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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있잖아요. 축복받은 사람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빼어난 외모를 가졌단 걸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고
그것을 가꾸는 법도. 이용하는 법도 잘 알았던 그녀였기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사랑받는 건 당연한 거였어요.
그럴 만한 사람이었으니까. 그게 죄는 아니잖아요.”
그 말은 굉장히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그간 그녀가 저지른 일이 떠올라서였을까?
분노나 두려움보다는 혼란스러움이 더 컸다.
지금껏 많은 범죄자를 인터뷰 해봤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그간의 경험 덕인지 금세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어서 이야기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어요. 모두가 내게 친절했고 남녀 불문하고 절 많이 좋아해 줬어요.
항상 내게 선물을 주었고, 절 위해 기꺼이 많은 일을 해 주었어요.
처음엔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조금 지나니까 이해하게 된 거죠.
이들은 전부 다 나를 위해 사는구나.
그때부터 내 삶은 평온했어요.
가지고 싶은 건 뭐든 가질 수 있었고 하고 싶은 건 뭐든 다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확신한 거죠. 전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겼다.
여자인 나조차 심장이 움찔댈 만큼 그녀의 매력은 무서운 것이었다.
“알겠죠? 전 잘못한 게 없어요.
누가 절 욕할 수 있겠어요?
난 아름다운 사람이고 아름다운 건 뭐든 가질 자격이 있었어요.
아니 오로지 나만이 가질 수 있죠.
그러니까 그건 뺏는 게 아니에요.”
여전히 분노보단 기묘한 감정이 이어졌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나조차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값비싼 물건 같은 거야 말만 하면 구해다 줄 사람이 널렸으니
보석이니 명품이니 그런 건 내게 의미가 없어요.
그냥 시시하죠.
제가 진짜 좋아하는 건 사람이에요. 아름다운 사람.
저만큼은 아니라도 축복받은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거든요.
전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전부 가질 자격이 있으니까.
눈이 너무 예쁜 아이도 있고. 목소리가 매력적인 남자라던가 손이 따듯한 남자도 있고.
피부가 좋은 여자.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
황홀하죠.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모았어요.
그저 작은 미소, 내가 내미는 손길 하나면 전부 홀린 듯이 날 사랑해 줬거든요.
남자건 여자건 싱글이건 아니건 내게 반해서 자발적으로 날 따라오는 거죠.
물론 전부 그러지는 않았어요.
이미 결혼한 사람이 있다거나, 가족이 있다거나, 할 일이 있다거나.
그따위 하찮은 핑계로 내 손을 잡지 않은 건방진 것들.
그 천박한 것들한텐 교육이 필요했죠.
내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요?”
사실은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엄청 돈이 많은 사람이 저한테 집을 선물해 줬어요.
경치도 좋고 방도 많아서 편한데, 제일 좋은 건 아주 넓은 지하실이 있단 거예요.
그 천박한 것들은 전부 잡아다가 지하실에 가뒀어요.
날 위해서라면 사람 몇 명 잡아 오는 것 정도는 기꺼이 할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도망 못 가게 허리에 쇠사슬을 걸어 두고 겁을 잔뜩 주는 거예요.
감히 내 말을 거역한 벌레들에게 마땅한 벌을 내려야죠.
벗겨놓고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게 굶기면서.
상처를 주지는 않을 거예요. 그 아름다움이 망가지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그냥 심술부리듯이 살짝만 마음을 꺾어놓는 거죠.
남자건 여자건 그 아름다운 몸을 드러낸 채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또 다른 의미로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식사 후엔 일부러 지하실을 찾아가 그 더럽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천천히 구경했어요.
수치스러워할수록, 고통스럽고 두려워할수록 쾌감이 강해졌어요.
무엇보다 누가 위인지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똑똑히 가르쳐 줄 수 있어서 좋았죠.
그렇게 며칠간 추위랑 배고픔에 벌벌 떠는 걸 보며 즐기다가
친절하고 자상하게 다시 말하는 거예요.
네 잘못을 반성하고 내 발에 입 맞추라고.
야생고양이 길들이는 거랑 비슷해요.
무서운 데서 무서운 꼴을 당하던 사람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마음을 열거든요.
