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아직 해가 지려면 1~2시간은 남았음에도 마당엔 그림자가 짙게 내려 앉아있었다. 고석재는 금방 돌아오겠다며 집을 떠났고, 김찬은 마당을 떠돌 듯 걸으며 누군가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주민규는 그 모습을 현관 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주민규도 핸드폰을 들고 있었지만, 화면이 꺼진 지 오래였다.
‘경찰에 신고를 할까? 아냐 일단 어머니께... 아, 내 지인 중에 조언을 구할만한 사람 없나. 생각 해내라, 생각!’
주민규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 엄마? 지금 작은 아버지 댁에 왔는데, 집에 안 계시는 것 같아요. 네. 당연히 다 해봤죠. 문이 그냥 잠겨 있어요. 열쇠도 집 열쇠도 아니고. 네. 맞죠. 엄마, 작은 아버지 싫어하는 건 아는데, 전화 좀 해주면 안 돼요? 내가 해봤는데, 안 받아서. 네. 하고 연락 줘요.”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께 거짓말을 해버렸다. 왜인지 작은 아버지와 직접 통화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감은 이미 쪼그라든 지 오래였다.
주민규는 목이 타는 것 같았다. 이 근처에 편의점 하나 없던 게 생각이 났다. 그래도 편의점을 찾아보는 게 좋을까. 주민규는 지도를 켜서 가까운 편의점을 검색해보았다.
어디선가 작게 벨소리가 들렸다. 주민규는 고개를 들어 김찬을 보았다. 김찬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마당 이리저리 오가며 어딘가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왠지 신경 쓰이는 벨소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벨소리가 끊겼다.
잠시 뒤 주민규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왔다. 어머니였다. 역시 연락이 안 된다며 직접 전화해보라는 문자 메시지였다. 주민규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서 작은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주민규는 침을 한번 삼키고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나고 잠시 뒤 벨소리가 들렸다. 아까 들었던 그 벨소리였다.
김찬이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씨, 누구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주민규가 통화 종료를 누르자 벨소리도 곧 멈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통화를 누르자 다시 벨소리가 들렸다. 김찬도 걸음을 멈추고 주민규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것을 눈치 챈 듯 했다. 주민규는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맞다 는 걸 확인 시켜주었다. 벨소리는 집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주민규는 그대로 돌아서서 현관문을 열어 봤지만 벨소리가 오히려 작게 들렸다.
김찬은 집과 담의 틈새 길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소리는 거기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집의 지하. 이 집에는 지하실이 있고, 벨소리는 그곳에서 들려오는 게 분명했다.
김찬이 담을 오른쪽에 두고 천천히 앞으로 가자 집 아래로 향하는 낮은 계단이 보였다. 마당에서 보이지 않았던 계단이었다. 계단 끝에는 녹슬어 붉은 빛이 도는 철문이 보였다. 계단 옆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흙먼지가 들러붙어서 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벨소리가 멈추고 주민규가 김찬을 뒤따라 왔다. 김찬이 뒤돌아 주민규를 보았다. 주민규는 표정이 굳은 채 녹슨 철문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김찬이 말했다.
“너, 너희 작은 아버지한테 전화 건거 맞지? 방금 벨소리 그거지?”
주민규는 답하지 않았다. 벨소리가 여기서 들릴 줄을 생각하지 못 했다. 뒤돌아서 마당으로 나왔다.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외면하고 싶었다. 뒤에서 김찬이 다급하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어? 그냥 가면 어떻게 해? 확인이라도... 아이씨.”
거칠게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날카로운 쇳소리 났다. 김찬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정적. 주민규는 왜인지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주민규가 뒤돌아서며 외쳤다.
“야! 뭐 좀 발견했어?”
“주민규! 이쪽으로 와! 빨리!”
김찬이 안에서 외치는 것이 들렸다. 약간 숨이 가쁜 듯 목소리가 떨렸다. 주민규는 불안 반 혼란 반으로 어리둥절해졌다. 주민규는 서둘러 지하실로 들어갔다. 지하실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어스레한 빛에 안을 살필 수 있는 정도로 밝았다.
김찬이 나무 막대로 벽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벽을 칠 때마다 먼지가 흩뿌려졌다. 벽에는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시커먼 구멍 속에서 무언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지하실 가운데에는 조각난 나무 막대들과 부서진 의자도 있었다. 다른 벽 쪽에는 보일러와 보일러에 연결된 관들이 설치 되어있었고 그 아래에는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야, 구경만 할 거냐?”
