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이야기는 픽션이며 실제 인물, 장소와는 무관합니다.）

옹기 여인

애국심 어린 선혈과 모든이들의 자유와 행복, 그 모든 것을 처참하게 앗아갔던 *6.25 한국사변이 끝나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우리네 들에게 평화와 회복이 찾아온 1955년 여름의 어느날. 방 귀퉁이 한켠에서 막내동생을 보고 있을 때의 일이였다. 그일이 있었던 날 엄마는 저녁을 하시고 계셨는데 대문 밖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영아, 영아~."

목소리는 속삭이는 것만 같았고, 바람결에 잘못 들은 것 같기도 하여 그냥 있었는데, 이번엔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영아, 영아!"

약간은 날이 선듯한 목소리에 '아까 낮에 놀던 벗이 와 있나' 생각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몇 시간 전까지 같이 놀던 동네 친구가 무슨 일로 찾을까 생각하며 문을 열고 나가 고무신을 신고 얼굴을 들어 대문을 바라봤는데 '헉...' 하며 헛바람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집 대문의 높이는 그리 높은 건 아니였지만 대문의 끝이 허리춤에 오는 걸로 봐선 대략 *10 자는 족히 될 것 같은 아낙이 머리에 옹기를 이고 양손을 허리에 얹어서 엉덩이를 좌우로 바람 같이 이리저리 흔들거리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커다란 키에 흰색 저고리 검은색 치마 머리는 전형적으로 단아하게 빗은 오대 오 쪽 머리에 비녀를 꽂은 여인이 뭐가 들었을지도 모르는 옹기를 이고 바람 인듯 엉덩이 춤을 설렁설렁 추고있는 모습은 차마 보기에는 너무 괴기스러웠다. 너무나 무섭고 놀라 경황이 없었지만 여름철이고 저녁을 먹기 전이라 해는 길어 아직 어스름했기 때문에 괴기스러운 그 아낙의 특징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너무도 질겁하여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앉은 자세에서 도망가지도 못 하고 몸은 또 바위 마냥 경직되어 괴기스러운 여인을 계속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은 쥐상으로 찢어지고 올라간 눈은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손대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코길고 얇은 입술에 길쭉한 면상을 한 그 괴기스러운 아낙은 계속 나를 부르고 있었다.

"영아, 영아. 나와서 같이 놀자~."

생긴 것과는 대비되게 목소리는 여름철에 서늘하게 부는 바람인 양 부드러웠지만 얼굴은 더욱 탐욕스러워 지는 거 같았다.

'사, 사람인가. 귀, 귀신인가...'

고민이되기 시작하였고 부엌에 엄마가 저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엄, 마. 어, 엄마...'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는 계속 입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저녁을 준비하시던 엄마가 나오시면서 대뜸 귀청이 떨어질만한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런 개잡 것이, 육시럴 년이. 사람도 아닌 귀신 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야. 이 몹쓸년아 썩 꺼지거라!"

전쟁통에서도 살아남은 여장부임을 과시하듯 그 여인을 향해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대시고는 급히 창고 방에 올라가 겨울에 만들어 두신 싸리비를 급하게 꺼내어 밖으로 나가진 않고 허공에 미친 듯 휘저었다.

"이 년아. 썩 꺼져라, 썩 물러가라. 내 이 싸리나무로 요절을 내줘야겠다, 이년!"

"흐흐흐, 크흐흐흐흐. 캬하하, 캬캬히히히히~."

