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 타쿠미는 매일 밤 규칙적으로 집 주변을 산책했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그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탓에 체력 단련을 위해 걷는 것을 중요시했다. 회사에서 벗어나 잠깐의 해방감을 느끼는 이 시간이 타쿠미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그날 밤도 타쿠미는 지하도를 지나 걷고 있었다. 철도 밑으로 뚫린, 높이 2미터, 길이 10미터 정도의 이 통로는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전등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 밝은 덕에 그리 무섭지 않았다.

지하도 출구에 가까워질 무렵, 타쿠미는 누군가가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지하도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라, 그는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겨 그 사람을 주시했다. 그 사람은 이상한 자세로 벽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입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타쿠미는 당황하여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하도는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어, 소리가 울려 퍼지기 때문에 그 사람의 중얼거림이 조금씩 들려왔다.

"다음... 빨리... 다음..."

어딘가 익숙한 말투였다. 타쿠미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고민하다가, 그 사람이 갑자기 타쿠미 쪽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얼굴을 확인할 틈도 없이, 그 사람은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타쿠미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공포에 타쿠미는 발길을 돌려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중얼거림은 여전히 귀에 들려왔다.

"다음... 빨리... 다음..."

타쿠미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더욱 빠르게 달렸다. 그 중얼거림은 마치 지하도의 공명처럼 그의 귓가에 울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무렵, 타쿠미는 간신히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급히 들어갔다. 문을 닫고 나니 중얼거림은 사라지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타쿠미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무슨 일이었는지 생각했다.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는 일단 안심하며 거실로 향했다. 미닫이 문을 열자, 그곳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아까 지하도에서 보았던 그 사람처럼 벽에 이마를 댄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놀라움에 몸이 굳은 타쿠미는 차마 말을 꺼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다음... 빨리... 다음..."

타쿠미는 공포에 휩싸여 현관문으로 다시 도망쳤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으로 몸을 피한 그는 친구인 사토 히로시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히로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겼어. 무서운 일이야, 제발 와줘.”

히로시는 타쿠미의 다급한 목소리에 즉시 차를 몰고 편의점으로 달려왔다. 히로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타쿠미의 평소 냉정한 성격을 아는지라, 이 상황을 그저 환각이나 악몽의 일종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이 쫓아왔고, 집에 그 사람이 있었다고? 귀신인지 미친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겠어."

히로시의 차분한 조언에 타쿠미는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 타쿠미와 히로시는 집 안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아무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인근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타쿠미는 당분간 그 지하도는 피하기로 결심했다.

히로시는 타쿠미의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그날 밤 그의 집에 머물기로 했다. 한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면서 타쿠미는 피로에 지쳐 잠이 들었지만, 불길한 예감에 새벽녘에 갑자기 깨어났다. 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자려던 그는 히로시가 누워있던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히로시?"

주변을 둘러보니 히로시는 거실의 어둠 속에 서 있었다. 그는 마치 이전의 그 사람처럼 벽에 이마를 대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음... 빨리... 다음..."

타쿠미는 차마 히로시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공포에 사로잡혀 그는 집을 나와 다시 편의점으로 달렸다. 숨이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편의점 주차장에 쪼그려 앉아, 타쿠미는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자, 히로시를 두고 온 죄책감과 불안감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도착한 타쿠미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집 안은 고요했다. 그는 조심스레 히로시의 이름을 불렀다.

“히로시...?”

그 순간, 히로시가 방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히로시는 타쿠미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피곤했나 봐. 잠들었어.”

타쿠미는 너무나도 놀라며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사실에 온몸이 무너지듯 힘이 빠졌다. 히로시는 무슨 일이냐는 듯 타쿠미를 달랬다.

“무슨 꿈이라도 꿨나 보네.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

아침이 밝아오자, 타쿠미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히로시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히로시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그 역시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속에서 자신이 콘크리트 같은 벽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고, 누군가를 잡기 위해 미친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 빨리!”

타쿠미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는 히로시에게 지하도에서 본 사람의 이야기와 그 이후의 일을 털어놓았다. 히로시는 처음에는 웃어넘기려 했지만, 타쿠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침묵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 후로 타쿠미는 그 지하도 근처에는 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히로시와의 관계는 어색해졌지만, 아무 일 없이 일상을 이어갔다. 그러나 타쿠미는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집에서 벽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주 뒤, 히로시의 전화를 받았다.

“타쿠미, 나... 요즘 이상한 꿈을 꿔. 계속 그 지하도에 있는 꿈이야.”

타쿠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지하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타쿠미는 더 이상 대답할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서서히 스스로의 어두운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새 벽 앞에 멈춰 서, 천천히 이마를 대었다.

그곳에서 무언가가 또다시 찾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