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는 이딴 데 안 들어오겠다고 그렇게 지랄했는데.”

태석은 투덜거리며 운동장으로 나섰다.

똑같은 수감복에 가슴에 달린 명찰에는 이름 대신 번호.

사방이 잠금장치에 단호한 표정의 교도관들.

어릴 때부터 법보단 주먹이 앞선 성격이었던 지라 그리 낯선 장면도 아니었지만

교도소 환경이 반가울 리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엔 조금 더 껄끄러운 문제도 있었다.

“어이 거기. 이태석 맞나?”

진한 눈썹에 위험한 기운을 넘실넘실 풍기는 수감인 하나가 태석에게 말을 걸었다.

“맞는데. 왜. 당신 누군데?”

태석의 물음에도 그는 대답 대신 자기 할 말만 할 뿐이었다.

“네가 우리 식구들 줘팬 새끼지? 따라와라. 형님이 좀 보자 신다.”

아무래도 여기 잡혀 오게 된 그 일 때문인 듯했기에 우선 태식은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남자가 데려간 그곳엔 머리를 민 거친 인상의 중년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도리 파에서 중간관리 하는 사람이다. 다들 대못이라고 부르지.

우리 애들하고 문제가 있었다지?

그럼 계산할 게 좀 남은 거 같은데.”

태석은 비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무슨 계산? 그 찐따 새끼들은 술 먹고 시비 털다가 나한테 밟힌 거고

졸렬하게 경찰에 대고 우는소리 해서 내가 여기 온 거 아니야?

계산할게 남았나?”

대못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거야 누가 신고한 탓에, 경찰이 끼어들어서 생긴 일이지.

그런 짓을 했으면,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야.

우리 장도리 파를 건드렸으니 마땅히 복수를 해줘야지.”

살기 넘치는 말이었지만 태석은 역시나 여유 있게 비웃었다.

“복수는 뭔 병신같은 복수야.

덩어리들 몇 놈 데려다 놓고 여편네들 상대로 사채질 하는 양아치들이

뭔 장도리니, 복수니 하면서 모가지에 힘주고 있어.

그렇게 대단한 새끼들이면 날 여기 처넣을 게 아니라 어디 인천 앞바다에 수장시켰겠지.

하여튼 좆도 아닌 새끼들이 가오는 존나게 잡아요. 병신 새끼들.”

대못은 심기가 불편한 듯 신음을 흘리다가 아까 태석을 데려온 사내에게 말했다.

“숫돌아. 네가 저놈 예절 좀 가르쳐야겠다.”

“예 형님.”

숫돌이라 불린 남자는 소매에 숨기고 있던 송곳을 꺼내어 순식간에 태석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태석은 이미 예상하였다는 듯 숫돌의 손목을 낚아채서는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팔을 비틀어 쥐어진 송곳까지 떨어트리게 만든 태석은

교도관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다가오자 순순히 양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물러났다.

물론 물러나면서도 약이 바짝 오른 대못을 보며 비웃음을 흘리는 건 잊지 않았다.



이후 며칠간은 교도관들의 감시로 좀처럼 태석과 장도리 파가 마주치는 일은 없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평소와 같아지자 다시금 숫돌이 태석을 찾아와라.

“형님께서 보자 신다. 그냥 얘기만 할 거니까 소란 떨지 말고 조용히 따라와.”

태석은 순순히 따라가면서도 괜히 숫돌의 속을 긁어 놓았다.

“손모가지는 괜찮냐? 우둑 소리 났었는데.

왼손잡이였길 빈다. 다친 손으로 젓가락질이나 제대로 했겠냐?

아 맞네. 왼손잡이였음 왼손에 쥐고 찔렀겠지.

밥 먹을 만하냐?”

숫돌은 작게 욕설을 뱉어내면서도 별다른 대응 없이 태석을 대못에게 데려갔다.

“우리 대못인지 대머리 새낀지가 또 왜 나를 찾았을까?”

이죽거림에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이번엔 대못도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저번에 어린애처럼 군건 사과하지.

내가 우리 식구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지라 좀 유치한 소릴 했어.

그런데 이제 보니 알겠어. 자네는 정말 불꽃 같은 사내야.

눈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 내 밑에서 폼나게 한번 일해보지 않겠나?”

태석은 이번엔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대답했다.

“차라리 신촌역 4번 출구 앞에서 깡통 하나 놓고 구걸을 하고 말지

뭔 나한테 양아치 건달 짓을 하라고 지랄이야.

그리고 뭐? 밑으로 들어가?

미친년 밑 닦아 주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어이 빡대가리.

듣자 하니 너희가 하도 몰려다니니까 높으신 양반이 너희 뿔뿔이 흩어 놨다며.

이 교도소에 몇 명. 저 교도소에 몇 명.

여긴 너희 둘이라 뭐 힘도 제대로 못 쓸 거 아니야?

근데 내가 왜 니 밑으로 들어가냐?

그럴 게 아니라 니가 내 밑으로 들어와.

내가 부하로 써줄게.”

숫돌은 단단히 화가 난 듯 다시금 뛰쳐나갈 기세였지만,

대못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숫돌을 제지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아쉽게도 지금은 내가 그리 힘을 쓰기 힘들지.

주력 간부에 큰형님까지 감방 신세를 지는 탓에 바깥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장도리파 전체가 쓰러진 건 아니야.

지금이야 밖에 애들이 구심점을 잃는 바람에 부끄러운 꼴을 보였지만,

내가 나가기만 하면 금세 다시 힘을 키울 거야.

그렇게만 되면 자네도 그렇게 웃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

주먹깨나 쓰는 건 알겠지만 한 번에 몇 놈이나 눕힐 수 있겠나?

