 검은 덩어리 같은 것이 달라 붙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덩어리의 일부가 그녀의 피부를 파고들어 그녀의 몸과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치 기생체가 숙주를 점령해 가는 과정 같았다.
고석재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했다.
“안...지수씨, 잘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지금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안지수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지듯 올라갔다. 그리고 말했다.
“네 놈의 눈엔 이 모습이 괴물로 보이는 건가? 역시 불신자다워. 이것은 축복이야. 감히 너 따위가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신성한 축복이란 말이야!”
고석재는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휘감는 것이 느꼈다. 마치 거대한 뱀 수 십 마리가 자신을 옭아매는 것 같았다. 이어서 모든 방향에서 강한 압박이 가해졌다. 그 힘은 점점 강해졌다.
“끄윽!”
고석재는 엄청난 압력을 이기지 못 하고 주민규를 놓치고 말았다.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주민규가 바닥에 내던져졌다.
폐가 압박으로 찌그러들어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숨이 막히고 혈액 순환마저 막히자 그의 몸은 급격히 차가워졌다.
‘의...의식이...’
고석재는 안지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고석재의 시야는 서서히 흐려져 갔다. 의식이 점점 멀어졌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안지수의 얼굴 너머로 이질적인 형상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듯했으나, 동시에 어떤 인간도 가질 수 없는 기괴한 형체였다. 그 형상이 점점 분명해지는 순간, 고석재의 의식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주민규는 휘몰아치는 바람에 눈을 떴다. 사방에서 하얀 허공이 일렁이고 있었다. 현실과 단절된 것 같았다. 회색빛 연기가 비현실적인 속도로 그의 주변을 소용돌이치며 뒤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공간이...휘날리는 것 같아...’
손으로 시린 눈을 가리며 간신히 상체를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 온 몸의 피부를 벗겨버린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놀랍게도 그 어느 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몸을 살펴보자 자신의 나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내 앞에...무언가 있어...?’
고개를 들자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 사람 같아 보였다. 아니, 유령 같아 보였다. 회색빛 연기가 유령을 뚫고 휘몰아치고 있었는데, 형체의 허리춤에 있는, 경계면이 불분명한 검은 구체만큼은 뚫지 못 하고 옆으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유령 같은 형체 앞에는 거대한 나무가 서 있었다. 나무는 살아 움직이며 가지를 사방으로 뻗고 있었다. 나무 내부는 회색 연기로 가득 차있었는데, 하얀 배경과 색이 마치 반전 된 것같은 기묘한 모습이었다.
‘바람...저 안에서 불고 있어...’
유령 같은 형체는 나뭇가지에 옭아매져 있었다, 가지가 검은 구체에 닿자, 달팽이 더듬이가 자극 받은 것처럼 가지가 쪼그라들며 나무 안으로 사라졌다. 나뭇가지들이 검은 구체를 피하고 있었다.
‘구체...저걸...집어야 해.’
주민규는 본능적으로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닿자 익숙한 감각이 전해졌다.
‘귀면석...?’
귀면석을 움켜쥐는 순간, 하얀 공간이 시간을 역행하듯 나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곧 익숙한 현실의 풍경이 드러났다. 건물로 들어가는 유리문에서 번져 나온 불길과 천장을 따라 흩어지고 있는 연기, 기둥들 사이로 주차된 차량들. 지하주차장이었다.
‘앞에 있는 건...?’
유령 같은 형체는 고석재였고, 그 앞에 안지수가 서 있었다. 그녀는 어딘가 기이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아지랑이 같은 무언가가 그녀의 몸 곳곳에 파고들고 있었다.
‘...찬이도 저렇게 되었었는데...’
귓가에 작은 아버지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했다. 지금이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냥 도망쳐 이 모든 일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악몽도 잊을 것이었다. 어쩌면.
“끄윽!”
고석재가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하얗다 못 해 시퍼렇게 변하고 있었다. 산소 결핍이었다. 고개를 내렸다. 귀면석이 보였다.
‘이게 뭔 진 모르겠지만... 괴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어.’
귀면석을 움켜쥐었다.
‘이대로 도망치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이런 괴물이 하나가 아니라면? 그때는?’
김찬이 떠올랐다. 두려움이 앞서서 자신의 손으로 친구를 죽이지 않았나? 다시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때는 달리 선택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여기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민규는 귀면석을 쥔 손에 결연히 힘을 주었다. 결단을 내리자 근육의 떨림이 멈추고, 내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쳤다. 흙탕물이 가라앉듯 시야가 선명해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지수는 고석재를 붙잡은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깨어났네? 조금만 기다려 다음은 네 차례...”
그녀의 말은 그대로 목구멍에 걸렸다. 주민규가 귀면석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그녀의 이마에 강하게 내리찍었기 때문이었다.
안지수는 마비가 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그녀의 입은 경악으로 벌어졌고 고석재를 노려보던 눈동자는 마치 귀면석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눈꺼풀 너머로 사라갔다. 그녀의 피부 아래를 우글거리던 괴이한 것들도 일제히 귀면석을 향해 끌려갔다.
주민규는 자신의 몸이 귀면석 쪽으로 끌려가는 감각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귀면석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인력은 점점 강해졌다. 그의 손 위의 가죽이 쭈그러들기 시작했고, 귀면석이 그를 통째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그 순간 고석재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를 옥죄고 있던 보이지 않는 힘이 귀면석에 흡수되면서 해방된 것이다.
‘으으아아! 내...내가 찌그러지겠어!’
주민규는 귀면석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팔과 어깨, 머리 등이 보이지 않는 인력이 이끌려 귀면석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온 몸에 낚시 바늘이 걸려있고 동시에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으아아악!”
