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네가 격은 실화를 재구성.
"빨리 와. 늦겠다."
시간은 이미 밤 11시...
연미가 아이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평소 빠릿빠릿한 둘째와 달리 오늘도 천하태평인 첫째가 문제였다.
뭘 찾는지 늦장을 부리는 통에 연미와 철수의 재촉이 계속 이어졌다.
첫째 지현은 20여분 뒤 뭔가를 손에 들고서 방을 나왔다.
그것은 액자에 든 어느 할머니의 사진이었다.
"할머니도 고향 가고 싶으실거 아냐. 같이 모시고 가자."
액자 손 할머니는 바로 10년 전 돌아가신 연미의 시어머니였다.
맞벌이 부부였던 탓에 첫째 지현은 할머니 손에 자랐고, 그래서 그 정이 유별났었다.
이윽고 연미씨네 차는 아파트를 출발할 수 있었다.
명절 황금연휴의 도로는 늘 북새통인 법이었다.
그걸 피하고자 그나마 이 늦은 시각에 출발했는데 그래도 도로 위 차들이 제법 보였다.
조수석에 탄 연미는 남편 철수에게 물었다.
"괜찮아? 안 졸려?"
연휴 첫째 날까지 일을 하다 온 남편은 겨우 서너 시간 눈을 붙인 후 다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연미는 그냥 내일 일찍 가자고 했지만 철수의 생각은 달랐다.
"좀만 참고 후딱 작은아버지네 가서 발 뻗고 자자."
30여분 정도 시내를 통과하니 드디어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연미도 그날따라 이상하게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남편에게 영향을 줄까 싶어 억지로 참았다.
그렇게 다시 30여분을 더 달려 이윽고 휴게소에 도착했다.
"어? 여기 휴게소 새로 생겼어? 못 보던 곳이네?"
연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보던 휴게소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휴게소 간판조차 없었다.
"나 화장실좀..."
철수는 급히 화징실로 달려갔고 아이들은 이미 뒷자리에서 꿈나라로 간 지 오래였다.
연미는 가볍게 체조를 하며 졸음을 쫒았다.
늦은 시간 때문인지 휴게소 점포들은 모두 문 닫은지 오래였다.
남편이 돌아온 후 두 사람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한잔씩 마셨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부우웅 하는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휴게소 입구에서 견인차 한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견인차는 사고로 반파된 승용차 한 대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견인되어 오는 승용차가 조금 이상했다.
차창이 검게 칠해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운전석조차....
"저거봐. 저러면 앞이 보이나?"
연미가 철수에게 물었다.
그러나 철수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연미는 견인된 차 번호판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x 1435.
특이할거 없는 평범한 번호였는데 어쩐 일인지 연미의 머리속에 담겼다.
이윽고 철수가 운전석에 앉고 그들은 다시 고속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연미는 쏟아지는 졸음과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이상하리만치 강렬한 졸음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는데, 그렇게 얼마나 잠을 잤을까?
문득 그녀가 눈을 떴다.
"당신 괜찮아?"
눈을 뜨자마자 남편부터 찾았다.
하지만 철수는 대답이 없었다.
연미는 이상한 감을 느꼈다.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는 남편은 고사하고 어느순간 자신이 조수석에서 뒷자리로 옮겨 있는 것이었다.
조수석에는 누군지 모를 사람이 앉아 있고...
아이들은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고 차 안은 소름돋을만큼 고요했다.
"당신 조는거 아니지?"
연미가 재차 물었지만 적막감만이 답이 되어 돌아왔다.
"나 언제 뒤로 왔지? 근데 이 분은 누구셔? 현이 아빠... 현이 아빠?"
연미는 조금 큰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빠아아앙...
엄청난 굉음의 크락션이 뒤쪽에서 울렸고 연미는 깜짝 놀라 뒤를 봤다.
그러자 대형 버스 한 대가 바짝 뒤에 붙어 따라오는 것이었다. 얼마나 붙었냐면 거의 추돌하기 직전 같았다.
그래서인지 운전석까지 다 보일 지경이었다.
"미쳤나봐...!"
연미는 너무 놀라 소리쳤다.
그런데 곧 그녀는 더욱 더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운전석의 운전기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복장이 독특하다고만 여겼다.
사극에나 나올법한 갓을 쓰고 검은색 도포 두루마기를 걸쳤기 때문이다.
얼굴은 갓의 그늘 탓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는데 두 눈의 번쩍이는 안광만이 연미의 시야에 들어왔다.
연미는 곧 모골이 송연해졌다.
독특하다고만 여겼던 그 복장에서 곧 뭔가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저승사자의 복색이었다.
연미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를 더욱 더 큰 충격에 빠뜨리는 일은 곧바로 이어지게 된다.
운전석 옆, 가장 앞자리 승객의 정체가 그것이었다.
그곳에는 어느 중년의 남성이 앉아 있었는데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목에 이름표 같은 큰 판넬을 걸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서울 x 1435
바로 연미가 지나온 낯선 휴게소에서 본 반파되어 견인된 차량의 넘버였다.
"현이 아빠...? 현이 아빠? ..."
연미는 다급하게 철수를 불렀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묵묵부답...
"오빠... 오빠... 빨리 차선 바꿔"
연미는 이제 미친사람처럼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럼에도 운전석 남편은 조용했다.
더욱이 버스가 바짝 쫓아오니 연미네의 차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결국 연미는 뒤에서 남편의 어깨를 잡아챘다.
"오빠.. .차선 바꾸고 속도 줄여..."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낯선 이가 고개를 휙 돌려 연미를 쳐다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연미는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후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 사람의 얼굴은 그녀가 익히 잘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어...어머님...!"
바로 10년 전 돌아가셨던 시어머니...!
연미의 시어머니는 갑자기 손을 뻗어 연미의 손을 붙잡았다.
"아아앗..."
그 순간 연미는 비명소리를 내며 잠에서 깼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도 잠시...
얼른 뒤를 살펴보았다.
자신은 조수석에 타고 있고, 뒷좌석 아이들은 골아 떨어져 있었다.
미친듯이 따라붙던 대형버스도 보이지 않았으며 시어머니의 모습도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연미씨네 차는 뻥 뚫린 고속도로 위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연미는 깜짝 놀라 남편을 크게 불렀다.
"오빠... 오빠..."
그러자 철수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알고보니 그는 깜짝 졸고 있었던 것이다.
"속도 줄여...빨리!"
연미가 크게 소리치고 철수는 가까스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들의 차는 간발의 차로 중앙분리대와 추돌 직전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와... 큰일날뻔 했다. 괜찮아? 애들은?"
철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안도했다.
연미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그 후 연미네는 다음 휴게소에서 눈을 붙이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새벽에서야 다시 출발했다.
연미는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꿈에서 봤던 대형버스의 존재를 살폈지만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녀는 꿈에서 본 시어머니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첫째 지현은 할머니의 사진을 고향의 전경이 다 보이는 작은 방 창문가에 올려두었다.
연미는 그 사진 앞에서 절을 올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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