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the Veil - Dark Ambient Music - Immersive Lovecraftian Horror Atmosphere
10.
주민규는 눈을 떴다. 눈곱이 굳어버린 접착제 같이 뜯겨졌다. 고통이 밀려왔다. 이명이 들려왔다. 손을 들었다. 눈곱을 떼고 싶었다. 손목에 압박이 느껴졌다.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뭐지...?’
흐릿한 시야가 점차 또렷해졌다. 천장이 보였다. 천장은 살아있었다. 지렁이 떼처럼 꿈틀거렸다. 어두운 주황빛은 그림자마저 살아있게 했다.
‘벌...레?...아니야...연기다. 천장에 연기가...’
이명을 뚫고 웅웅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핏 들어서는 커다란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고주파의 이명이 낮아지며 웅웅거리는 소리가 익숙한 소리로 바뀌어갔다. 사람이 내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무어라 말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운율이나 어떤 체계가 있는 것처럼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들렸는데, 주민규에게는 그저 낯설고 섬뜩하게 들릴 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주민규는 고개를 들었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맨몸이 보였다. 몸 위로 뭔지 모를 액체가 뿌려져있었다.
‘끄윽. 이게 무슨 냄새야. 세상 토할 것 같다.’
몸을 움직이려 했다. 움직일 수 없었다. 힘이 없었다. 마치 자신이 바닥으로 가라앉아서 지면과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흐어으...”
도움을 요청하고자 했지만 입에서 헛바람 소리만 나왔다. 몇 번이고 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온전한 단어를 내뱉는 것은 불가능했다. 간신히 고개를 돌리자 횃불이 보였다. 횃불은 장대 위에 있었다. 그러한 장대는 여러 개가 있었고 횃불 사이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 서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검은 옷에 후드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 주민규의 아래쪽, 다리쪽 벽을 향해 서있었는데, 하나같이 양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가슴 앞으로 합장을 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주민규는 그들이 응시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단이 보였다. 지면에서 높게 솟은 단이었다.
‘강당 같은...곳인가?’
단 위에는 네모난 탁자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옆에는 누군가 서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 실루엣이 안지수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안지수는 검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꼭...무당 같은데...’
안지수는 양팔을 들어 올리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일곱 성좌, 십이 대천, 사방 대신, 팔방 신수, 일천 신령, 일만 장군, 십만 무사, 백만 병사, 천만 영도, 일성 일황 옥좌의 왕이시여, 제 부름에 응해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안지수의 목소리가 강당 안을 울렸다. 안지수가 양팔을 들어 올린 채 제자리 뛰기를 하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양손에 쥔 방울 다발이 안지수가 움직일 때마다 짤랑거렸다.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주민규의 두개골을 쪼개는 것 같았다.
-쩔그렁
갑자기 안지수가 방울을 던져버렸다. 이어서 탁자 옆에서 깃발들을 집어 들어 탁자 이곳저곳에 꼽아 넣었다. 깃발을 배치 후 허리춤에 꼽아 두었던 칼을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그녀는 탁자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탁자 위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칼로 베는 시늉도 하였다.
“가하배삭 박간쇄긴 어둔강만 인돌기된...”
말을 하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치 카세트테이프를 뒤로 돌리는 것 같은 말소리였다. 여자의 목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굵고 깊은 저음으로 질질 끌 듯 말했다.
단 위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올라 왔다.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안지수는 칼을 내던지고 양동이에 양손을 담갔다. 뜨거운 쇠를 물에 넣은 것처럼 양동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녀가 손을 빼내자 시뻘건 색의 액체가 팔을 따라 흘러 내렸다. 안지수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문댔다. 붉은 액체가 괴이한 문양을 남겼다. 그러면서 괴성을 지르거나 마치 가래를 뱉는 것처럼 걸걸한 소리를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안지수는 두 팔을 내렸다. 머리는 하늘을 향한 채 흐느적거렸다. 입으로는 말소리 내기를 계속 했다. 그녀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작은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안에서 무언가 꺼내들었다. 귀면석이었다. 그것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것을 보시오! 이것을 보시오! 신통하고 영험하며 기묘하고 존귀한 이것을 보시오! 왕께서 내려주신 이 보물을 보시오!”
안지수가 제자리에서 뛰며 귀면석을 든 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서 도열한 사람들의 입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도 켜져 갔다.
‘미...쳤어! 이 사람도, 저 사람들도! 모두!’
주민규는 온몸을 비틀며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벨트를 풀려고 애썼다. 저들이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 의도는 분명 악의가 가득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살아남으려는 본능적 욕구가 전신을 타고 솟구쳤다.
