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주민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저기 아저씨, 이 소리 혹시 들려요? 아저씨?”

 창문 밖은 어둠 뿐,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민규는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빛을 지하실 바닥에 비추자 먼지가 거의 가라앉아 안개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보랏빛이 약하게 맥동하듯 점멸하고 있었다. 

 주민규의 귀에 찌르듯 들리는 소리는 분명 저 보랏빛을 내고 있는,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했다. 처음엔 라디오 같은 기기에서 수신된 잡음 같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느리고 낮게 읊조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무어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민규가 아는 언어는 아니었다. 

 주민규를 긴장시키는 이유는 이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분명 작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카세트 플레이어가 스스로 작동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작은 아버지가   음성을 녹음 한 것은 분명했다.

 “...규...주민규...”

 주민규는 낮게 읊조리는 소리 사이로 선명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까지 녹음이 된 걸까? 아니면 환청인 것일까?

 “주민규!”

 갑자기 다그치듯 큰 소리가 들리자 주민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 치고 말았다. 혼란스러웠다.

 ‘뭐야? 무슨 일이...?’

 주민규는 마비된 듯 점멸하는 보랏빛 아래 카세트 플레이어만 노려보았다.

 “놀라지 마라. 어째서 네게 표식이 전이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 계획은 바뀌지 않는다. 나를 도와라. 그래야만 해. 내 친족 된 자로써 네가 적합하리라. 이리로 오라.”

 보랏빛은 이제껏 본 적 없는 기묘한 색으로 혼란스럽게 뒤바뀌어가며 점점 더 밝게 점멸했다. 주민규는 불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세상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마치  불빛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몸 전체로 느껴지는 속도감은 주민규를 더욱 혼란스럽고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감각이 무너져갔다. 이곳이 더 이상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빛은 안전하다. 그렇게 느껴졌다.

 주민규는 수백 년 만에 움직이는 거대한 바위가 된 것처럼 뻣뻣하게 카세트 플레이어로 다가갔다. 카세트 플레이어에 다가갈수록 빛은 더 강렬해지고 어디선가 쾌락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쾌락은 점점 고통으로 바뀌어갔다. 고통은 가슴에서 시작되어 몸 전체로 번져갔다. 걸음을 멈출 수도 없었다. 주민규는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쾌락과 고통 속에서 외투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뜨거운 무언가가 손에 만져졌다.

 순간 주민규 자신을 아찔하게 점령해오던 감각들이 옅어지면서 지하실이 다시 선명하게 보였다. 카세트 플레이어는 여전히 보랏빛을 약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안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기괴한 돌, 귀면석이었다. 

 “어디 갔느냐! 주민규! 어째서 네 모습이 흐려진 것이지? 시간이 없다. 어서 이쪽으로 오라. 너는 지금 위험에 빠져 있노라.”

 보랏빛이 다시 강해졌지만 다시 기묘한 감각에 빠져들진 않았다. 주민규는 귀면석을 꼭 쥐면서 조심스럽게 카세트 플레이어에 다가갔다. 

 “이런 고얀! 어떻게 된 것이냐! 앞에 있건만 잡을 수 없구나! 느껴지는데, 또 없는 것과도 같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카-히엔! 카-라움! 카-바이움!”

 작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빠르게 잦아들었다. 주민규가 몸을 수그려 카세트 플레이어를 집어 올렸다. 카세트 플레이어에는 구리선과 회로 기판 같은 것들이 조잡하게 부착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보라색 빛을 내고 있는 무언가와 연결이 되어있었다. 

 주민규는 처음에는 LED 등 따위라 생각이 들었는데, 보라색 빛에 익숙해지니 이것이 전등 따위가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맥동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 몰랐다. 맥동하듯 꿈틀거리는 이것은 빛을 내며 구리선에 묶인 채 빛을 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보석이나 금속 같은데... 어떻게 꿈틀거리고 있는 거지?’

 주민규는 조심스럽게 보라색 보석을 집었다. 순간 먼지가 보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며 주민규를 덮쳤다.