굴복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마음이 넘어온 거지.
처음엔 악을 쓰면서 반항하던 것들도 금방 새끼 고양이 같은 얼굴로 안겨 온다니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바들바들 떨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데
하.. 사랑한다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는 말이지만 도저히 질리지 않아.
그 말이야말로 내가 축복받았다는 증거고, 완벽하게 길들였다는 증거야.
그렇게 한번 길들여 놓으면 절대 헤어나오지 못해.
오직 나만을 위한 나만의 성에서 나만을 위한 아름다운 시종이 되는 거지.
그래. 단순한 집이 아니야.
궁전.
난 이 궁전에 사는 여왕이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왕.”
그녀는 격양된 얼굴로 말했다.
우습게도 그 모습 역시 날 매료시켰다.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다른 건 몰라도 그녀의 외모만은 진짜였다.
“하... 제가 좀 격양되었었네요.
차분하게 다시 이야기할게요.
이 궁전 안엔 제가 원하는 건 뭐든 있었어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기꺼이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한다고 말해줬어요.
예쁜 얼굴. 다정한 목소리. 따뜻한 손. 그리고 부드러운 살결로 시중을 들면서 절 즐겁게 해줬어요.
매 순간순간 내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황홀한 듯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납치, 감금, 협박. 이런 것들을 이리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은 제 삶의 이유이자 전부에요.
밖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게 보이면 가져오고.
아름답지 않은 게 있으면 마땅한 벌을 주었죠.
아, 벌이라고는 해도 특별히 다른 건 없어요.
그냥 길들일 때처럼 지하실에 가둬두는 거죠.
전부 벗기고 거칠고 무거운 쇠사슬을 허리에 감은 다음
딱 연명할 만큼의 구정물 섞인 밥만 주면서.
이것들은 아름답지 않으니까. 마음껏 망가트려도 되는 것들이니까.
마음이 내키면 내가 직접 들어가서 회초리를 휘둘렀어요.
때리는데 취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은근히 재미있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혐오스럽고 얼마나 역겨운 존재인지 가르쳐 줄 수도 있고요.
회초리가 휘둘러질 때마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죠.
전 그것들의 비명을 즐기며 말해주곤 했어요.
‘네 몸에서 흐르는 이 붉은 피.
이게 네 저주받은 몸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거야.
그러니 기뻐해. 지금 난 널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는 거야.
네 추잡한 살갗이 벗겨지고 검붉게 물들일수록 넌 아름다워 지는 거야.
자 더 크게 비명 질러봐. 그리고 기억해.
너의 주인, 너의 여왕이 누구인지.’
그러면 웅크리고 엉엉 우는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아요?
아무리 자존심 강하고 잘난 사람도 한 달 안에 여왕님 소리가 나오거든?
그래. 날 사랑할 자격이 없는 쓰레기들은 이렇게 나를 숭배 해야지.
여왕님으로 모시면서 기쁘게 매질을 받아들여야지.
완벽하게 내 발아래 엎드려서 아름답지 않음을 속죄 해야 하는 거야!”
다시금 격양되게 소리친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물론 그렇게 속죄한다 해도 내 궁전으로 올라올 수는 없어요.
거긴 내가 허락한, 내 마음에 드는 특별한 사람들만 올 수 있거든요.
그러니 재미가 다하면 멀리 가져다 팔아 버리거나
영원히 가둬두거나 했죠. 가끔은 땅에 묻어버리기도 하고요.
지저분한 일이지만, 그런 걸 대신해 줄 시종들은 셀 수없이 많으니까요.
자, 그럼 이제 슬슬 당신 이야기를 해볼까요?”
난 당당히 그녀의 얼굴을 마주했지만, 눈에 두려움과 경외감이 함께 묻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신이 누군지, 왜 여길 찾아왔는지 알아요.
기자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사하려고 온 거잖아요?
내 궁전이 나쁜 거라 생각하면서.
당신의 생각이 진실이라 믿고 정의라고 믿고 있겠죠.
그런데 틀렸어요.
아까 말했듯이 난 잘못한 게 전혀 없어요.
아시겠어요? 난 축복받았다고요.
난 남들과 달라요. 남들처럼 재미없고 시시하게 살 생각은 절대 없어요.