안지수가 천장을 향하던 시선을 내려 주민규를 바라보았다. 고개는 주민규를 향해 있었지만 눈길은 그 너머를 응시하는 듯 했다. 그녀는 양손을 가슴께로 내린 채 단에서 내려왔다. 상체를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걸어오는 모습이 마치 허공을 딛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주민규는 더 격렬하게 몸을 비틀었다. 벨트는 너무나 단단하게 매어있었다. 침묵하던 비명이 성대를 찢어내며 터져 나왔다. 굵은 저음의 웅얼거리는 소리 위로 비명소리가 유령처럼 공간을 떠돌았다.
안지수가 주민규의 옆에 섰다.
“오늘, 이 자리에서 위대한 분의 역사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계시된 약속이며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비록 아둔한 이들이 있어 진의를 흐리고 왜곡 시켰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거짓으로 우릴 현혹시킬 수 없고, 오직 진실만이 우리를 이끈다는 것을!”
도열한 이들의 웅얼거림이 더욱 커졌다. 안지수가 귀면석을 주민규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귀면석은 끔찍하게 뜨거웠다. 주민규는 공포와 고통에 몸을 뒤틀고 싶었지만 안지수가 자신이 못 움직이게 붙들고 있었다. 너무나 강하게 붙들고 있는 탓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안지수가 상체를 구부려 얼굴을 주민규에 가까이 대며 말했다.
“너는, 신의 살이 되리라.”
주민규는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저항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식은땀이 쉼 없이 흘러 눈이 따가웠다. 온 몸을 타고 도는 경련으로 탈진할 정도였다.
갑자기 주민규의 눈에 단 위의 탁자 위에서 보랏빛이 들어왔다. 빛은 천장을 가득 매웠다. 웅얼거림이 일제히 멈췄다. 안지수가 몸을 홱 돌려 단 위를 놀란 시선을 던졌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곧 자세를 가다듬고 외쳤다.
“신의 계시다! 우리의 기도가 마침내 신께 닿았다! 찬양하라! 찬미하라!”
사람들이 하나 둘씩 다시 읊조리는 소리를 내었다. 보랏빛이 그 소리에 호응하듯 빛이 세기가 변화했다. 이내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일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양손을 위로 뻗은 채 더욱 열성적으로 읊조렸다. 안지수 역시 양손을 높이 치켜들고 탁자 아래로 다가갔다.
빛이 점점 강렬해졌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읊조리는 소리 너머로 누군가의 속삭임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히엔...카....카...바이움...!’
주민규가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작은아버지. 주문 같은 외침이 점점 커져갔다.
‘카! 히엔! 카! 라움! 카! 바이우! 라! 우! 라! 우!’
안지수는 눈부신 빛 앞에 서서 환희에 찬 듯 양 손을 격렬하게 흔들어 댔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그림자 속에서 주민규는 보았다. 안지수 위로 솟구치는 가늘고 긴, 촉수와 같은 끔찍한 그림자를. 비정상적으로 수없이 솟구쳐 올라왔다. 마치 지옥 구덩이에서 마귀 거미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괴물이 되돌아왔다.
***
고석재는 지하층 로비에 들어섰다. 연기로 가득해진 이곳에 끔찍하게도 시신을 담은 비닐 백을 어지럽게 놓여 져있었다. 1층과 연결된 주 계단에는 이제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불이 이곳을 삼키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였다.
그는 재빨리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하층이 그리 넓진 않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초조해졌다. 박하사탕을 꺼내려는 찰나, 어디선가 웅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출입 금지] 입간판이 보였다.
고석재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동 중에 청소도구함이 보였다. 청소 도구함에는 파란색 대형 쓰레기통과 각종 청소도구들이 적재되어있었다.
“저 대걸레라면...”
청소도구함에서 대걸레를 재빨리 꺼내 걸레 부분을 발로 차서 부러트렸다. 꽤 쓸 만한 몽둥이가 만들어졌다.
고석재는 다시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자 철문 하나가 나왔다. 소음은 거기서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안지수의 목소리 같았다.
‘제발...늦지 않았기를.’
고석재는 심호흡을 하고서는 양 손으로 몽둥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리고 철문을 향해 돌진했다.
-쾅!
문 너머에서 눈을 찌르는 듯한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방 안이 마치 하얗게 보일 정도였는데, 이상한 것은 눈부시진 않았다.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 방 한쪽을 향해 바라본 채 서있었다. 방 한 가운데에는 병상 하나가 있었다. 그 위에 주민규가 알몸으로 누워있었다. 주민규 주위로 검붉은 액체가 사방에 흩뿌려져있었다.
‘사람들이... 이상하리만치 반응이 없군.’
