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떻게 하려고 그래?”

잘 익은 고기를 두세 점 집어넣은 상추쌈을 막 입안에 집어넣으려던 진수는

재혁의 말에 잠시 기운이 빠진 듯싶었으나 이내 입을 크게 벌리고 쌈을 욱여넣었다.

“우리 이제 어린 나이 아니야. 눈 깜짝하면 이제 삼십 대 되는 거야.

그때쯤 되면 이제 직장에서 한 자리 차지 해야 할 나이고, 결혼해서 애도 가지고 해야 할 나이야.

아직까지 그러고 있으면 안 되지.

그럴 게 아니라. 내가 아는 형님한테 잘 말씀드려 놓을 테니까.

공장일부터 시작해 보자.”

진수는 재혁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두 번째 쌈을 싸는 중이었다.

재혁은 크게 한숨을 쉬고 자신의 잔에 소주를 채웠다.

새삼스러운 것도 없었지만, 진수의 저 태도를 보면 답답함을 넘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잠시 연락이 끊긴 적도 있긴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둘이었고,

사실상 지금까지 연락하는 거의 유일한 동창이었다.

다만 졸업 후 어떻게든 자기 살길을 찾아 취업에 성공한 재혁과 달리,

진수는 지금 그 어떤 취업 활동도 하지 않고 부모님께 용돈만 받아 쓰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진수가 지금 자신의 상황에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무슨 공시든 자격증이든 준비를 하는 건 어때?

아무리 그래도 너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하다못해 하루 얼마간이라도 책 펴놓고 들여다보면 좀 낫잖아.

안 그래? 너 하루종일 뭐 하는데?”

다소 격하게 말하는 재혁의 모습에 진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하긴.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러다 출출하면 먹을 것도 시켜 먹고 또 가끔 이렇게 친구가 사주는 고기도 먹고 하는 거지.

난 지금이 좋아. 취업은 무슨 놈의 취업. 이렇게 좋은데.”

욕이 목구멍까지 치닫고 올라왔지만, 재혁은 심호흡한 뒤 다시금 차분히 말했다.

“그래. 그것도 좋아. 막 목메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 보내는 것도 중요해.

근데 언제까지 그럴 거냐 이거지. 너 벌써 몇 년째 즐길 거 다 즐겼잖아?

그럼 이제 준비 해야지. 언제까지 용돈 타 쓰면서 살 수는 없잖아.

10년... 아니 당장 5년 뒤에 어떻게 할 건데?

부모님께도 죄송스럽잖아 안 그래?”

부모님이란 말에 진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 거짓말 하나 없이, 정말 단 하나도 미안하지 않아.

왜냐하면 원래부터 내가 받았어야 하는 것들이거든.

아들이니까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것들이란 소리야.

미래? 그거도 마찬가지야.

미래가 뭐라고 그렇게 애써가면서 준비하냐고.

어차피 후일은 모르는 거 아니야?

한 5년 뒤에 내가 로또가 될지도 모르지.

만약 안 되면? 그냥 죽지 뭐.

내가 뭐 죽는 게 무서울 거 같아?
까짓거 놀 만큼 놀다가 만족하고 죽으면 그것도 호상이네.”

재혁은 다시금 소주를 따라 입안에 털어 넣고는 간절히 말했다.

“야. 그러지 말고 정신 좀 차리자. 너 하면 또 잘하는 애잖아.

왜 자꾸 다 포기하고 도망가려고 해. 전과 같은 거 너무 얽매이지 말고... 아..”

무심코 내뱉은 재혁은 다급히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진수는 이미 들은 듯 손을 멈추고는 싸늘한 얼굴로 재혁을 보며 말했다.

“왜? 계속 말해봐. 뭐 고딩때 살인죄로 깜빵 다녀온 나쁜 놈도 갱생할 수 있다고?

아니면 뭐 어디 교회 가서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라든가.

이게 씨발 존나 웃기지 않냐?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죄를 뉘우쳐야 되는데?

나 학생 때? 착한 놈이었어.

수업도 열심히 듣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고.

근데 죽은 그 새끼는?

애들 괴롭히고. 말도 안 듣고. 담배 피고. 삥 뜯고.

그 새끼가 나쁜 놈이잖아? 너도 알지?

그게 맞는 건데 지금 어때?

그 새끼는 뒤졌다고 불쌍한 피해자고

난 씨발 더러운 살인마 새끼더라.

그게 맞아?”

재혁은 숨을 고르고는 천천히 대답했다.

“미안.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 너 나쁜 애 아니지. 알아.

네 맘 잘 알지. 난 그냥 네가...”

“알면! 날 알고 이해하면. 아니 이해하고 말고를 떠나서

딴 놈들은 몰라도 너는!

너는 그따위 소리 하면 안 되지.

착한 사람, 좋은 사람 되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얌전히 살았거든?

그랬더니 좆같은 새끼들이 만만하게 보고 존나 패더라?

