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작3동은 대표적인 저소득층 밀집 지역.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친구가 그 동네로 발령 받은게 3년 전...
발령나기 전부터 소문이 흉흉했단다.
수급자에서 탈락된 할머니가 집에서 약을 먹었다느니, 누군 생활고에 투신을 했다느니... 하는 끔찍한 말들...
심지어 담당 공무원도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나 뭐라나...
업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전 근무처 선배는 이렇게까지 당부를 했다고 한다.

-절대 늦게까지 혼자 야근하지 마라. 거긴 귀신이 찾아와서 민원을 넣는다니까....

친구는 그 경고를 그냥 흘려 들었다.
이윽고 가작3동으로 출근을 나고, 과연 살인적인 업무량에 친구는 곧 녹초가 된다.
생활고 관련한 민원들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밀려 들어왔다고...
주민들과의 마찰도 심해서 멱살을 잡히는 일은 다반사요, 어떤 날은 주먹질까지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반 년 정도가 지나자 친구도 변하게 되었다.
사명감까진 아니더라도 주민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던 그는 불과 발령 한 달 사이에 막무가내 민원인들을 증오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식한 진상 거지 새끼들....!!）

그렇다보니 민원인들을 깔보고 은근 조롱하기 시작했다.

"아 네네네..."

건성으로 대꾸하기 일쑤요...

"내일 다시 오시죠."

책임지지 못할 뻔한 거짓말로 순간을 모면하는 일도 다반사가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 그녀와 만나게 되었다.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고, 친구는 홀로 동사무소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열고 쓱 안으로 들어왔다.

（아..씨... 문 잠그는 걸 깜빡했네. 저건 또 뭘 구걸하러 왔냐...）

친구는 속으로 짜증을 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끝났어요. 내일 다시 오세요."

들어온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산발로 흐트러놓아서 용모를 알 수 없었다.
옷은 온통 비에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배가 고파... 쌀 좀 줘"

（하아... 여기가 마트냐? 왜 여기서 구걸을 하고 지랄이야. 그리고 싸가지 없게 반말찍찍이네?）

친구는 욱하는 마음에 한 마디를 하려다가 이내 마음을 바꿨다.

（뭐하러 저런 진상들을 상대해. 그냥 살살 구슬려서 보내면 되지.）

결국 그가 말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오시죠. 지금 담당자가 퇴근해서..."

내일 와봐야 결과는 뻔하다. 그래도 거짓말로 일단 돌려보내고 날이 밝으면 나 몰라라 하면 그뿐이라고 여겼다.
여자는 쪽지 하나를 건넸다.

"여기로 좀 보내줘."

주소와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네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여자는 돌아갔고 다음날이 되었다.
친구는 업무에 치여 전날의 일을 까맣게 잊었다.
물론 그 여자도 찾아오지 않았다.
일주일 후...
조금 안좋은 일이 동네에 생기게 되었다.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한 저소득층 주민 한 명이 집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하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 일로 구청에서 저소득층 실태 조사의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친구는 그때 묘하게 며칠 전 비오던 날의 여자가 떠올랐단다.

（아... 괜히 엿같은 일에 꼬이는거 아냐? 그 여자도 뭔 일 저지르면....??）

걱정이 된 친구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동사무소에 들어온 기부쌀 담당자를 찾아가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미 쌀을 지급받기로 한 대상자 선정이 끝나서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음이 쓰인 친구는 결국 사비를 털어 10kg 쌀 두 포대를 들고 여자의 쪽지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주소지는 어느 4층 주택의 옥상...
흔히 옥탑방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옥탑방 문은 열려 있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 따위는 1도 없었고, 오히려 오랜 세월 비워 둔 모양새였다.

（뭐야? 여기 맞아?）

친구는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주소를 다시 확인했는데 그곳이 맞았다.
그때 어디선가 희미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오게 된다.
창문 쪽이었다.
다가가 창문을 열자 목소리는 더 선명해졌다.

"여기야. 거기가 아니고..."

바로, 며칠 전 동사무소를 찾아왔던 그 여자의 목소리였다.
친구는 주위를 살폈지만 여자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때 여자가 다시 말했다.

"여기라니까 여기..."

목소리는 창문 아래에서 들려왔다. 친구가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그만 기절할만큼 놀라게 된다.
4층 밑 땅바닥에 한 사람이 큰 대자로 뻗어 누워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었고 특히 머리가 깨져 뭔가 이상한 액체가 줄줄 흘러내리기까지 했다.
사람의 정체는 바로 그 여자였다.

"여기라니까... 빨리 와."

친구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창문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꼼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자신이 점점 창문 밖으로 몸을 기울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어...? 왜 이러지... 몸이.. 말을 듣지 않잖아.）

친구는 점점 창문을 넘어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기세가 되었다.
이때 그는 누군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아래로 끌어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튼 그 순간에도 피를 흘리는 땅바닥의 여자는 계속해서 친구를 불렀고, 잠시 후 갑자기 무서운 얼굴로 돌변하더니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빨리 안 내려와?"

그 일갈과 함께 친구는 마침내 창문 밖으로 스스로 뛰어내리고 말았다.
친구가 정신을 다시 차린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병원에서였다고 한다.
다행이 친구는 몇 군데 골절상만 입었고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동료들은 이렇게 말을 했다.

"쌀포대가 2개여서 그게 완충 역활을 해 준거라고 하더라. 쌀이 널 살린거야."

알고보니 추락 당시 품에 안고 있던 쌀이 구명재 역활을 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넌 그 저주받은 집구석엔 왜 찾아간거냐 대체? 사람도 안 사는 폐공가... "
"페공가요?"
"거기 사람 빈 지 오래됐어."
"네?"

친구는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2주 후 건강을 회복한 친구는 다시 동사무소로 돌아갔고, 그 후 그는 쪽지에 적힌 주소와 이름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옥탑방은 3년 전부터 폐공가...
그리고 그 주인인 30대의 젊은 여자는 이미 사망한 사람!
그녀는 생활고로 동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후 살고 있던 옥탑방에서 투신을 했다.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소문으로 듣던 투신했다는 자신의 선임자도 바로 그 장소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는 것.

（이...럴수가...）

친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귀신을 상대했다는 사실을...

그 후 친구는 두 번다시 그 여자 귀신을 보지 못했다.
다만, 늦은 밤 홀로 야근을 할때 가끔씩 희미한 누군가의 재촉이 가끔씩 들릴 뿐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빨리 내려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