마치 빛의 강렬함이 이들의 의식을 완전히 빼앗아간 것 같았다. 이들이 바라보는 방향에는 빛을 내뿜는 무언가만 보일 뿐, 경계 태세를 갖출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을 멀게 할 만큼 밝은 조명이라 생각하기에는 고석재의 눈에는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았다.
기이한 광원 앞에는 무당 복장을 한 여자가 양팔을 든 채 서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의 지도자처럼 보였다.
‘어쨌건 잘 되었다.’
이들이 넋을 잃고 있을 때가 기회였다.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나 방 중앙으로 다가갔다. 혹시 몰라서 몽둥이를 꽉 움켜쥐었다. 사람들은 마치 고석재가 보이지 않는 것인 양 앞만 바라보았다.
방 중앙에 다가가자 바닥에 기이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도형과 기호들이 그려져 있었다. 명백히 피로 그려 놓은 것 같았다. 곳곳에 하얀 가루를 쌓은 것이 보였는데, 소금 같아 보였다.
‘의미를 알 수 없지만, 뭔가 기능이 있어 보인다.’
고석재는 이 문양들과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었다. 이 방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마치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한, 온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한 느낌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마침내 주민규가 누워있는 병상에 닿았다. 주민규는 머리를 들어 빛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백내장 환자처럼 검은 동공이 하얗게 변하였고, 입술은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주민규의 상태였다. 주민규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치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몸이 말라있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배는 심하게 꺼져 있어서 그 위에 검붉은 액체, 피가 고여 있었다. 핏물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고석재는 핏물 속에 무언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을 뻗어 집어보려 했으나 근처만 가더라도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기이한 일이었다. 핏물이 저 안에 든 것의 열을 식혀주고 있는 것일지 몰랐다. 그리고 어쩌면 주민규가 급격히 마른 것과 관련 있을지 몰랐다.
‘일단 여기를 벗어나야 해.’
여기서 벌어진 “실험”의 일환 덕인지 이들은 자신을 인지하고 있지 못 했다.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야했다. 다행히 병상은 바퀴가 달려있어 이대로 밀고가면 될 것 같았다. 바닥에 그려진 것들을 피해가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서 단숨에 이곳을 벗어나야했다.
몽둥이를 병상 위에 올려놓고 주민규의 발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출구까지는 대략 10m~15m정도 떨어져 있었다. 있는 힘껏 병상을 밀면 중간에 서있는 이들을 떨쳐내며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그 전에 이들이 계속 넋을 잃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간다!’
고석재는 짧게 숨을 들이키고는 병상을 힘껏 밀었다. 병상은 빠르게 굴러가며 바닥에 그려진 문양들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갔다.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빛이 사라졌다. 방 안은 횃불의 어스레한 빛만 남았다.
-차르륵!
앞에 있는 사람을 병상으로 들이 받았다.
- 텅!
사람이 튕겨져 나갔다. 동시에 횃불 하나가 강한 바람을 받은 것처럼 꺼졌다. 방안은 한 층 어두워지고, 등의 뒤에서 격분한 목소리 터져 나왔다.
“뭐냐! 무슨 일이냐! 주술이?”
고석재는 그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밀쳐냈다. 다시 횃불 하나가 꺼졌다. 어디선가 낮고 깊은, 그러나 듣는 이로 하여금 불안에 물들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았다.
-쾅!
철문에 부딪히며 병상이 흔들리자 주민규의 배 위에 고여 있던 핏물이 흘러넘쳤다. 곧 안에 있는 것이 드러났다. 귀면석이 숨결처럼 수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주민규의 눈동자가 원래 색을 되찾았다. 그 즉시 전에 느낀 적이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자신을 분쇄기에 넣으면 느낄 법한 고통이었다. 특히 배에서 오는 통증은 참을 수 없었다.
“으아아아! 아악!”
고석재는 갑작스러운 비명에 시선을 내렸다. 주민규가 발버둥 치며 팔을 어떻게든 배로 뻗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고석재는 곧바로 귀면석을 발견했다. 병상을 계속 밀면서도 손을 뻗어 귀면석을 움켜쥐었다.
‘뭐야? 차가워?’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귀면석을 놓칠 뻔했다. 그러나 침착함은 그의 장점이었다. 고석재는 귀면석을 재빨리 외투 주머니에 넣고 복도를 따라 병상을 밀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분노한 얼굴로 뒤쫓아 오고 있었다. 벌어지는 철문 사이로 무당이 자신을 향해 손짓하며 괴성을 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착각이었을까. 그 자의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꿈틀거리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고석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주시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불길이 만들어내는 붉은 빛이 보였다. 지하층 전체로까지 불이 번진 것이 분명했다. 무엇이 되었든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나머지 문제는 그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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