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친구가 집에서 놀자고 불렀다.

그 동네는 외지고 인적이 드믄 곳으로,

덕분에 괜찮은 방을 싼 가격에 얻었다고 친구는 좋아했다.

집들이를 끝내고 잔뜩 취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학생, 나 좀 도와줘.]

뒤를 돌아보니 70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셨다.

[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할머니 옆에는 포장된 스티로품 박스가 놓여 있었다.

[이것 좀 옮겨줘. 아들이 고기를 보내줬는데 힘이 없어 들고 가기가 힘들어.]

한껏 취해있던 나는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였다.

[네, 도와드릴게요.]

박스는 꽤 무거워서 두 손으로 들고 가야만 했다.

할머니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셨다.

나도 그 뒤를 쫓아갔다.

체감상 5분은 걸었을까?

마침내 할머니는 어떤 봉고차 앞에서 멈추어 섰다.

[수고했어. 차 옆에다 박스를 내려놓으면 돼.]

나는 박스를 들고 봉고차 옆으로 다가갔다.

그때 골목 끝에서 순찰 중이던 경찰차가 멀리서 보였다.

내가 경찰차에 시선이 빼앗겼을 때,

-드륵

봉고차 문이 열리다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본능적으로 저 경찰차를 그냥 보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박스를 바닥에 떨구고 괴성을 지르며 경찰차를 향해 달렸다.

경찰차는 내 앞에서 멈췄고 힘이 풀린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내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으세요?]

경찰의 목소리에 안도감을 느끼자 나는 뒤를 살폈다.

아까 본 봉고차와 할머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렇게 경찰에 도움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내가 들었던 박스 안에는 벽돌이 담겨있었고,

할머니에 대한 단서는 안타깝게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일이 생긴 뒤 더 이상 늦은 시간에 낯선 동네를 홀로 걸어가지 않는다.

꽤 오래전 일이기에 지금은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단 하나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때 봉고차가 열리다 만 틈으로 보인 그 눈동자를 아직도 못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