그제서야 요상한 목소리로 웃어 젖히는 그 아낙은 옆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시선은 게속 나를 향하고 있었고 요사스럽게 변한 표정은 섬뜩하게도 더욱 더 선명해져갔다. 몸은 멀어져 가면서 고개는 계속 나를 향하고 급기야는 머리가 반대로 완전히 돌아가고 나서야 휑하고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다. 사라지면서도 계속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영아, 영이야. 같이 놀자니까. 기다리고 있어, 기다려줘. 으흐히힛, 캬하하하하. 크흐흐흐흣~."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아, 저게 처녀귀신이었구나...' 라며 생각했다. 엄마는 급히 뒷간으로 가시더니 뒷간 문 앞의 흙을 손으로 파내서 치마폭에 담아 대문 앞에 한 움큼 방 문에 한 움큼 내려놓으시고는 잡고 계시던 싸리비를 나에게 넘겨 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치귀라 하여 뒷간을 지키는 신인데 성격이 매우 더러워 집으로 들어오는 귀신을 싫어하는 가택신 중에 하나로 뒷간 주변의 흙을 뿌리면 잡신을 물리치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야, 아가. 영아, 너 방에 꼼짝 말고 있어야 한다잉. 귀도 막고 말도 말고 너랑 네 동생 빠짝 끌어 안고 있어야 되븐다. 너 절대, 절대로 나오면 안 되븐다. 알았냐. 또 만약에 저 잡것이 포돗하게 들어 올라그러면 빗자리 갖다가 대그빡을 콱 조사버려라. 절대로 방에서 나가블지 말고, 또 *배람빡 조심해싸야, 알아들었제?"

엄마의 말씀이 끝나고서야 나는 안심이 되었는지 울음을 터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알, 알겠어야. 근디 엄니는 어디 가블게요..?"

"나가 저 짝 암자에 사는 스님한티 빨리 갔다올텐께, 너 아까 나가 한 말 명심해야 되븐다. 알것제?"

이렇게 신신당부하시던 어머니는 뒷 창고에서 싸리비를 한개 더 챙기시고는 그 길로 앞산 오솔길을 오르셨다. 나는 나무로 만든 창호지 문을 걸어 잠그고 동생을 꽉 끌어안으며 이불을 뒤집어 썼다. 이미 때는 해가 저물고 캄캄한 밤이 찾아와 있었다.

"앞산 스님한테 댕겨오시려면 왕복 2 시간은 걸릴텐데. 또 오면 어떡하지..."

너무도 걱정이된 나머지 혼자중얼거리며 한여름 날씨에 더운 것도 고사하고이불을 뒤집어 쓰며 땀을 비질비질 쏟아내고 한껏 질겁하며 덜덜 떨고 있었는데

"영아, 영이야. 이 년아 이리나와. 크히히히힛..."

그 처녀귀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를 뚫고 머릿속에 박히듯 들려왔다.

"지금 나오면 놀아주고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간다. 내가 들어가면, 크히히히힛..."

놀리는 것 같으면서도 위협적인 목소리로 계속 나를 불렀다. 목소리는 상당히 선명하게 들렸지만 직감적으로 아직은 대문밖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난 싸리비를 움켜쥐고 아직 잠들어 있는 동생을 안고서 바닥에 바싹 웅크려 떨고만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동안 하다가 어느 순간 잠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별안간 집이 전체적으로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직감적으로 마당안으로 들어온게 느껴졌다.

"아. 저것이 기어코 마당 안으로 들어왔구나. 어떡하지, 으흐흐흑..."

난 너무 무서운 나머지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데 그러더니 더 가까이 들리는 목소리로 웃으며 나를 꼬셔대고 있었다.

"영아, 영아. 너희 아버지 있는 곳으로 얼른가자. 나가 얼른 데려다 줄께~. 이히히히힛. 니가 그랬지, 니가 그런 거야 찢어발길테다..."

꼬시는 말로 안 되니 무서운 말로 나를 위협했다. 그럴 때마다 난 더욱 이불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처녀귀신의 큰 그림자가 방문 앞에 창호지 문에서 어른 거리고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가뿐숨을 몰아쉬며 혼잣말로 자책했다.

'들어오면 어쩌지, 어쩌지. 엄니 빨리와. 무섭단 말이예요...'

