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경북 안동인데 산꼭대기 마을이라 근처에 집이라고 해봤자 3채 뿐인 깡촌 중의 깡촌이었다.
버스도 아랫마을이 종점이라 우리 마을까지 가려면 도보로 40분 이상 걸렸다.
그래서, 어릴 때 학교에서 놀다 좀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깜깜한 산길을 혼자 걷고는 했다..

그날도 애들이랑 학교에서 신나게 놀다가 늦게 하교하게 되었다.
아랫마을 종점에서 버스를 내려 집으로 가려는데 달이 구름 속으로 숨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위가 온통 깜깜했다.

난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그러다 저 앞쪽 길 모퉁이에서 누군가 내 노래소리에 장단을 맞춰 주는 것 같았다.
내가 노래를 멈추면 그 소리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부르면 장단을 맞춰주고...
나를 놀리려고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말이다.

난 겁이 난다기보다 신기해서 걸음을 빨리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누가 장난을 치는지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그 사람은 항상 나보다 조금 더 멀리 가 있었다.

그때 난 꾀를 내었다.
괜히 막다른 길쪽으로 갔고, 그가 도망가지 못하게 구석으로 몰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나름 성공했다. 그 사람은 마침내 막다른 길에 몰렸다.
그때 난 딱 두 걸음만 더 나아가서 길모퉁이를 돌면 그 사람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
그 모퉁이 뒤에서 좀 이상한 숨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숨소리는 사람 숨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난 그제서야 덜컥 겁이 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냅다 뛰었다.
그때 누군가 내 뒤를 쫓아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어쩐지 그랬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 후 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랫마을 아재네 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성촌이라 마을 사람 모두가 같은 성씨의 친척이었기에 나도 아빠 손을 잡고 갔다.
문상을 마친 뒤 난 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그날도 마침 구름 뒤로 달이 숨어 온통 깜깜한 밤이었다.
마침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상가집으로 들어가시면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깨비 부를라."
"네?"
"욘석아. 달이 없을때 노래 부르면 도깨비가 나와 장난을 친다고"
"에이 그런게 어딨어요. 그리고 난 하나도 겁 안나요."
난 할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때 할아버지가 휙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그때는 왜 도망갔어?"
난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마침 아버지가 밖으로 나오셨다. 약간 넋이 나간 내 모습을 보며 아버지가 물으셨다.
"어디 아프니?"
"할아버지.."
"누구?"
"방금 들어간 할아버지요."
"너 뭔 소리 하는거냐? 아무도 안 들어왔는데..."
아버지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았고, 난 겁이 나서 그 자리에서 울었다.

그날 이후 난 두 번 다시 밤길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특히 달빛이 없는 어두운 밤이면...
그 후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그날 그 길모퉁이 뒤에서 기이하게 들려오던 이상한 숨소리가...

-지금은 여든이 넘으신 우리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를 재구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