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할아버지가 어릴적에 있던 이야기이다.
지금은 수십년이 흘렀고 일이 있었던 지역에 대한 물건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다.
그 지역은 작은 마을로 총 가구수는 30가구 정도 됬고 큰 산을 등지고 있었으며 산 둔턱에 울타리를 치고 염소와 닭을 키웠다.
그때, 할아버지와 동갑내기 친구 한명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그러나 그 정도가 또래와 비교했을때 너무나 심했다.
한번 화가 나면 그 화를 참지 못하고 광견병 걸린 개 마냥 이빨로 물어 뜯고,
손에 들린 것이나 눈에 들어온 것은 닥치는 대로 휘두르고 던지고 부쉈다.
한참 어리던 여동생이 그 친구가 던진 호미에 이마를 맞아 뚫린 적도 있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항상 동네 사람들만 보면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하며 허리를 굽혀야 했고,
그 친구가 저지르는 짓은 날로 심해져 주변 사람들 모두가 손을 놔버릴 정도였다.
일이 시작된 건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시작된 가을쯤 이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집 앞에서 다람쥐인지 쥐인지를 잡아 구워 먹겠다고 나뭇가지를 모아다 불을 붙였는데,
하필 불씨가 옆집 울타리로 옮겨 붙었다.
가뭄 때 였다보니 나무고 잡초고 전부 바짝 말라 있었고, 바람까지 쌩쌩 불던 날이라 불은 삽시간에 번져 순식간에
집 4채를 홀랑 태워버렸다.
죽은 사람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은 화상으로 인해 팔을 심하게 다쳤고, 어떤 사람은 머리카락에 불이 붙어 머리가 다 타버렸다.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그 친구의 가족은 마을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당장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 인게, 그 친구 집에 있는 소 두마리를 각각 한집에 한마리씩 주고, 친구가 살고 있던 집도 피해를 입은 마을 사람에게 주고 나니
동네에 쓰지 않고 텅 비어있는 창고밖에 남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 창고에 대충 흙 바르고 지붕 얹어 살 수 밖에 없었다.
어느정도 사건이 마무리 됐을 때, 그 친구의 어머니가 우리 할아버지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어머니 앞에 앉아 막걸리를 두세 사발씩 들이키며 ' 아 새끼때매 못 살겠다. 내가 죽어버려야겠다 ' 며 펑펑 우셨다.
얼마 후 친구의 아버지가 서둘러 오셔서 '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집으로 가자 ' 며 친구의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려는데 어머니는
' 안간다. 이제부터 여기가 내 집이다. 그냥 여기서 쥐새끼, 개새끼처럼 살고 말지, 그 새끼 있는 집으로는 절대 안간다 ' 며 발버둥을 쳤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오죽이나 무서웠으면 저런 말을 했을까 할아버지는 생각했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해가 다 넘어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바닥에 뻗어 있으니 그 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전부 할아버지 집으로 모여
' 자식새끼가 원귀 들린 무당보다 더 지랄을 하는데 저럴만도 하다 ' 며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우는 어머니가 너무 안쓰러웠는지 친구의 아버지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 길로 집으로 쓰던 창고로 들어가 쭈그려 자고 있는 친구를 끌어다 길바닥에 패대기쳐 그 상태에서 정신을 잃기 전까지
밝아 두드려 패고서 메주를 엮어놨던 밧줄을 풀어 손이랑 몸뚱아리를 묶어서 산 속으로 끌고 갔다.
그 후, 친구의 아버지 혼자 산을 내려 왔다고 한다.
다음 날, 할아버지가 닭들 모이를 주러 산 둔턱에 올라갔는데, 그 친구가 염소무리 사이에서 할아버지를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뛰처나왔다. 온 몸은 흙투성이에 땀 투성이, 여기저기 긁히고 찧은 상처때문에 피딱지가 얹혀서 숨은 헐떡거리고 옷도 다 찢어지고
손톱도 죄다 벗겨진 상태였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염소사이에서 갑자기 저런게 튀어나오니 염소새끼가 살가죽을 벗고 귀신이 되어 자기를 죽이러 오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여튼, 반나절 만에 발견된 친구는 그날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됬다고 한다.
예전처럼 미친짓도 안하고 몸은 수그린 채 주춤주춤 다니고 목소리도 모기만 해져서는 사람들 눈도 못 마주쳤다고 한다.
그 해가 완전히 지나가고 이듬해 여름, 할아버지가 강가에서 개구리 잡고 있을때 그 친구가 물수제비를 하고 있는걸 보고 가서 물어봤다.
작년에 너 무슨일이 있었냐고. 귀신을 본거니 괴물을 본거니 물어봐도 아무 대답이 없길래 그냥 하던거나 해야겠거니 했는데,
그 친구가 ' 나 때문에 저 뒷 산에 귀신이 왔다. 절대 가지마라 ' 고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무슨일이 있었냐고 다시 묻자 그제서야 겪었던 일을 얘기했다.