주민규는 김찬에게 다가갔다. 천장에는 전등 줄이 내려와 있었는데, 전구는 보이지 않았다. 발 아래에서 유리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래를 보니 검게 그을은 유리 파편들이 보였다. 천장을 다시 보자 아무래도 전구가 터진 것 같았다. 왜 터진 걸까?
김찬이 크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어으 힘들어. 야, 이 구멍 안 좀 봐봐. 저거 꼭 핸드폰 같지 않냐?”
주민규는 김찬이 가리키는 구멍을 보았다. 그 안에는 웬 빨간 빛이 보였다. 핸드폰에 저런 게 있던가?
김찬이 말했다.
“어떻게 넣은 건 진 몰라도, 일단 꺼내야 할 것 같은데...플래시 좀.”
주민규가 핸드폰 플래시를 켜자 김찬은 들고 있던 나무 막대를 버리고 잡동사니 더미를 살폈다. 곧 녹슨 쇠 파이프 하나를 짚어내었다. 보일러와 연결된 관과 같은 것으로 보였다.
김찬은 다시 숨을 고르더니 쇠 파이프로 구멍 옆을 힘껏 찍었다. 차갑게 굳어있는 시멘트들이 부서져 나오며 구멍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김찬이 몇 분간 반복적으로 찍어대자 구멍 안쪽을 살펴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어졌다.
구멍 안쪽에는 핸드폰은 없었다. 거기엔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가 박혀있었는데, 전원이 켜져 있는지 전원 표시등이 빨갛게 켜져 있었다.
“이게...어떻게...뭐지?”
김찬이 카세트 플레이어를 만져보며 말을 이었다.
“민규야, 다시 전화 걸어봐. 이게 아니면 폰은 어디에 있는 거지?”
주민규는 홀린 듯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들리고 곧 벨소리가 들렸다.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나는 소리였다. 재생 표시등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뭔가 이상하다.
주민규와 김찬은 묘한 울렁거림을 느꼈다. 천장에 내려와 있는 전등 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먼지가 일었다. 기다란 금이 순식간에 천장을 갈랐다. 뒤이어 엄청난 굉음이 덮쳐왔다.
지진이었다.
***
흔들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강한 충격이 지난 이후엔 빠르게 잦아들었고 곧 아무 일이 없다는 듯 잠잠해졌다. 굉음이 지나간 뒤에는 멀리서 자동차 경고음 소리가 줄이었고 흥분한 개들이 뒤따라 짖어대고 있었다.
지하실에 스며든 빛 무리 사이로 먼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와중에 주민규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기절했던 건가?’
몸을 살펴봤으나 찰과상을 입은 것 외엔 크게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먼지가 심하여 제대로 숨쉬기가 어려웠다. 주민규는 상의를 위로 끌어올려 코와 입을 가렸다.
‘어, 어, 세상이 뱅뱅 도는 것 같네.’
주민규는 벽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꾸 올라오는 기침과 눈 따가움을 견디며 지하실 문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있는 힘껏 당겨보았지만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문틀과 문이 지진의 충격 때문에 찌그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망할,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주민규는 창문을 살펴보았다. 창문의 유리는 모두 깨져있었다. 더군다나 크기도 크지 않아서 억지로 몸을 넣었다가는 유리 파편에 만신창이가 될 것이 뻔했다. 찌그러진 창틀 밖으로 빠르게 어두워져가는 것이 보였다.
주민규의 등 뒤에서 기침소리가 들렸다. 이어지는 신음소리에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주민규는 그제야 친구가 떠올랐다.
주민규는 김찬이 서있던 벽으로 다가갔다. 벽 구멍은 지진의 여파로 더 커져있었고 천장과 벽에서 떨어져 나온 시멘트 덩어리들이 앞에 쌓여있었다. 그 아래에 친구, 김찬이 깔려 있었다.
주민규가 크게 놀랐다. 재빨리 몸을 수그려 김찬을 살폈다.
“야! 야! 정신 차려!”
김찬은 대답이 없었다. 불빛이 필요했다. 습관처럼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이 잡히지 않았다. 허둥대며 다른 주머니를 뒤졌지만 마찬가지였다.
‘젠장, 어딘가 떨어트린 건가.’
주민규는 바닥을 쓸 듯이 더듬었다. 돌조각 사이에 무언가 잡혀서 살폈지만 핸드폰은 아니었다. 벽에 박혀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였다. 구리선 등이 조잡하게 덧붙여져 있었다.