 주민규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고,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재생되고 있는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어느 순간 짓뭉개져 마치 바람소리처럼 들려왔다. 추위가 정면에서 번져오고 뒤따라서 처음 맡아보는, 그러나 거부감이 드는 기묘한 냄새가 느껴졌다. 코에서 무언가 흘러나왔다.

 ‘응? 코피가?’

 주민규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내리고 콧등을 집어 지혈했다.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은 지하실에 있지 않았다. 하늘이 보이고 그 하늘은 꿈틀대고 있는 회색빛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가 보였고, 웅크린 사람처럼, 아니 비슷한 무언가로 보이는 그림자들이 곳곳에 보였다. 

 ‘여긴...어디지? 저건?’

 시야 끝에 거대한 바위, 산, 어쩌면 살아있는 무엇일지 모르는 것이 우뚝 솟은 채 있었다. 어딘가 기분 나쁜 형상이었다. 사람처럼 사지가 달린 형상으로 사람에게 없는, 더 많은 다리가, 혹은 그렇게 보이는 것들이 나무뿌리처럼 지면에 박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거대한 인영이 내려다보는 것 같았고 어떻게 보면 뒤돌아 선채 웅크린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다. 먼지와 구름, 냉기, 냄새는 저것, 저 존재로부터 오는 것이 분명했다. 

 ‘저건...사람인...가’

 작은 아버지, 주종호는 회색 빛 아래에 서있었다. 아주 깔끔한 정장을 한 모습으로 마치 방금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았다. 

 실체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몸은 심하게 고문을 받은 것처럼 옷과 맞지 않게 매우 쪼그라 들어있었고, 손과 얼굴은 살아 있는 것이 의심이 들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헝클어진 채 사방으로 뻗쳐 있었고, 눈이 있어야할 곳엔 눈보다 큰 공동이 있었고 그 안에서 보랏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민규! 주민규! 네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아노라! 하지만 그게 끝일 테지! 너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너는! 너는! 그저 애송이에 불과해!”

 수염 사이로 벌어진 입에서 독 안개가 뱉어내듯 그가 외쳤다. 그는 주민규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그의 말대로 주민규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정확히는 다리가 마비가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시발, 이게 왜 안 움직여!’

 주민규의 눈에 움직이는 것이 또 들어왔다. 주변에 있던 검은 그림자라 생각했던 것들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바위, 혹은 흙무더기로 보였는데, 마치 품질이 안 좋은 영상처럼 움직임 사이사이가 끊기듯 다가왔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보석을 집자마...응?’

 주민규는 자신의 왼손에 아직 보석이 들려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 때문인가?’

 주민규는 더 생각하지 않고 보석을 그대로 앞으로 던져버렸다. 

 “주민규!”

 주종호의 고통스러운 외침이 날아가는 보석을 따라 멀어져갔다. 회색 공간이 순식간에 멀어지고 주민규는 다시 지하실로 돌아온 것을 느꼈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퍽 소리와 함께 부서져 버렸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주민규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보석은?’

 아래를 보자 사그라지는 보라색 빛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있던 친구, 김찬의 가슴 위에 보석이 있었다. 

 주민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보석은 분명 김찬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기생 벌레가 숙주의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컥!”

 김찬은 기도가 막힌 것처럼 가쁜 숨소리를 내곤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번쩍 뜬 눈에는 검은자가 윗눈썹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 있고, 목에선 핏발이, 다물지 못하는 입에선 침이 흘러 내렸다. 가슴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는 지 다급한 움직임으로 가슴을 긁어댔지만 보석은 김찬의 가슴을 파고들어 보이지 않았다.

 “야, 야! 정신 차려!”

 주민규는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핸드폰 플래시가 사방에 어지럽게 비추다 천장에 고정되었다. 김찬의 고통에 찬 몸부림이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주민규는 김찬 옆에 앉아 그를 안아 올렸다. 김찬이 팔을 마구 휘두르는 탓에 주민규가 맞기도 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시발, 어떻게 돼 가는 거야?’

