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주민규는 버스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선잠에서 깼다. 그는 다크 서클이 내려앉은 눈으로 창밖을 살폈다. 하품을 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의 검은 화면 위로 주민규의 얼굴이 비쳤다. 약간 갸름한 얼굴에 짙은 눈썹, 멍한 눈, 그리고 살짝 곱슬끼가 있는 머리가 눌린 것이 보였다.

 주민규는 핸드폰 화면을 거울삼아 머리를 매만졌다. 머리가 다시 자연스럽게 자리 잡자 핸드폰을 켰다. 문자 메시지 화면이 떴다. 보험회사에서 보낸 문자메시지였다.

‘...보험금 수령을 위해 본인 확인 절차가 필요하며 관련한 서류 송부를 요청 드리오니 문자 회신을...’

다시 보아도 손이 절로 떨리는 문자였다. 한 보험회사에서만 보낸 것도 아니었다. 모두 아버지 이름으로 된 보험이었다.

처음에는 스팸 문자이거나 보이스 피싱 따위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떠오른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에게도 사기 문자가 갔을까? 어머니께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그 보험 네 작은 아버지가 들어놓은 것 같다. 받지 마. 무시해. 알았어?”

주민규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머니의 반응을 볼 때 이건 사기가 아니었다. 문자를 확인해서 보험금 따져보니 어림잡아 10억 원 정도였다. 솔직히 누가 거절하겠는가. 택배 상하차를 하던 도중에 집으로 돌아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같이 알바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주민규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어머니를 식탁에 앉히고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주민규가 일방적으로 어머니를 추궁하는 것에 가까웠다. 어찌 된 일이냐고, 왜 받지 말아야하냐고, 이 돈이면 당장 독립하고도 남을 돈이었다.

어머니는 주민규의 얘기를 조용히 듣다가 말했다.

“아까 보험 회사에서 사람이 왔다 갔어. 무슨 조사원이라고 하더라. 도련님에 대해서 물었어.”

주민규는 조사원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조사원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험 사기래요?”

“그 아저씨 말로는 그런 건 아닌데...”

어머니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쉬이 말하지 않았다. 주민규가 답답함에 짜증을 부리며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보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 안 할라고 했는데... 네 아버지랑 도련님이랑 사이 안 좋았던 건 알지? 그게 왜 그런 진 모를 테고. 음...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어.”

어머니의 설명은 이랬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실종되었다. 할머니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셨고, 아버지가 성인이 되었을 때 결국 과로로 숨을 거두셨다.

아버지는 마치 기다린 것처럼 살던 집을 나왔다. 그리고 작은 아버지와는 의절한 것처럼 연락을 끊었다.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가 미쳤다고 말 할뿐, 그 이상의 얘기는 어머니께 얘기하지 않았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물을 수 없다. 아버지는 두 달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를 단 두 번 만났는데, 그때가 결혼식과 장례식이었다. 단 두 번의 만남으로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에게 까닭 모를 불쾌함을 느꼈다.

“도련님은...어딘가 이상했어. 날카로웠달까.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는데. 사람이 좀 마른 편이기도 했고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어.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사람을 훑어보듯 했는데, 뭐라고 해야 되나? 차가운? 냉혹한?”

“어머니를 무슨 실험대상 같은 걸로 봤다는 거예요?”

“그래, 그런 것 같다. 사람으로 보는 눈빛은 아니었거든. 표정도 굳어있고 저 양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안 되고, 눈알은 가만 두질 않는데...”

어머니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양어깨를 감쌌다. 생각만으로도 불쾌한 것 같았다.

작은 아버지는 결혼식 당일에 갑자기 귀신처럼 나타나 조용히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에 사라졌다고 했다. 어머니는 결혼식 당시에 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버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를 보자 화가 끓어올랐는지 하객들도 알아볼 만큼 얼굴이 붉어졌다고 했다. 주례를 맡은 목사가 재치가 없었더라면 결혼식을 망쳐졌을지 모른다고 어머니는 덧붙였다.

어머니가 작은 아버지를 두 번째 봤을 때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를 때였다. 이때는 주민규도 보았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주민규 본인도 얼굴이나 체격 따위가 비슷한 것이 혈통이 이어져있다는 것을 느낀 탓에 불쾌했던 기억이 있었다.

주민규가 말했다.

“아, 기억나요. 이런 말하기 죄송한데, 기분 나쁜 게 있었긴 했어요... 게다가 걸음걸이는 왜 그렇게 걸으시는 건지. 꼭 유령 같았는데. 상체를 안 움직이며 걷는 게...”

“맞아. 민규 네가 그렇게 말한 게 생각난다.”

어머니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도련님이랑 얘기를 좀 나눴었어. 목소릴 처음 들었었지. 의외로 목소리나 말투는 꽤 따뜻했다? 다소 안심이 됐는데, 그것도 잠깐, 그게 연기란 걸 도련님이 이상한 물건을 건네는 순간 바로 알겠더라.”

“물건이요?”

어머니는 손이 시린 것처럼 주무르기 시작했다. 고민을 이어가던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어머니는 작은 주머니 하나를 가져왔다. 검붉은 색에 광택이 나는 천주머니였다.

주민규는 주머니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가져와 살펴볼 요량이었다. 어머니는 주머니를 자신의 몸 쪽으로 당기며 말했다.

“일단 말을 끝까지 들어.”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그 때를 다시 회상하는 것 같았다.

“이걸 건네는 도련님의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다. 으, 사람이 어떻게 자기 형 생각을 눈곱만치도 생각하지 않는 건지. 네 아버지가 싫어했던 이유를 알겠더라. 뱀이야. 뱀.