돈은 또 얼마나 뜯겼는데.

근데 선생은?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어.

그래놓고 막상 그 병신이 뒤지니까 내가 나쁜 놈이래. 진작 알아봤대.

평소 정서가 불안하고 반사회적 행실 어쩌고 하면서.

내가 제일 억울한 게 뭔지 알아?

내 가족도 내 편 안 들어 주더라?

새아빠란 인간은 남의 자식이라고 아예 모르쇠고

엄마는 겁이 나서 한마디를 못 해.

그래서? 난 깜빵에서 썩고. 빨간 줄 그어진 채 버려졌어.

그런 내가 뭘 위해서 열심히 살까?

그냥 지금도 내 눈도 못 마주치는 새아빠란 작자 돈 실컷 쳐 쓰고,

나 하고픈 대로 살다가 죽는 게 최선 아니야?”

재혁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어떻게든 올바른 길로 끌어주고 싶지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다 알아. 나도 다 아는데. 아직 늦지 않았다고.

네가 그랬잖아 원래 착한 애였다고.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아.

그러니까 흥분 좀 가라앉히고 다시 시작하자.

착하고 성실하게 하면 다 해결될 거야.”

재혁의 말에 진수는 이번엔 웃었다.

허탈감이 아닌 진짜 재미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너. 내가 출소하고 나서 한동안 엄청 노력 했던 거 아냐?

나도 어떻게든 수습하고 잘살아 보려고 엄청 애썼거든?

근데 안되더라? 취업도 안 되고, 사람들도 다 나 피하고,

집안에서도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이었어.

그런 거 있지? 길바닥에 버려진 더럽고 못생긴 개새끼.

사랑도 못 받고 환영도 못 받고 그냥 쓰레기처럼 뒹구는.

딱 그 꼬라지였어.

오히려 내가 착하게 살려고 할수록 더 취급이 병신 같아지더라.

아주 자살하고 싶을 만큼 지랄맞게.”

진수는 손목을 걷어 선명하게 남겨진 자해 자국들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왜 안 죽고 여태 살았는지 알아?

착한 짓 때려치웠거든.

그래. 어차피 다 나쁜 놈으로 보는 거.

아주 씨발 존나게 나쁜 놈이 되어보자.

세상이 나를 개새끼로 보면. 까짓거 개새끼가 되자.

근데 그냥 개새끼도 아니고 존나 물어 뜯는 개새끼.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까 세상이 편해지더라.”

재혁이 무어라 말리려 했지만, 진수는 위협적으로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끼어들지 말고 끝까지 들어. 칼부림 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진수의 품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재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날 벌레 보듯 하던 새아빠도 내가 이거 들이밀고 지랄하니까 그제야 좀 고분고분해지더라.

나 무시하던 사람들도 내가 욕하고 위협하니까 그제야 꼬랑지 내렸어.

호구처럼 있으니까 잊어버리고 있다가 칼 들이미니까 정신 차린 거지.

‘아 맞다. 쟤 사람 죽인 놈이지? 수틀리면 내 모가지에 칼 꽂을 만한 놈이지?’

하면서 그제야 벌벌 떨기 시작하더라고.

씨발... 착한 놈 되려고 그 지랄을 해가면서 설설 기었는데.

나쁜 놈이 되니까 내 맘도 편해지고 다 제대로 되더라고.

전부 다 해결이 되는 거야.

웃기는 얘기 해줄까?

옛날에 출소하고 얼마 안 돼서는 정말 건실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이발도 멀끔하게 하고 다니고 면도도 하고 옷도 신경 쓰고 운동도 했어.

근데 사람들이 무시를 하더라?

내가 병신 호구처럼 생겨서 그랬는지.

어떤 년은 내가 지 치마를 건드렸다나 어쨋대나 그러면서 사람 변태 취급하고.

뭔 할배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나한테 와서 담배 받아 피고 잔소리하고.

근데 내가 아예 미친놈처럼 머리도 산발에 후드 눌러쓰고 위험한 분위기 풍기니까.

다들 벌벌 떨고 눈치 보는 게 보이더라.

그게 존나 내 자존감을 채워줬다고.

봐. 얼마 전 얘기 해줄까? 요새 괜히 사람들 겁주고 놀리는 거에 푹 빠졌거든?

요새 비 자주 오잖아. 분위기 있는 봄비.

비 오는 날 느지막한 시간에 모자 눌러쓰고 우의에 장화 신고 안주머니에는 뭐?

식칼 신문지에 둘둘 말아가지고 밖에 나가는 거야.

그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괜히 으슥한 곳에서 분위기 잡다가 혼자 걷는 사람 있으면 슬그머니 따라가.

그럼 흘끔거리면서 발걸음 점점 빨라지다가 나중에 가서는 거의 울면서 도망간다고.

그 꼴이 너무 웃긴 거야.