 주민규는 친구를 진정시키려 오른 팔로 꽉 붙들면서도 왼손으로는 가슴에 난 구멍 주변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마치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구멍 주변은 우글거리고 있었다. 구멍  안쪽으로 손가락을 넣어보았지만 따뜻하지만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만져질 뿐 보석이라 생각되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제발...제바알! 어디 있는 거냐?’

 발광에서 몸부림으로, 몸부림에서 허우적거림으로. 김찬은 힘을 잃어갔다. 착각일지 모르지만 체온마저 빠르게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주민규는 왼손이 핏물과 정체모를 검은 덩어리로 지저분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주민규가 노력할수록 김찬의 생기도 빠르게 사라져 갔다.

 “아...안돼...찬이야...제발”

 김찬은 마지막 숨을 내쉬며 경련하는 것을 멈췄다. 주민규는 눈을 깜빡일 수 없었다. 자신이 죽은 것처럼 김찬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왜.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진 것인가. 찬이는 죽은 것일까? 이제 다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일까? 왜 하필? 왜?

 김찬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주민규의 뒤에서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이것은 주민규가 아니다! 네가 아니야! 너도 함께 하라! 함께...”

 주민규가 힘없이 뒤를 돌아보자 부서진 카세트 테이프에서 녹색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알 수 없는 언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 더 낮지만 격렬한 느낌이었다. 

 “저 씨발...것 때문이야!”

 주민규는 발작하듯 일어나 카세트 플레이어를 밟았다. 미친 듯이. 음향 부품들마저 산산 조각나자 소리는 멈추었다.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주민규의 거침 숨소리가 유령처럼 떠돌았다. 핸드폰 플래시의 창백한 빛이 먼지를 따라 기묘하게 일렁였다. 

 주민규는 초점 없는 눈으로 무너져 버린 지하실 벽을 바라보았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던 자리의 구멍이 유독 커다랗고 시커멓게 보였다. 일렁이는 핸드폰 불빛에 구멍 속 그림자가 벽을 타고 번져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구멍 속에는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어서 구멍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신의 부속지를 뻗쳐오고 있었다. 곰팡이가 벽을 빠르게 좀먹어갔다. 축축한 부속지가 핸드폰 플래시를 피해 넘실거리며 뻗쳐나갔다.

 구멍의 중심에는 어두운 보랏빛 광원 두 개가 빛났다. 주민규가 보았던 것이었다. 작은 아버지의 안광이었다. 그가, 저 구멍을 통해 오고 있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기이한 공간을 넘어 이곳으로 오려고 하고 있었다. 

- 빠각

 정적을 뚫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지하실을 메웠다. 주민규는 갑작스런 소리에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벽의 구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착각이었나?’

 눈가에 아까 보지 못 한 그림자가 들어왔다. 주민규는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내렸다. 김찬이었다. 아직 살아있었던 것일까?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움직였다. 자세히 보니 팔은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비틀려 있었다. 그리고 아까 들렸던 소리가 다시 들렸다

 -빠가각

 다리가 불가능한 각도로 뒤틀리고 있었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부러진 사지가 천창을 향해 뻗힌 채 요동치고 있었다. 기묘하고 타락한 그림자는 상황을 더 끔찍하게 보이게 만들었고, 심지어 더 많은 팔다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김...찬...?’

 주민규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공포가 스며들어왔다. 저것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지하실은 충분히 넓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불안정한 시선으로 사방을 훑었다. 천장 파편 중 사람머리만큼 큰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라면...’

 주민규는 기괴해진 김찬에게서 핏발 선 눈을 거두지 않은 채 날카로운 파편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본능에 따라 힘껏 내던졌다. 

-퍽

 돌덩어리는 괴물의 머리에 꽂혔다. 피가 튀었다. 김찬의 사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듯 떨더니 그 끝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팔이 마치 2개인 것처럼 갈라지고 다른 팔이나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무런 비명도,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김찬이 아니야. 김찬이 아니야. 김찬이 아니야...’

