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그때 갓 제대하고 집에서 약간의 도움을 받아 독립이란 걸 하게 되었다.
보100에 월 20짜리 원룸 3층이었다. 당시 그 지역 시세를 감안하면 터무니 없이 싼 가격이었다.
그땐 그냥 철딱서니가 없어서 마냥 나 혼자 나가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전부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덜컥 계약하고 들어갔다.
부모님은 지방에 계셨는데 나중에 내 원룸에 와 보시고 엄청 놀라워 하셨다.
싼 값에 좋은 방을 얻었다고....

아무튼 내 원룸은 썩 나쁘지 않았다.
한 층에 3개의 원룸이 있고, 총 5층 구조...
방은 서너평 정도였는데 문제는 옆집 앞집의 소음이 너무 선명하게 들려왔다는거다.
특히 옆집 싱크대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는 거의 지옥 그 자체였다.
다행인건 그나마 윗집 401호가 나름 조용했다는 것이다.
쿵쿵 거리는 소위 발망치라 부르는 그것이 전무했다.
그걸 위안 삼아 난 그럭저럭 반년 정도를 버텼다.

그런데 반년 정도가 지난 후 어느날 난데없이 그 조용하고 천사같던 윗집에서 쿵쿵 거리는 발망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그래 저러다 말겠지 하고 참았다.
하지만 이게 하루 이틀 열흘 보름... 이렇게 점점 더 길어지고 소음의 강도도 심해지자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위로 올라갔다.
문제의 집 벨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었다. 분명 조금전까지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말이다.
일부러 그러나 싶어 계속 눌렀는데 역시 반응이 없길래 내가 올라오기 직전에 나갔나보다 하고 말았다.

다음날도 또 쿵쿵거려서 올라갔는데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난 슬슬 뚜껑이 열렸다.
그런데 곧 나는 깜짝 놀라게 된다.
그날도 그 집 초인종을 열심히 눌러댔는데 마침 관리인 아저씨가 옥상에서 내려오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 집 비었는데요?"
"진짜요?"
"뭣 때문에 그래요?"
"아니 층간 소음이 좀 심해서.... 그럼 이 집 아니고 여기 402호인가?"
"거기도 사람 없어요. 여기 4층은 403호 사는 아저씨 한 명 뿐인데 그 분도 지금 제주도 내려간지 두 어달 될걸요?"
"아니에요. 쿵쿵거리는 소리 났어요."
관리인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갔다.
그날 밤 또 쿵쿵거리길래 난 건물 밖에서 401호 창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정말 그곳은 불이 꺼져 있었다.
（아 미치겠네. 바로 위에서 나는 소리 맞는데...）
난 귀신 곡할 노릇에 어이가 없었다.
뭐 이때까지만 해도 무섭다거나 그런 감정보다는 황당함과 괘씸함이 다였다.

그러다 며칠 후 본격적인 공포가 날 엄습했다.
그날도 발망치 소리에 울화가 치밀어서 4층으로 올라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관리인이 401호에 아무도 안 산다고 했지만 확실히 사람이 살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때 4층으로 어떤 중년 아저씨가 큰 캐리어 가방을 들고 올라왔다.
"누구세요?"
"아 네 여기 밑에 사는 사람인데요 301호..."
"아 네. 전 403호인데요... 근데 뭐하세요?"
관리인이 말한 제주도에 갔다는 그 아저씨인 모양이었다. 관리인 말로는 그 아저씨가 이 원룸에 5년 넘게 거주중인 최장기 세입자라고 했다.
"아니 층간 소음이 너무 심해서요. 뭔 춤을 추고 날뛰는지 두 시간 넘게 쿵쿵거리고..."
"거기 사람 새로 들어왔나?"
"그쵸? 맞죠? 사람 사는거 확실하죠?"
"나 제주도 가기 전까진 비어 있긴 했는데... 원래 외국인 여학생 혼자 살았었거든. 아유 그때도 난리난리였어.."
아저씨 이야기는 좀 충격이었다.
401호에는 동남아에서 유학온 여학생 한 명이 살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여학생 친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밤 늦게까지 떠들고 놀다 가서, 당시에도 아래층에서 항의가 보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국 노래 좋아하는지 개들 단체로 춤추고 그런다고 당시 아랫층 젊은애가 망치 들고 찾아가고 난리법석이었지"
"그 여학생 다시 들어온거 아닐까요?"
이쯤에서 아저씨가 좀 놀라운 말을 했다.
"그럴 수가 없지. 올 초에 그 학생 죽었거든..."
"아니 왜요?"
"뉴스에도 나왔는데 몰라? 밑에 애가 죽였어. 에휴... 나도 이번 계약까지만 살고 나갈려고... 어디 찜찜해서 살수가 있나. 5년이나 버텼는데 여기서...."
층간소음 살인...!
아저씨는 분명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기 월세가 왜 그렇게 싸고, 이 원룸에 사람들이 왜 잘 안들어오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윗층에서 쿵쿵 소리가 날때마다 난 공포에 휩싸였다.
창문을 열고 위를 쳐다보면 401호는 여전히 깜깜했지만 발망치 소리는 더 선명해져갔다.
그리고 한달여쯤 지났을 때 난 꿈을 꿨는데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깰 정도였다.
꿈 내용은 섬뜩했다.
층간 소음이 심해 내가 참지 못하고 401호로 올라가서 한참 벨을 누르다 내려왔는데 잠시 후 누가 문을 두드렸다.
그래서 열어보니 어떤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서 있었다.
그 여학생이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죄송해요. 살려주세요..."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머리에서 시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난 그때 기겁하며 꿈에서 깼다.

꿈이라는 것을 알고 안도하는 것도 잠시...
다음날 아침 문앞에 희미하게 보이는 이상한 붉은 흔적에 난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저 누가 흘린 음식 국물일지도 몰랐지만 난 괜히 소름이 돋았다.
그 후에도 밤만 되면 윗층의 발망치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그 집 벨을 누르거나 찾아가지 않았다.
대신 늘 집에서 이어폰을 끼고 다니며 애써 참았다.
그러자 끔찍한 악몽도 두 번 다시 꾸지 않았다.
1년 뒤 난 그 원룸을 나왔다.
주인은 갱신하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난 전혀 생각이 없었다.

그 후 우연히 그 원룸 앞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401호의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난 그곳에 여전히 누군가가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러 어느덧 그 원룸 건물도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난 그 때 그 방의 쿵쿵거리는 발망치 소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내 꿈에 나타나 애원하듯 말하던 그 여학생의 목소리도...
-죄송해요.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