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야기는 픽션이며 실제 인물, 배경과는 무관합니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훔쳤다

20대 중반 즈음 추석연휴때 겪었던 일 이다.

명절에 고향에 가지 않은 친구 몇 명이 모여 술을 한 잔 하기로 했었다.

대여섯 명 정도가 모여 조촐하게 놀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한가한 친구들이 많아서 열댓 명 정도가 모여 의도치 않게 판이 커져버렸다. 새벽 1시쯤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웅-. 우웅-."

발신자를  보니 엄마셨다. 난 대뜸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께선 정말 웬만한 일이 아니면  밖에 있는 자식들에겐 전화를 걸지 않았다.

술자리를 빠져나와 조용한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불안한 목소리로 나에게 집에 와주면 안 되겠냐고 말씀하셨다. 난 무슨일인지 물었고 엄마께선 속삭이는 목소리로 밖에 누가 있는데 자꾸 집에 들어오려고 한다 하셨다. 나는 즉시 전화를 끊고 택시를 잡아 집으로 가면서 형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집으로 오라고 말했다.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가보니 다행히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있던 형이 먼저 도착해 엄마와 함께 안방에 있었다. 난 무슨일이냐고 누가 왔냐고 물어봤다.

형은 의아해 하며 입을 열더니.

"야. 너 어디있었어?"

몇 마디의 단어가 끝나고 둘의 시선은 나에게 향했다. 나는 침착하게 설명하였다.

"어, 아는 친구들하고 ㅇㅇ동에서 술 마시고 있었지!"

형은 놀라는 눈치로 다시 물었다.

"너 혹시 집에 다녀가지 않았냐?"

말이 끝나기와 동시에 나는 당당하다는 눈빛으로 일관했지만 엄마는 부산스럽게 떨리는 당신의 손을 꽉 움켜 쥐시며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까, 네 형이랑 너랑 외출을 하고 나서 엄마가 그동안 너무 피곤했었잖니? 그래서 일찍 자려고 했어야. 근데 저기 윗집에 사는 엄마 친구 ㅇㅇ이모 알지? 그 여편네가 음식을 맛깔나게 해와서 좀 나눠먹다가 수다를 떤다는 게 시간이 엄청 지나가버렸어. 그래서 ㅇㅇ 이모야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간만에 수다를 떨었는지 피곤한게 싹 가시더라고. 그래서 엄마 방서 티비를 봤지..."

어머니는 겨우 안정을 취하시다가 떨려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셨다. 나는 그 상황이 궁금해 재차 여쭈어 보았다.

"응, 응. 엄마. 그래서 티비를 보셨는데?"

엄마는 금새 타들어가는 입술을 여시고는

"어, 보고있었는데 누가 우리집 대문을 쾅쾅 하고 두들기는 거야. 그래서 내새끼들 왔나 하고 현관에 나가서 말했지. 근데 네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엄마 문 열어주세요' 하고 말이여. 근데 평소에 울 막둥이 느낌이 아니고 좀 쎄한 기분이 들어서 가만히 서서 대답했어."

나와 형은 서로를 번갈아 보며 다시금 엄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밤 새고 온담서 일찍왔네 무슨일 있었나. 하고 대답했지. 근데 네가 막무가내로 '그냥 빨리 문 열어주세요.' 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진짜 우리 막둥이 목소리였어, 목소리는 분명히 너인데 말투나 느낌이 이상하고 쎄했었다."

형과 나는 엄마의 말씀을 듣고 살짝 놀라는 기색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집에서 막둥이고 그래서 애교도 좀 있는 편이고 엄마께 존댓말을 그리 쓰지 않았다. 엄마는 문 밖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님을 직감하시고는

"어, 엄마 옷 갈아입고 있다 잠깐만 기다려라."

하시며 얼버무리시고 계셨다는데

"아 빨리 열어 주세요, 다리 아파요. 빨리요!"

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고 한다. 엄마는 핸드폰을 집어들고 형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처음에는 형이 받지 않자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밖에 있는 그것이 들을까봐 작은 목소리로 집으로 빨리 들어오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였다. 엄마는 전화를 끊고 문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대문 밖을 훔쳐보니 문밖의 그것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대문고리를 잡고 한 번씩 흔들어 보았다고 한다. 우리 집은 대문이 낮아 보통의 성인 남자 코 정도까지 보이는데 엄마의 말로는 명탐정 코난이나 김전일에 나오는 범인 그림자 같은게 좌우를 살피더니 문고리를 한 번 흔들어보고 '엄마' 라고 부르더란다. 한참을 그러더니 '에이, 씨발...' 하며 나지막한 소리로 욕을 하더니 대문 오른쪽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두 개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또깍-. 또깍-."

이내 왼쪽 오르막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형이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못 간다고 말하고 안방에서 엄마가 주무실 때 까지 밤이 새도록 엄마 곁을 지키며 잠들지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