내가 왜? 왜 내가 그렇게 추잡하게 살아야 해?
난 자격이 있어. 아름다운 걸 가질 자격.
떠받들어질 자격.
그리고 사랑받을 자격.
모두가 나 하나만을 위해 살 거야. 예외는 없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오로지 날 위한 거고
아름답지 않은 것들의 머릿속에 똑똑히 박아넣을 거야.
누가 아름다운지. 누가 여왕인지. 그리고 누가 주인인지!!!”
이번엔 그녀가 진정하는데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후우.... 네. 전 아름다움을 무엇보다 중요시해요.
그래서 당신에게 기회를 주는 거예요.
나쁜 마음을 먹고 몰래 숨어들어온 당신이 밉긴 하지만
너무 다행스럽게도 당신, 꽤 예쁘거든요.
내 발에 키스하면서 사랑을 속삭일 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녀는 화려한 힐을 벗고는 백옥보다도 하얀 발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난 다시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여왕이라는 말에 걸맞은 육감적인 붉은색 롱 드레스와 머리에 왕관처럼 자리 잡은 고급 티아라.
그야말로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여왕의 모습이었다.
“지금 내게 길들여 지면 내가 꼭 안아줄 거야.
그리고 같이 궁전으로 올라가는 거지.
나랑 같이 살면서 나한테 사랑을 속삭여 주는 거야.
넌 그럴 가치가 있어. 내 궁전에 있을 자격.
그래서 기회를 주는 거야.”
그녀에게 안긴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숨이 거칠어졌다.
이성적인 애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동경을 넘어선 경외심. 찬양.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만약 싫다면...
평생을 이 차갑고 축축한 지하실에서 짐승처럼 살게 되겠지.
그 무겁고 단단한 사슬을 허리에 차고.
옷은 전부 찢겨진 채 수치스럽게 맨몸으로 살아야 할 거야.
먼지 섞인 더러운 음식물 찌꺼기만 주워 먹게 되겠지.
혹여나 내가 들어와 매질할까 봐 발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게 될걸?
그러니까 선택해.
내 발에 입을 맞추고 여왕님으로 모실지.
하찮은 짐승으로 죽을지.”
그녀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무섭고 굴욕적인 상황에서도 그 미소는 너무 아름다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그 다짐이 무색해질 정도로 그녀는 아름다웠고, 목소리는 감미로웠다.
난 조심스레 그녀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거부감은 없었다. 여기에 키스한다면 난 그녀의 애완견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하지 않으면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 게 분명했다.
답은 명확했지만,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내 동생이 이 여자에게 남편을 뺏기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지만 않았다면,
내가 그녀를 죽일 만큼 미워하지만 않았었다면,
그랬다면 주저 없이 그녀의 발을 핥으며 사랑한다 소리쳤을 것이다.
내 망설임을 읽었는지 그녀는 더 기다리지 않고 발을 뒤로 빼냈다.
“전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를 놓치셨네요.
그러니 감히 절 사랑하지 않은 벌을 받으셔야겠어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가 꺼내든 회초리가 내 옷을 찢으며 살을 파고들었다.
즐거운 듯 회초리를 휘둘러대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내 비명보다 더 크게 지하실을 채워갔다.
“울어! 감히 날 거역한 죄로 네 예쁜 얼굴을 전부 찢어발겨 줄 테니까.
기쁘게 울어! 울고 또 울면서 엎드려 빌어!
누가 여왕님인지 누가 아름다운지 뼈에 새겨질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소리 질러!”
고통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 비굴하게 올려다본 그녀의 얼굴에는
아름답지만 너무도 섬뜩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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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6 [2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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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넴이음슴 |
고통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 비굴하게 올려다본 그녀의 얼굴에는 아름답지만 너무도 섬뜩하게 웃고 있었다.... 이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아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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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5 |
 |
 neptunuse |
문장이 이상하네요!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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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5 |
|
닉넴이음슴 |
아핳!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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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05 |
|
여민락 |
오 낭만 그 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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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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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털곧휴털직모임 |
존나 이쁜 누나가 때려주기까지 한다니 아흐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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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 |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답글이나 추천유도성 답글을 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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