뭐 딱히 해코지는 안 하는데 그냥 겁먹고 쪼는 걸 보니까 뭔가 마음속 공허함이 채워지는 거야.

진짜 속이 시원해지는 그런 거 있지?

그동안 무시당했던 거 전부 다 보상받는 느낌.

그래. 이 병신 같은 인간들이 날 무서워하는구나.

그렇게 무시하더니만 이제야 내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나는구나.”

재혁은 신이 나서 떠드는 진수를 볼수록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직 뭔가 사고를 친 건 아니지만, 지금의 진수라면 언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재혁은 진수의 그런 기행을 멈추고 싶었다.

적어도 단 한 번의 실형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진수야. 너 나쁜 애 아니잖아. 원래 착한데 그냥 억지로 나쁜 사람 되려는 거잖아.

그건 진짜 내가 제일 잘 알거든?

힘들지. 힘들고 괴로워서 그러는 거 다 이해하는데

진짜 그러지 말자. 새 출발 해서 다시 제대로 돌려놓자.”

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 새 출발 뭐 이런 거 없어. 난 그냥 살인자고 그건 절대 안 변해.”

싸늘하게 말하는 진수를 보며 재혁은 큰 결심을 한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그만해! 진수 너....

살인자 아니잖아. 너 사람 죽인 적 없고, 그냥 무고한데 감옥 간 거 뿐이잖아.”

진수는 잠시간 재혁의 얼굴을 보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난 사람 안 죽였지. 사람은 네가 죽였지. 난 너 대신 빵 간 거고.

그래서 왜?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

아. 그래. 괜히 찔리니까 어떻게든 나 도우려는 거구나?

너 때문에 내 인생 조져졌다고 생각하니까 밤에 잠도 안 오고 지옥 갈 거 같고 막 그래?”

재혁은 눈을 감으며 오래전 일을 떠올렸다.

‘내가 다 책임질게. 제발 도와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진수가 재혁에게 그렇게 부탁해 왔다.

재혁은 어떻게든 진수를 괴롭히던 그 아이를 혼내주어야 했고,

힘들어하던 진수 생각에 조금 흥분한 바람에 과하게 힘이 들어가 버렸다.

커다란 돌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피를 토하는 그 애는 얼마 못 가 목숨을 잃었고,

진수는 몹시도 당황하면서도 재혁 대신 모든 것을 덮어쓰기로 했다.

‘고마워. 평생 잊지 않을게.’

사건 현장에서 재혁을 보내며 진수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재혁에게 생각 이상으로 큰 공포로 다가왔고,

급기야는 진수를 기피하게 만들었다.

재판 때도, 실형 중에도,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형을 다 마쳤을 때도 재혁은 진수를 피했다.

다행히 시간은 재혁의 죄책감을 흐려지게 만들었지만,

우연히 듣게 된 진수의 소식은 새롭게 재혁의 마음을 괴롭혀 왔다.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진수.

그 미안함과 고마움을 견디지 못하고 용기 내어 찾아갔건만,

진수의 상태는 재혁의 마음을 더욱더 어지럽혔다.

그랬기에 어떻게든 진수를 예전 모습으로,

아니 적어도 최소한의 생활은 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난 약속 지켰어. 네가 벌인 짓. 전부 다 책임졌고, 난 지금 이 상황 몹시 만족해.

근데 넌? 이제 와서 양심에 가책 느껴? 그 오랜 시간 동안 입 다물고 도망쳤으면서,

이제 와서 불안해졌어?

내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다 불어 버릴까 봐?

그 하잘것없는 인생도 지키고 싶다 이거지?

네가 그렇게도 한심하게 보는 내 인생이랑 바뀔까봐 불안한 거구나?

그거라면 안심해. 난 이 빨간 줄. 굳이 너한테 넘길 생각도 없고 널 원망할 생각도 없거든?

오히려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나은 느낌이야.

눈치 보고 치이고 쭈그려 있던 거. 정말 지긋지긋했거든.”

재혁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흠칫 놀랐다.

이 모든 건 진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안심을 한 것일까?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재혁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신. 그거 하나만은 기억해 둬.

나중에. 진짜 한참 나중에라도 내가 널 원망하게 되잖아?”

진수는 자신의 품을 두드려 보며 말했다.

“고자질 하는 거로 끝내지는 않을 거야. 절대.

이거 가지고 사람들 겁주고 다니면서 느꼈거든?

난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고, 가지고 싶은 것도 아무것도 없어.

감옥도 죽는 것도 안 무서우니까 못 할 짓이 없어.

무슨 소린지 알아?”

진수는 목소리를 낮추고 위협스레 말했다.

“당장이라도 네 눈깔에 칼 박아넣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이 말이야.”

재혁이 긴장으로 몸을 딱딱하게 굳히자

진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고기를 입 안에 넣었다.

“고기 더 시켜. 이거 다 타서 못 먹겠다.”

재혁은 침을 삼키고는 천천히 고기를 주문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