그리고 자네 몸도 몽둥이에 뼈가 부러지고 사시미에 살이 베일 거 아닌가?

우리 멀리 보자고.

악연은 잊고 나와 손을 잡으면 그만큼 좋은 대우를 해주지.”

태석이 고민을 하듯 손으로 턱을 괴자 대못은 기대감을 가지고 태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태석은 이내 장난스럽게 웃으며 턱을 괸 손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왜 설레었냐? 이거나 처먹고 얌전히 사리고 있어.

이건 그냥 하는 말 아니다.

내가 모범수로 일찍 나가겠다고 우리 어머니랑 약속 했거든?

근데 계속 거슬리게 한다?

그럼 그냥 좀 늦게 나갈 생각으로 너랑 니 따까리

눈까리 하나, 손모가지 한짝 씩 병신 만들어 줄게. 공평하게.”

대못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자네야말로 후회할 일 만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아까 자네를 불꽃 같다고 했지?

괜히 하는 얘기가 아니야.

활활 타오르는 불은 모든 걸 다 태우지.

적들 뿐만이 아니라 주변 것들도, 자신 조차도 태우고 말지.

그리곤 금세 모든 힘을 잃고 사그라들어.

자네가 그렇게 되면 안 되지 않나.”

“그따위 알아듣지도 못할 병신같은 소리 할 거면 간다.”

태석이 정말 가겠다는 듯 몸을 돌리자 대못이 말했다.

“어머니가 있다고 했지?”

태석은 걸음을 멈추고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장난기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한층 무거워진 목소리였다.

“우리 어머니 건드는 순간 너희들 전부 다 편하게는 못 죽으니까 그렇게만 알아.”

그 말을 끝으로 태석은 멀어져갔다.

그걸 본 태석은 여전히 분을 못 참고 있던 숫돌에게 말했다.

“밖에 연락해서 저 친구 어머님께 인사 좀 드려야겠다.”






태석이 대못을 찾아온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이었다.

“너 이 씹새끼 내가 뭐라고 그랬냐? 우리 어머니 건들면 곱게는 못 뒤질 거랬지?

근데 너 뭔짓했어? 어? 똑바로 말해봐!”

대못은 흥분한 태석을 보고 크게 만족하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무슨 짓이라니. 아무것도 안 했네.

애들 시켜서 그냥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자네 이야기를 했지.

아드님께 신세 많이 지고 있으니 가끔씩 인사드리러 오겠다 했을 뿐이지.

물론 앞으로의 방향성은 자네 하기 나름이지.”

태석은 조금씩 숨이 거칠어지는 걸 느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네 밑으로 들어가서 개처럼 구르면 어떻게 되는 거냐?”

“그럼 우리 애들이 진짜 어머님처럼 돌봐 드리겠지.

아들 대신 전해주는 거라면서 용돈도 챙겨드리고 보살펴 드릴 거야.”

태석은 이를 뿌드득 갈면서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너랑 니 따까리 양쪽 눈 후벼파고 다리 병신 만들어 버리면?”

“자네 어머니는 세상 누구보다 비참하게 숨이 끊어지겠지.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인 자네를 원망하면서 말이야.”

태석의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갔다.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크게 한숨을 쉬고는 천천히 다가가 대못의 앞에 섰다.

무릎을 꿇으려는 듯 몸을 숙이는 태석을 보고 대못이 미소 지으려던 그 순간,

“좆까! 씨발 새끼야!!!”

태석은 품에서 예전 숫돌에게서 빼앗아 숨겨두었던 송곳을 꺼내어 대못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한 대못은 물론 곁에 있던 숫돌마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태석은 우악스럽게 대못에게 달라붙어 미친 듯이 송곳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광대뼈. 왼쪽 볼. 왼쪽 눈. 콧등, 이번엔 오른쪽 눈.

만족스러울 만치 얼굴에 송곳질한 태석은 이번엔 아킬레스건을 끊으려는 듯 발목을 집요하게 노려대었다.

뒤늦게 달려든 숫돌과 교도관들 덕에 대못은 앉은뱅이가 되는 것만은 피한 듯 보였으나

이미 얼굴이 엉망이었고 양쪽 눈을 전부 잃은 뒤였다.

대못은 비명을 지르며 교도관들에게 끌려가는 태석에게 소리쳤다.

“으아아! 개새끼 죽여버릴 거야! 너도 죽여버리고 니 애미년도 죽여버릴 거야!

사지를 갈가리 찢어서 불태워 죽여버린다!”





대못을 공격한 탓에 독방에 있던 태석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 건으로 형량이 제법 늘어날 테지만 거기에 대한 후회는 없다.

하지만 어머니 건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문제없겠지. 괜찮겠지. 잘 되겠지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떨치기 힘들었다.

“그 새끼들 설마... 아냐. 아닐 거야. 이상한 생각하지 말자.

그놈들이면 분명 졸렬하게 우리 어머니 찾아가서 죽여버릴 거야.

그래. 자기네들 형님을 그 꼴로 만들어놨는데. 복수를 안 할 리가 없어.”

태석은 자꾸만 떠오르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자기 어머니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즐거운 생각만 하려 애썼다.

“미친년. 어릴 땐 학대하고 굶기다가 머리 커지니까 도망가더니만

늙고 병드니까 돌아와서 수발 들어달라 해?

내가 성질만 같았으면 진짜 진작 대가리를 깨버리는 건데

아무리 내가 씹새끼여도 내 엄마는 못 죽이지.

씨발년...

그 빡빡이 새끼가 네년 얘기할 때 존나 반가웠던 거 아냐?

잘하면 패륜 안 저지르고 네년 모가지 따겠구나 싶어서.

빨리 뒤져라. 얌전히 있다가 맘 편히 출소하게.”

태석은 불안감을 지우고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