그런데 또 그러기를 한참동안 하다가 어느 순간 잠시 잠잠해졌다. 이번엔 틀림없이 방안으로 들어올차례다. 공포는 이미 극에 달해있었다. 그런데 때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동생을 지켜야한다는 일념 때문이었을까 들어오면 싸리비로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후려쳐야겠다고 다짐했다. 급기야는 창호지를 바른 문이 미친 듯 떨리기 시작했고 금세 문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봉창의 창호지가 찢어지면서 길고 큼지막한 손이 쑥하고 들어왔고 마구 휘젓기 시작했다. 

"이년, 어디있어. 이년. 흐으으읍. 이년, 머리채를 잡아서 나처럼 얼굴을 늘려줄까 아니면 사지를 길쭉하게 늘려줄까. 이히시시싯..."

"이러지마, 이러지마. 에잇, 에잇!"

난 있는 힘껏 발악을 하며 싸리비를 휘둘렀고 그것 때문인지 손은 다시 봉창에서 쑥하고 빠져나갔다. 그러다가 이번엔 그 길쭉한 머리가 봉창 구멍으로 쑥하고 들어왔다. 목이 더 늘어난 건지 봉창으로 들어온 머리는 고개를 빠르게 기웃거리며 미친듯이 웃어댔다. 찢어진 눈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급기야는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동시에 들리면서 들어오려고 발버둥을 치는지 두 손은 벽을 긁어대고 고막을 찢을듯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크흐흑크캬각흑캬갸각흐큭그극캬캭.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꺼다, 그냥 두지 않을꺼야. 키히히시싯크흐흑캬갹캬갸갹흐극..."

여자귀신의 목소리는 무엇인가 굉장히 화가 나고 억울한 마음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무섭고 괴기스러운 얼굴을 쳐다보며 싸리비를 휘두를 자신이 없어 바짝 엎드려 몸을 숨기기 위해 벽으로 붙으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마당에서 법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나무아비타불. *이시 지장보살마하살 백불언 세존 아관 이염부제중생 거족동념 무비시죄 약우선리 다퇴초심 혹우악연 염념증익 시등배인 여리니도 부어중석 점곤점중 족섭심수 약득우선지식 점곤점중 족섭심수 약득우선지식 체여감부. 작일 금일 명일. 사흘안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인생인데,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간다고 하여 억울해 할 것 없소. 이곳이 끝이 아니니 형색 고운 우리 애기씨 그만하고 가소서..."

이런 법령과 넋두리가 한참 이어졌다. 마당에서 이어지는 법문영창이 얼마 되지도 않아 귀신의 형체도 목소리도 흔들림도 사라졌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달려 들어와 나를 덥석 안고 덜덜 떨고 있는 날 달래주었다.

"아이고, 우리 영이 괜찮아 많이 놀랐지. 아가..."

그동안 밖에서 법문을 외우던 스님꼐서 들어와 내머리에 손을 얹으시며 

"아이야, 많이 놀랬는가?"

나는 정신이 혼미하여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어머니게 안겨만 있었다.

"흠, 아주머니. 아이 길쌈 치마를 저한테 주소..."

군말 없이 어머니꼐선 내 치마를 스님에게 넘겨주었다.

"아주머니 같이 갑시다. 아이야 너도 같이 가자꾸나.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니 매듭을 지어야지..."

스님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휑하니 마당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한참 엄마를 부여잡고 울다가 남동생은 엄마가 들쳐업고 방문을 나갔다. 스님은 치마를 대문위에 걸어 놓고 무언가를 중얼중얼 거리더니 대문 앞을 나서면서 물었다.

"아이야. 오늘은 어디서 놀다가 들어왔느냐?"

"저기 뒷산 언덕에 애들이랑 같이 총알 주우러 갔었어요"

"이 년아 거긴 그렇게 가지 말라고 했는데...말 안 듣 더니. 어휴..."

뒷산 언덕 흩어진 총알을 주우러 갔다는 말에 엄마는 역정을 내었고, 스님 또 걱정을 하셨다.

"어허, 거긴 너무 많은데. 죽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거 어떻게 찾는다..."

