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도드리겠습니다.

제발 식물인간이 된 제 아들이 정신 차리고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지금도 절 지켜보고 계신단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절 불쌍히 여기시어 어떻게든 도와주십시오.

잘 아시겠지요.

배운 게 없이 가진 건 몸뚱이뿐인지라 악착같이 벌어 가정을 꾸렸지만,

아내가 욕심이 과했던지 놀음에 손을 대는 바람에

큰 빚을 남긴 채 저와 두 아이를 두고 먼저 떠나버렸지요.

작은 단칸방에 몰린 저와 아이들이 처절하게 살던 날들 역시

전부 지켜보고 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리도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싶어

마른 눈물을 훔치며 오늘처럼 기도했습니다.

아이들이 제게 너무 큰 짐이 되고 있다고.

이대로라면 부성애는커녕 인간으로선 절대 해서는 안 될

추악한 짓을 벌이게 될지도 모르니 제발 도와달라고.

그리고 얼마 안 가 졸음운전 차량이 건널목을 건너던 아이들을 치어 버렸습니다.

전 이것이 제 기도 때문이라는 것을. 당신이 절 위해 한 일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둘째는 천국으로, 첫째는 눈도 뜨지 못하는 식물인간이 되었지요.

그저 나무토막처럼 누워있는 첫째를 병원에 두고,

둘째의 영정 앞에 앉은 제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습니다.

물론 슬프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제야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컸습니다.

제 소원이 이루어져 마침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

사고 보상금은 남은 제 인생을 윤택하게 닦아주기 충분할 테고

이제 먹여 살려야 할 입마저 하나 줄었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못난 아비, 지옥에 가 마땅할 못된 인간이라고 욕하겠지만

이미 부성애나 인간적인 마음 따위는 녹아 없어질 정도로

괴로운 시간을 보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또 당신이 주신 자유와 돈 역시 그런 생각 따윈 들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혼자서 여유 있게 즐기고 또 누릴 시간이 있었지요.

여전히 첫째는 깨어나지 못했지만,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깨어나면 어쩌나 하고 염려할 지경이었습니다.

첫째가 깨어나면 이 평화가 부서질까 걱정되었습니다.

죽으면 보험금이 오히려 줄어들 테고 또 제가 돌봐야 할 테니까요.

이대로 평생 깨어나지 않는 게 저로서는 좋은 일이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금 당신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첫째가 절대 깨지 않게 해달라고.

이대로 죽지도 않고 눈을 뜨지도 않은 채 평생을 누워있게 해달라고.

이번 소원 역시 들어주신 덕에 8년간을 정말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금 기도를 드리는 것은

제가 뒤늦게 정신이 번쩍 뜨였기 때문입니다.

그간 아들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기도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렇게 간절히 기도드리겠습니다.

그간의 기도를 잊어주시고 제발 제 아들이 눈을 뜰 수 있게 해주십시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건강해진 모습으로 제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지금 전 어느때 보다도 아들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전 술 때문에 얻은 병환으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가여운 상황입니다.

아들이 하루빨리 눈을 떠야 아픈 제 수발을 들어주고

또 돈을 벌어 제 약값을 대줄 수 있습니다.

고작 8년간의 평안함으로는 과거의 불행을 다 보상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가 남은 삶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절 보필해줄 아들을 다시 돌려주십시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제 소원을 꼭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