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어둑한 숲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주변에는 낮은 안개가 깔려 있고,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기묘한 속삭임 같은 소리가 들린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그는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앞에 세 갈래 길이 나타난다. 각각의 길 위에는 누군가 손으로 쓴 듯한 나무 표지판이 꽂혀 있다.

- "구원"의 길
- "복수"의 길
- "끝"의 길

그는 표지판을 바라보며 멈칫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무언가를 잃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표지판을 읽으며 고민에 빠진다.

"구원": 이 문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한 선택일까?
"복수": 복수를 선택하면 무엇을 얻게 될까? 과연 무엇에 대한 복수일까?
"끝": 죽음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이 모든 혼란을 끝낼 방법일까?

남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모든 선택이 무겁게 느껴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자는 결국 '구원'의 길을 향했다.



길을 걷던 남자를 처음 맞이한 건 뜨거운 불길이었다. 불길을 지나쳐 걷다보니 여자와 아이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계속 걷던 남자는 비명소리의 주인공이 한 가족의 엄마와 아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고 차량 사고로 인해 불이 번진 차 안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화마가 미처 번지기 전, 남자 자신은 그 끔찍한 교통사고의 현장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 아이와 엄마를 내버려 둔 채 그는 살기 위해 내달렸던 것이다. 구원을 선택했지만 그는 가족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구할 자격조차 없었다는 진실이 드러났다.





남자는 다시 세갈래 길의 처음으로 돌아왔다. '구원'의 길의 입구는 커다란 바위로 막혀있었고, 남은건 '복수'와 '끝'의 길 뿐이었다.

남자는 스스로 생각했다.

'복수를 선택하면 누구에게 복수하는 걸까? 끝을 선택하면 이 모든 게 끝나는 걸까?'




이번에 남자는 '복수'의 길을 걸었다. 복수의 대상이 누구일까 곱씹으며 어둠속에서 한참을 걷던 그는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 빛의 끝에서 앞에 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아이와 엄마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의 원망스런 눈빛도 잠시, 남자는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칼로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를 찌른 사람은 처음보는 남자였는데, 바로 아이와 엄마의 아빠이자 남편이었다.

환영 속에서 복수를 마친 남자는 칼에 찔려 쓰러져 신음하던 남자에게 말했다.

"네가 우리 가족을 죽였어. 나는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그는 그 교통사고의 가해자이자 한 가족을 망쳐버린 장본인임을 깨달았다. 복수를 선택했지만, 진실은 그가 누군가의 복수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세갈래 길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구원'의 길과 '복수'의 길 모두 이젠 커다란 바위로 막혀있었다. 남자는 마지막 남은 '끝'의 길을 걸었다. 길을 걷자 어둠속에서 새로운 환영이 나타났다.

환영 속에서 남자는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한껏 취한 취기를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비틀거리며 남자는 익숙한 듯 화물 트럭에 탔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나 점점 졸음을 못이기며 꾸벅대는 고개처럼 차량도 비틀거렸고 결국 맞은편에서 신호대기하던 차량을 그대로 받아 밀어버린 것이다.



환영이 끝나자 남자는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든 지옥이고, 선택을 통해 속죄하려고 했지만 그저 도망치고 있었을 뿐이라고.


남자는 다시 처음의 세갈래 길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세갈래 길 모두 다 열려있었다. 그는 이 상황이 끝없는 반복임을 깨달았다. 선택을 한다고 해서 자유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새로운 고통을 낳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점점 하늘은 어두워지고, 어디선가 속삭이는 목소리가 남자를 불렀다.

삼자택일, 너의 선택은 끝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