친구가 산속에 끌려 들어간 날 친구의 아버지는 자식을 나무기둥에 묶어두고
' 니 버르장머리 고쳐질때까지 여기다 묶어두고 매일 밥이랑 물만 주고 갈 것이다. 짐승 새끼는 짐승처럼 살아라 ' 라고 하며 그대로 내려갔다.
한참 옛날이라 가로등은 커녕 전기도 없던 시절에 해가 진 산속은 코앞에 내 손바닥 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했다.
처음에는 혼자 소리치고 발버둥 치고 울다가 지쳐서 뻗어있는데, 귓가에서 나뭇가지 비비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잘 들어보니 무언가가 자기한테 말을 하고 있었다.
조용히 집중해보니 점점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가
' 나 너 보러 왔다. '
' 느이 어미 이제 너 보러 여기 안온다 '
' 너 이제부터 여기서 살아야 돼, 그렇게 묶여서 굶어 죽어야 돼 ' 라며 갉작 갉작 대는 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너무 무서워서 씨발씨발 거리며 밧줄을 풀려고 용을 쓰는데 갑자기 그 목소리가 커지면서
' 씨발새끼야 내가 너 보러 왔다고 했잖아, 고기 어딨어 ' 라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옆에 있는 나뭇가지가 뚝 꺾어지면서 얼굴을 촥촥 긁었다.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나뭇가지를 쥐고 그랬던건지 , 늦가을에 이파리 하나 없이 바싹 마른 나뭇가지에 얼굴이 피떡이 될 때까지 긁혔다.
그만해라 그만해라 소리를 지르며 몸을 발버둥 치는데 나뭇가지가 떨어져 나가면서 또 얘기를 했다.
' 고기 냄새 난다 '
' 마을 사람들이 너 뒤졌다고 고기 굽는 갑다, 아닌가? '
' 너한테서 나는 냄새야 고기 어딨어? ' 라고 얘기하는데 지금 옆에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대로 있다간 뜯어 먹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몸통을 묶은 밧줄에 몸을 비비면서 밧줄을 묶은 매듭이 있는 곳까지 몸을 돌려 이빨로 매듭을 물어 뜯었다.
근데 밧줄에서 굉장히 찝찔한 맛이 났다. 메주를 묶어 놨던 밧줄이라지만 밧줄을 물어 뜯는데 뜨듯 미지근한게 자꾸 흘러 나왔다.
아무튼 앞니가 흔들릴 정도로 밧줄을 세게 짓이겨 씹으니, 밧줄이 뚝 하고 끊어졌다.
끊어짐과 동시에 도망가려는데 손 발이 헛 놀아서 제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기어가다시피 허우적 거리며 팔다리를 휘 젓는데 앞을 더듬거리니 나무 뿌리가 만져졌다.
알고보니 허우적 거린게 앞으로 가고 있던게 아니라 땅을 파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가 들려 왔다.
' 깊게 파라 '
' 거기가 너 잘 곳이다 '
' 좀 더 넓게 파라, 같이 자자 '
이번엔 사사삭 하고 뭔가가 다가왔다.
그러다 밧줄이 툭 하고 어깨에 떨어졌는데, 밧줄 끝이 입속에 들어왔다.
뱉어내려고 우억 거리다 입속에서 오독 하고 씹었는데, 그 찝찔한 맛이 또 났다.
거의 구토하듯 뱉어내는데 순간 장닭이 꼬끼오 하며 울었다.
친구는 ' 아 여기가 닭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가보구나 ' 생각하며 앞에 뭐가 있던 , 나뭇가지에 부딫히고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져
구르면서 무작정 산을 내려가는 방향으로 달렸다.
그때, 등 뒤를 무언가가 채찍처럼 철썩 철썩 후려 쳤다.
그러면서 ' 이 씨발새끼야 날 물어 뜯었으면 니 살가죽도 내놔 ' 란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사사사삭 하며 친구를 따라 내려왔다.
목에서 피맛이 날 정도로 소리치며 달리다 갑자기 앞으로 벌렁 넘어졌는데 거기가 염소를 키우던 울타리 앞이었다.
염소들이 자다가 친구의 넘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친구 주변에 모여 드는데, 친구는 울며 빌며 염소 무리 속으로 기어 들어가
쭈그린 채로 숨었다. 그러면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아까 그 목소리가 들렸다.
' 이 개새끼가 내가 발가락만 안 아팠어도 종아리 물어 뜯을 수 있었는데 씨발 새끼 씨발 새끼 ' 라고 했다.
새벽이 지나서 하늘이 푸르스름해져 있었는데 동이 틀 때까지 울타리 밖에서 밧줄을 던져 넣으며 울타리 안 쪽을 휘 젓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 염소무리 사이로 친구를 쫓아오던게 뭔지 보게 되었는데
몸은 나뭇가지처럼 바짝 말라서 뼈가 흉하게 도드라져 있었고, 눈은 시커멓게 뻥 뚫린 것처럼 움푹 파여서 눈꺼풀 없이
안쪽에 눈알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이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빨이 정말 컸다.
그렇게 염소무리 속에서 해가 뜨고 할아버지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뛰쳐나왔다.
이 얘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아마도 아귀가 아니었나 추측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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