 주민규는 다른 돌덩어리를 들어 올려 고깃덩어리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 그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손에 집히는 돌이 없어졌을 때는 괴물의 부속지 역시 움직임이 둔해져 있었다. 주민규는 괴물의 머리에 박혀있던 돌을 들어 올려 그대로 내리 찍었다. 피가 튀었다. 다시 들어 올렸다가 찍고, 다시 찍고, 찍고.

 지하실 벽은 핸드폰 플래시의 창백한 빛을 가르며 핏물과 살점으로 붉게 물들어 갔다. 주민규는 내리 찍기를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갑자기 느껴진 손길과 아우성, 불빛을 느끼기 전까지.

***

 고석재는 박하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알싸한 향이 피곤함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더불어 피냄새도.  

 주민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슴 깊은 곳이 아려왔다. 왜 이번에도 한 발 늦은 것일까.

 주민규가 구급차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고석재는 주민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주민규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주민규를 덮고 있는 하얀 담요는 여기저기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방금 전까지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 쳤던 것이 떠올랐다.

 구급 대원들이 아직 지하실 안을 정리하고 있었다. 불안하지만 철문을 제거하고 진입한 덕에 지하실로 오가는 것이 수월했다. 다만 건물 전체가 무너질 위험이 큰 탓에 천장 지지대를 설치하고 있어서 지하실 정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고석재는 철문을 제거하고자 경첩을 제거했을 때, 틈에서 밀려오는 강렬한 피비린내에 그저 김찬이라는 친구의 출혈이 심각하다고 짐작했다.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이 없었기에 가스 등이 새어 질식했을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었다.

 막상 지하실에 진입하고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 한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곤죽이 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진 시신을, 아마 그 친구였겠지, 주민규가 계속해서 돌로 내려찍고 있었다.

 한 구급대원이 주민규를 진정시키고자 섣부르게 손을 대다가 주민규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얼굴 쪽에 타박상을 입기도 했다. 다행히 다른 구급대원들이 달려들어 주민규를 제압하지 않았다면 무슨 짓을 더 했을지 알 수 가 없었다. 

 지하실에는 사람의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어있었다. 벽과 천장이 허물어 진 것과 김찬의 시신이 있던 위치를 보건데, 콘크리트 파편 등에 쓰러졌던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러 집 밖을 나섰을 때까지는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일이 있어야 정상적인 사람이 그런 괴력을 내어 사람을 짓이겨 놓을 수 있는 것인가. 어쨌거나 시신은 곧 수습될 것이었다. 

 ‘음. 일단 회사로 복귀하는 게 좋겠군. 이 집이 복구돼야 뭐라도 건지겠는데...’

 고석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지하실에 진입했던 구급대원에게 인사를 했다. 구급대원도 고생하셨다는 말과 함께 다른 구급대원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고석재의 등 뒤로 구급대원의 대화가 들렸다.

 “운이 좋네, 보니까 가스관도 터져 있던데. 다행히 창문으로 외기가 들어와서 가스가 모이진 않았다만, 아무래도 그 영향이 없진 않았겠지?”

 “모르지. 가스 때문에 정신착란을 일으킨 건지. 것보다 지진 때문에 지금 병원들이 만원일 테고, 수용 가능한 곳 있데?”

 “다 돌려봤는데, 다행히 수인에서 받아 준다고 답이 왔어.”

 “그래? 그럼...”

 고석재는 걸음을 멈췄다. 구급대원의 말소리가 멀어졌다.

 “수인? 수인 종합 병원?”

 고석재는 수첩을 꺼내 한 페이지를 펼쳤다. 

[수인 종합 병원, 복혼회 신도들이 자주 보이는 병원, 특별한 점은 없으나 최근에 병동 확장 공사로 일부 병동 폐쇄 중, 병원 협조 필요.]

 

 고석재는 페이지 옆에 끼워져 있는 사진 하나를 보았다. 여러 의사들과 함께 주종호가 찍혀있는 사진이었다.

 ‘회사 복귀는 미뤄야겠군.’

 고석재는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