귀면석이 살짝 떨어졌다. 안지수의 이마도 뜯겨져 나왔다. 귀면석이 안지수에게서 멀어질수록 인력의 힘은 점점 약해졌고 주민규는 어느 순간 튕기듯 뒤로 나자빠졌다. 넘어진 자세에서 주민규는 안지수를 두려움에 찬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안지수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검붉은 액체가 눈을 타고 콧등을 따라 내려가 입을 지나 턱 아래로 흘렀다. 턱에 맺힌 피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 무언가 그것을 훑어냈다. 안지수가 팔을 들어 닦아 낸 것이 아니었다.
‘...뭐지?’
그녀의 머리카락이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시야가 또렷해지며 주민규는 끔찍한 진실을 목도했다.
‘아....아...으아아!’
주민규는 호기심을 저주했다. 그것은 검붉은 덩어리, 고깃덩어리였다. 하지만 주민규를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그것이 단순한 고기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 안에 사람의 신체 일부, 분명한 인간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김찬의 얼굴이었다. 피와 살점으로 형체가 일그러졌지만, 분명 김찬이었다.
고깃덩어리는 주민규가 죽인 김찬이었다. 그 덩어리가 마치 생물처럼 안지수의 얼굴 위로 기어다니며, 피를 따라 더듬거리듯 그녀의 얼굴을 덮어가고 있었다.
고깃덩어리가 피를 따라 이마의 열린 상처에 닿자, 마치 그곳이 목적지인 양 상처를 헤집으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지수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주민규는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에서는 연기로 인한 자극 때문인지, 아니면 공포와 혐오감 때문인지,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눈을 돌리고 싶은 단순한 욕구조차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 절망스러울 뿐이었다.
마침내 고깃덩어리의 마지막 한 점까지 상처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안지수는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비틀었다. 마치 처음 걸음마를 떼는 유아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인간이 낼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갑자기 주민규 옆을 무언가 빠르게 지나갔다. 고석재였다. 그는 마지막 힘을 모아 몸을 날려 안지수에게 들이받았다. 그녀는 트럭에 받힌 것처럼 날아가 불타고 있는 유리문 너머로 빨려 들어갔다. 유리문에서 악마의 혓바닥 같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고석재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았다. 주민규는 한참 불길을 바라보다 고석재가 외치는 것을 들었다.
“주민규 씨! 움직일 수 있습니까? 움직일 수 있으면, 부축 좀 해줄 수 있습니까?”
“...예...예?”
주민규는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불은 계속 번지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질식사할 지도 몰랐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고석재에게 다가갔다.
“허억-허억”
고석재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상태가 좋아보이진 않았다. 그는 주민규를 위아래로 훑더니 자신의 재킷을 벗었다.
“입으십시오. 몸을 가리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주민규는 문득 자신이 여전히 나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재빨리 재킷을 입었다.
“아, 예. 고마워요. 아저씨. 일어설 수 있으세요?”
고석재가 씩 웃어 보였다.
“뭐,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주민규는 고석재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차량 출입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불길이 번지고 있는 유리문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그림자...?’
주민규는 실루엣을 떨쳐내듯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잘못 본 것이겠지.
***
주민규와 고석재가 밖에 나오자 구급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주민규와 고석재를 발견하고는 병상을 끌고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혹시 안에 다른 분들도 있습니까?”
구급대원이 놀란 눈을 하며 말했다.
“...”
주민규는 대답하지 않고 고석재를 구급대원에게 넘겼다. 고석재도 긴장이 풀렸는지 병상에 누운 채 그대로 눈을 감고 말을 하지 않았다.
주민규는 구급 차량 뒷문에 걸터앉으며 구급대원이 건네는 담요를 둘렀다. 구급대원들은 더 말을 걸지 않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은 이미 거의 모든 층으로 화마가 번져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 위로 그보다 더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초자연적 실체가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것 같았다.
주민규는 그 연기를 보다가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귀면석. 방금 전까지 일어났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이제 이것은 그저 기묘한 무늬가 새겨진 돌덩어리에 불과해 보였다.
주민규는 알고 있었다. 이 돌이 결코 평범한 돌이 아니란 것을.
다른 곳에 있던 구급대원들이 차량에 다가 왔다. 의료진인 것 같았다. 고석재의 병상에 다가가더니 눈을 살펴보고 맥박을 재는 등 응급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명이 주민규에게 다가와서 손전등으로 눈을 비추며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주민규는 멍하니 대답을 하다가 다른 곳에서 가져온 병상에 몸을 뉘었다. 밤하늘에 별들이 연기에 가려진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구급대원이 그의 팔에 안정제를 주사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졸음이 밀려왔다.
‘끝이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마지막으로 고석재 쪽을 바라보았다. 구급대원들이 여전히 그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시야가 흐려지는 와중에 낯선 인영이 앞에 나타났다. 이전과는 다른 구급대원이었다. 그는 클립보드를 가슴께에 고정한 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다른 구급대원과 무언가를 주고받더니 주민규를 내려다보았다.
‘...왜...웃는 거지...?’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주민규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한 가지가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저...저거...!’
그의 소매가 살짝 올라간 팔목에는 선명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저주 받을, 검은 꽃 도형이었다. 복혼회의 상징.
주민규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약물이 그의 혈관을 타고 퍼지며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겨갔다.
그 문양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챕터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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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했던 이야기가 마무리 됐습니다. 대략 챕터 3까지는 진행되야 이야기가 완결 될 텐데. 하하 챕터 2를 언제 이어서할지는 모르겠네요.
여기까지 재밌게 보셨길 바랍니다. 어떠셨을지 모르겠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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