"흠...일단 가보자꾸나"

뒷산 언덕은 전쟁 중에 인근주변에서는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로 당시 시체는 이미 다 치워져 근처 산에 매장되었지만 총알 같은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 친구들 총알을 주우러 어른들 몰래 가곤 했다. 어른들은 워낙 흉흉한 곳이라 애들에게 절대 오르지 못하게 주의를 주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뒷산에는 주변 동네 민간 인들도 노역으로 끌려가 많이 죽곤 했던 지역인데, 전쟁중 광기에 물이 들었던 군인들이 민간인을 사지를 뜯 어 죽이는 못된 짓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뒷산 언덕은 집과 꽤 먼 거리여서 걸어서 한참이나 걸려서야 산기슭에 도착했고, 산을 오르는 중에 스님은 가시나무들을 꺾어서 한 손에 모아 쥐고, 어머니에게도 나누어 쥐게 하여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가 주로 놀았던 장소에 도착하자 스님은 뜻 모를 말들을 내뱉었는데 그 목소리가 자못 진중하고 엄숙하여 멀리까지 울리는 목소리였다.

"나무 사만다. 못 다남. 옴마니 반메흠!"

주문 같은 것을 외무면서 얼마 동안 주변을 돌아다니 시던 스님은

"저기 구나, 저기 있구나!"

하시면서 방향을 잡고 급히 걸어갔고, 그 뒤를 엄마랑 내가 따라갔다.

그때서야 아까 처녀귀신의 목소리가 울음소리와 섞여 다시 들려왔다.

"못 간다, 못 가. 나를 두 번 죽이려고. 안 된다, 흐흑흐흐흑..."

그 목소리를 들은 스님은 작은 분묘 앞에 서시더니 분묘 주변에다 둘러치고, 어디서 났는지 소맷자락에서 작은 봉제인형 하나를 꺼내 얼굴이 땅으로 가게 뒤집어 놓으시고, 합장을 하였다.

"어딜 가나 같은 인생이지만 어둡고, 차가운 날이 언젠 가는 걷히겠지. 부디 극락왕생하게. 아바로기대 새바라야 사바하..."

이렇게 하여 그날의 괴기스럽고, 무서운 하루는 잘 끝 마칠 수 있었다. 나중에 산을 내려오면서 들은 얘기로 는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찾기 어려울 것 같았으나 원 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스님의 눈이 따끔따끔하여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원귀도 있었지만 그 손각시 만한 원귀는 없었다고 한다. 이로써 내 유년시절 귀신을 겪은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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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해설

1.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3시에 북한군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민국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여 발발한 전쟁이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 1개월（1,129일）간 전투가 이어졌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을 역이용해, 극동아시아의 미소 냉전 사이에서 승기를 잡으려 한 의도가 있어 대리전 양상을 띠기도 하는데 때문에 6·25 전쟁은 전후 냉전의 시작을 대표하는 사건들 중 하나로 평가된다.

2. 약 3.03M

3. 일명 ‘뒷간귀신’ · ‘부출각시（跗出閣氏）’ · ‘변소각시’ · ‘칙도부인’ · ‘측신각시’ · ‘치귀’ · ‘정낭귀신’ 등으로 불린다. 대개 여성 신으로 머리가 길며, 성격이 포악하고 노여움을 잘 타서 두려운 존재로 여겨져 왔다. 변소에서 병을 얻거나 사고가 나는 것은 바로 이 신의 소행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제주도 '문전본풀이' 에 그 유래가 나타나는데, 집안의 각처를 관장하고 있는 신들의 형성유래담인 이 신화에 의하면, 남（南）선비의 첩인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본부인을 죽이고 그의 일곱 아들까지 죽이려다 흉계가 드러나 측간으로 도망가 목을 매어 죽어 측도부인이 되었다고 한다.

4. 벽의 남방지역 사투리. （예: 바람벽）

5. 지장경 제 7장 이익존망품의 한 구절

산자와 죽은자의 좋은 것과 업에 대한 내용이 서술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