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방과 후의 시간은 늘 무료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야구부 부실에 놀러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친구가 야구부원이었고, 나를 데리고 그곳에 가자고 했을 뿐이다. 부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는 눈앞의 광경에 잠시 말을 잃었다. 방 한쪽 구석에 마네킹의 대가리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다. 인형은 아니고, 확실히 그 크기와 색상은 마네킹의 그것이었다. 흰 피부와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이 마치 오래된 인형처럼 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친구에게 물었다. "이거 왜 여기 있는 거야?"

친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돌아오거든."

"뭐가 돌아와?"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다버려도, 돌아와. 항상 이 부실로."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평온했다.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걸 확신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다른 야구부원들도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마네킹의 대가리를 보고 있었다. 한 부원이 손을 뻗어 마네킹의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야, 인사해!" 그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는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 그 중 한 명이 내 앞에 마네킹을 던지듯 바닥에 내던졌다. 딱딱한 플라스틱이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진짜 말을 한다니까." 친구가 약간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말을 한다고? 진짜?"

"응. 자주 말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말을 해." 친구는 진심으로 믿고 있는 듯했다. 나는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평소에는 말을 하냐?"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친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 근데 네가 있어서 오늘은 안 할 거야."

나는 점점 그들의 분위기에 압도되고 있었다. 이건 그냥 농담이나 장난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로 이 마네킹이 무언가를 말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그럼 이 마네킹 왜 이렇게 듬성듬성하게 머리가 남아 있는 건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차라리 너희들처럼 머리 다 밀어버리지."

그러자 한 부원이 천천히 마네킹을 발로 찼다. 그 소리는 기분 나쁘게 부실 안을 울렸다. "우리도 그랬지. 바리깡으로 싹 밀어버렸어. 근데 이거, 다시 자라더라고."

"다시 자랐다고?" 나는 충격을 받은 듯 되물었다.

"그래."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몇 번이고 밀어버렸는데 다시 자라. 머리카락이." 그 말이 끝나자마자, 부실 안에 있던 다른 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라나는 머리카락.


이건 그냥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눈빛은 결코 가벼운 농담이 아니었다. 나는 갑자기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때였다. 부실의 문이 닫히고, 방 안에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누군가 내 뒤에서 나직하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돌려줘..."

나는 순간 숨이 막혔다. 돌아보려 했지만 몸이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리는 분명했다. 바로 내 귓가에서 들려온 것 같았다.

"돌려줘..."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마네킹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기이하고 저음의 목소리는 다시 한 번 내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마네킹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아니, 그 눈은 없었다. 텅 빈 검은 구멍만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봐, 말한다고 했지?"
부원 중 한 명이 다시 마네킹을 발로 걷어찼다. 이번엔 더 강하게. 마네킹은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봤다. 그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이 점점 더 자라나는 모습을.

"돌려줘... 머리를 돌려줘..."

나는 몸을 돌려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등 뒤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끊임없이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야구부 부실엔 절대 발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그날 밤 그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돌려줘..."

그리고 묻고 싶다. 그 마네킹에게. 너는 왜 그렇게까지 해서 돌아오려는 걸까? 무엇을 잃었기에, 이 야구부 부실로 다시 돌아오는 걸까?

그것을 아는 순간, 나도 그 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