‘이게 뭐라고...’
주민규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버리고서는 바닥을 다시 더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물체가 손에 잡혔다. 핸드폰이었다. 화면이 깨지긴 했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재빨리 플래시 라이트를 켜서 김찬을 살폈다.
김찬의 상태는 생각보다 나빠 보였다. 시멘트 파편을 맞은 것인지 머리나 팔 등에 피가 나있고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주민규는 김찬을 짓누르고 있는 시멘트 파편들을 치웠다. 파편들이 거칠게 쪼개진 탓에 맨손으로 옮기자 작은 생채기가 났다. 그러나 그것을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주민규는 파편을 다 치우고 김찬을 바로 뉘었다. 호흡이 불규칙한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먼지 때문인 것 같았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찢어 코와 입을 가려주었다.
‘공기가 그나마 괜찮은 곳이...’
주민규의 눈에 창문이 보였다. 김찬의 몸을 조심스럽게 들어보았다. 의식을 잃은 김찬은 예상한 것보다 무거웠다. 억지로 어깨를 잡고 끌어당기려 하자 김찬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다.
‘젠장, 어디 뼈라도 부러진 건가?’
주민규는 옮기기를 포기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지금 떠오르는 것은 119뿐이었다. 깨진 화면 너머로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신호가 약하다는 메시지가 뜰 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에 바짝 다가섰다. 마찬가지였다. 창문 밖을 향해 외쳤다.
“여기! 여기 사람 살려! 젠장, 누가 좀! 여기 사람이 죽어가요!”
대답은 없었다. 이곳은 재개발 구역. 이 집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주민규의 목소리가 닿는 거리에는 사람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주민규는 더 절박하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민규씨? 민규씨, 어딥니까?”
그때 멀리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고석재가 돌아온 것 같았다. 주민규는 다급하게 말했다.
“여기요! 아, 아저씨, 빨리 119 좀 불러주세요! 여기 지하실이거든요?”
땅을 박차는 소리가 커지더니 불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고석재였다. 고석재는 핸드폰 불빛으로 계단 옆에 나있는 작은 창문으로 안을 비추며 말했다.
“아니, 이게, 쿨럭 쿨럭, 괜찮습니까? 갑자기 땅이 흔들려서 급하게 돌아왔는데, 이런, 세상에... 집이 거의 주저앉은 것이...거기다 지하실까지 있을 줄이야.”
“아저씨, 제 핸드폰으로는 전화가 되질 않는데, 먼저 119를 불러주세요. 김찬이, 제 친구가 지금 상황이 안 좋은 게...”
고석재는 대답하지 않고 핸드폰 들어 119에 통화를 눌렀다.
‘현재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지연...’
“하필 이런 때!”
고석재는 다시 걸어보았지만 ARS 응답만이 건조하게 되돌아 올 뿐이었다. 고석재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바로 옆에 문으로 다가섰다. 그냥 보기에도 문 상태는 불안정해보였다. 고석재는 문 손잡이를 움켜쥐며 고석재가 외쳤다.
“민규씨, 문을 좀 밀어보겠습니까? 제가 이쪽에서 당길 테니.”
창문 너머에서 주민규 알았다고 답을 했다. 고석재가 소리 쳤다.
“하나! 둘! 세엣!”
성인 남성 둘의 힘이 녹슨 철문에 가해지자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와 함께 철문이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세엣!”
힘이 더 가해지자 문틀에서 돌가루가 흩날리며 천장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안쪽에서 주민규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자… 잠깐만요! 안되겠어요. 괜히 무리하면 더 무너질 것 같아요 젠장.”
고석재도 같은 생각이었다. 답답한 상황이었다. 고석재는 다시 창문을 향해 핸드폰 플래시를 비추며 말했다.
“제 생각에 방금 일어난 지진 때문에 다른 곳에서도 사고가 많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구급 요청을 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혹시 친구 분의 상태가 어떤지 가늠이 되십니까?”
“그게, 피가 많이 나는 게 심각해 보여요. 그것보다 뭔가 공기도 탁하고 아깐 몰랐는데, 지금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이 느낌이 안 좋아요.”
“제가 급한 대로 주변에 사람을 불러 모아 보겠습니다. 112든 119든 신고도 해 볼 테니 일단 버텨보십시오.”
창문 안쪽에서는 답이 없었다. 고석재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최선일 것이라 믿었다. 가능한 한 빨리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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