눈빛이랑 얼굴이 생각나서 자꾸 말이 새네. 도련님이 내 손에 이걸 억지로 쥐어줬어. 깡마른 손이 어찌나 억척스럽던지 어떻게 거절도 못 했어. 그러고선 조의금은 따로 나중에 준다는 말만 하고서 휙 가버리더라. 올 때와 마찬가지로 귀신같이. 뒤따라갈 엄두는 나지도 않았어.

민규야, 너, 몇 주 전부터 엄마가 계속 힘들다 했던 거 기억나니?”

주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버지 때문에 힘드셨을 거라 생각했고, 어머니를 위로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어머니가 별 말이 없었더랬다.

“민규야, 어휴...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그게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미신을 싫어하잖니. 그런데... 인정하고 싶진 않은데... 우연인지 어떤지 몰라도, 도련님이 이걸 쥐어주고 나서부터 계속 잠을 편하게 잔 적이 없어.”

주민규는 눈을 크게 뜨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종교도 없고, 미신보다는 현실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심심풀이 삼아 하는 운세 풀이 따위도 역정을 낼 정도였다.

“처음에는 민규 아빠의 반자리가 커서 그런 갑다 했는데, 아니야. 이게 점점 증상이 심해지는 지 요샌 자고 일어나면 아주 찝찝한 것이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꿈을 꾸는 것 같은데 기억도 잘 안 나고...”

“병원은 가보셨어요?”

“얘는, 진즉에 갔다 왔지. 감기 같은 건가 싶어서. 별 이상은 없데. 의사 선생이 약을 처방해주긴 했는데, 그냥 소염제 같은 걸 처방하더라. 더 큰 병원에 갈까 하다가, 엄마가 생각에도 어디 몸이 아픈 게 아니니까...요 며칠 사이엔 집에 혼자 있을 때 누군가 부르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 게...이젠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주민규는 핸드폰을 들어 불면증, 불안 등을 검색해 보았지만, 수면에 좋은 차나 마음을 다스리는 법 등 어머니에게 효과가 있어 보이는 검색 결과는 없었다.

어머니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근데 있잖니. 네 아버지 물건을 정리하다보니까 이걸 찾았어.”

어머니는 식탁 위로 사진 하나와 열쇠 하나를 꺼내 보였다. 사진에는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젊을 적의 사진이었는데, 이때 작은 아버지는 훨씬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어머니는 사진을 뒤집었다. 어딘가의 주소와 핸드폰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주민규는 사진에서 눈을 떼고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뭐에요? 작은 아버지 전화번호예요?”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잘은 모르겠다. 민규 아빠한테 확인해볼 수도 없고.거기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는데, 안 받더라. 도련님 것이 아닐 지도 모르는데, 도련님 댁의 주소랑 전화번호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구나.”

어머니는 다시 엄지 손톱을 물어 뜯기 시작했다. 주민규는 그런 어머니를 한동안 바라보다 말했다.

“엄마, 편하게 말해도 돼요. 내가 도울 게 있다면 도울게요.”

어머니는 식탁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하지 않았다. 주민규가 다시 말을 걸려고 할 때, 어머니가 주머니와 사진, 그리고 열쇠를 주민규 앞으로 밀며 말했다.

“네가, 네가 작은 아버질 만나서 보험금 얘기 좀 해봤으면 좋겠구나. 가는 김에 이것도 직접 돌려주고.

솔직히 도련님을 다시 마주치기가 무섭구나. 이유는 모르겠어. 그래서 더 겁이 나. 답답하기만 할 뿐이야. 이 주머니를 돌려주고 와. 혹시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택배 같은 걸로 보내지 말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주머니에 귀신이라도 붙어있는 것 같구나.”

주민규는 상념을 떨치고자 머리를 흔들었다. 버스 창밖을 보니 단천동에 가려면 아직 몇 십 분은 더 가야 했다.

주민규는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열쇠와 면주머니를 꺼냈다. 열쇠는 사용한 흔 적이 없는 새 것이었다. 어디에 쓰는 열쇠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주민규는 면주머니 안에서 비단 보자기로 감싼 작은 물건을 꺼냈다. 주민규의 머리에 어머니가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말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불길하다면서.

주민규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보자기를 펼쳐보았다.

귀면（鬼面）이 새겨져 있는 네모난 조각. 크기는 손바닥보다 조금 작았다. 재질은 돌인지 철인지 알 수 없었으나 표면은 매우 매끄러웠고 탁한 은빛을 내었다. 귀신의 입에는 무언가 있었던 것처럼 움푹 파여 있었는데, 지금은 비어있었다.

디자인이 불쾌한 것 말고는 어머니가 말했던 것처럼 불길해 보이거나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진 않았다. 굳이 이상한 것이 있다면 좀 차갑다는 정도였다. 집을 나서고 이후에 계속 품에 넣고 있었는데...

주민규는 귀면석을 다시 보자기에 싸고서 열쇠와 같이 안주머니에 넣었다. 주민규도 어머니와 같았다. 미신보다는 현실이 무섭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를 만나서 어떻게 말을 잘해보면 어머니를 설득할 실마리를 얻을지 몰랐다. 10억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아, 근데 막상 가니까 다른 사람 집이거나 작은 아버지가 없으면 어쩌지...’

주민규는 핸드폰을 켰다. 아마 지금쯤이면 같이 알바 했던 친구, 김찬이 전화를 받아줄 것이다. 물론 친구를 버리고 추노한 꼴이 되었지만 김찬은 너그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