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딱지]


“허. 참 모질어. 인간이란 작자들이 어찌 그리 모진지 몰라.”

취기가 올라오자 지물포 장씨는 여느 때처럼 그렇게 서두를 떼었다.

“또 장호시장 얘기요? 그건 이제 지겨울 때 안됐소?”

형, 동생 하고 지내며 곧잘 장씨의 술 상대가 되어주는 전파사 임씨는

안주랍시고 꺼내놓은 말린 감을 우적거리며 대답했다.

“지겹기는. 내가 생각할수록 이 맘이가 안 좋아서 그냥 있을 수가 있나?

내 새끼처럼 이뻐한 아그들 이었다 이 말이야.”

장씨의 말에 오늘은 어쩐 일로 가게도 비우고 한 자리 차지한 잡화상 안양댁이 물어왔다.

“장호시장 얘기는 또 뭐래요? 난 첨 듣는구만.”

장씨는 기다렸다는 듯 크게 탄식을 뱉어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젊을 적 저 바닷가 장호시장에 있을 때,

아주 기구한 애들을 돌봐준 적이 있었거든.

근데 이게 사람들이 어찌나 모질었는지 몰라.”




내가 이제 장호시장 그 괴팍시런 황영감 밑에서 도배 장판 일 배우고 있을 때.

지하 단칸방에 형제가 살았지.

그때 동생 놈이 17살이든가 17살이 좀 안 되었든가 하고.

형이란 놈이 스물을 갓 넘겼었는데

동생 넘은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에

형이란 놈은 지능 장애라던지 뭔지 애가 많이 모지랐어.

국민학상보다 못한 머리라든가 아마 그랬을 거야.

암튼 이제 이것들이 애비는 누군지도 모르고.

어미는 둘째 낳고 얼마 가질 않아서 그만 몸이 약해 먼저 간 거라.

내 그걸 알고 가끔 가서 찬거리도 챙겨주고 잠자리도 봐주고 했지.

아 사람 된 도리가 그런 거 아니것어?

그때야 뭐 영감 등살에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지만 내 도의상 그냥 둘 수 있어야지.

암튼 그 형 놈은 모지라도 아주 애가 착한지라.

핵교도 못 댕기는 동생 먹여 살리겠다고 시장에 나가서 잡일을 했다 이거지.

애 머리가 꼭 밤송이마냥 까슬해서 밤톨이라고들 불렀는데

그놈이가 시장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이제 저 생선가게에서

‘밤톨아! 여 얼음 좀 날라라!’

그러고

저 포목점에서.

‘거기 밤톨! 와서 짐 좀 내려줘!’

이러는 거지.

애가 힘은 또 쓸만하고 잔꾀도 없이 묵묵히 일하니까

시장에서 밤톨이 손 안 빌린 이가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지.

그렇게 짐 나르고 일 시킨 다음엔 삯을 줘야 하는데

이 장사하는 사람들이 간사해가지고 고생은 고생대로 시키고

푼돈이나 조금 쥐여주는 게 고작이었어.

그나마도 밤톨이 놈이 동생이 배곯는다고 징징거리고 매달린 덕에 마지못해 꺼내주기 시작한 거지

대충 거저 써먹을라는 이도 많았어.

암튼 그렇게 하루종일 일해가지고 얻는 돈으로 라면사고 보리쌀 사고 해서 동생 먹여 살렸지.

뭐 학교 보내는 건 꿈도 못 꿨고.



근데 인자 언젠가부터 이이 시장 사람들이 그마저도 좀 아까워진 거라.

모지란 놈이니 잘하면 꽁으로 실컷 부려 먹을 수 있겠다 싶었겠지?

그래서 꾀랍시고 낸 게 그 별딱지란 놈이었어.

그땐 이제 시장에선 장판 조각에다가 별도장을 찍어가지고

물건 살 때마다 하나씩 주고 그랬어.

그걸 별딱지라 불렀는데 그 별딱지를 모아 시장 관리소에 가져가면

휴지랑 라면으로 바꿔줬지.

손님 끌 생각으로 시작한 거지만 이게 영 수지에 안 맞으니까

언젠가부터 폐지가 돼버린 거라.

그러니 어째? 한순간에 별딱지 이게 애물단지가 되었지.

본래대로라믄 싹 가져다 버려야 하는데 이이 모진 인간들이 이걸 써먹기로 했어.


밤톨이한테 일을 시키고는 이제 삯 대신 이 별딱지를 주기 시작한 거야.

‘아 야. 이게 별딱지란 긴데, 이그를 잔뜩 모으믄 너 소원을 들어준다. 니 아픈 동생 있제? 이거 모아가 정성을 다해 빌믄 너그 동생 두 다리 멀쩡히 설 수 있는기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지.

동생 걷게 할 수 있단 말에 모지란 밤톨이는 아주 그냥 눈이 돌았지.

그때부터 돈은 마다하고 별딱지를 달라 떼를 쓴 거야.

시장 사람들은 쓸모없는 별딱지 던져주고 꽁으로 일 시키니 얼씨구나 하고 좋아했지.

누구 하나는 거짓말이라고 말해줄 법도 한데

이 장사치 놈들은 그냥 입 꾹 닫고 부려 먹기만 한 거야.

그렇게 밤톨이는 간신히 연명할 정도의 푼돈만 빼고 전부 별딱지를 받았지.

몸 성치 않은 동생이 먹는 거까지 부실했으니 어쨌겠어?

냉골에서 콜록거리던 동생은 끝내 폐가 상했는지 피를 토하며 쓰러진 거라.

밤톨이는 기겁을 해가지고 지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 나갔지.

맘은 급하고 머리는 안 따라주니 그냥 다짜고짜 병원 아무나 붙잡고 엉엉 울면서 더듬더듬 말하는 거.

응? 지 동생 살려달라고. 제발 우리 불쌍한 동생 살려만 달라고 아주 난리가 난거지.

근데 그 간호사 년은 얼마나 표독스러운지 더럽다는 양 밤톨이를 휙 하고 쳐내곤 그런 거야.

살리고 싶으면 돈 가져오라고. 돈 내야 살려준다고.

근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애들이 돈이 어디가 있겠어?

밤톨이는 그길로 나가서 시장 사람들 붙잡고 돈 좀 빌려달라 애걸복걸했지.

근데 뭐 딱하지도 않은지 누구 하나 선뜻 돈을 안 내놓는 거야.

그렇게 울고불고 매달리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해.

그래서 밤톨이가 어떻게 했냐 하면. 하 참 내가 속이 다 상해서.

집에 가서 그간 모은 별딱지 있지?

꼬깃한 비닐에 보물인 양 정성스레 모은 그 별딱지를 가져다 병원에 들이민 거야.

소원 들어주는 별이니까 이거 받고 동생만 살려달라고.

참, 사람이면 그 꼴을 보고 이제 안쓰런 맘이 들 텐데

세상에 병원 놈들은 그대로 아픈 동생이랑 밤톨이를 내쫓아 버렸어.

밤톨이는 열이 펄펄 끓는 동생 앞에서 별딱지들을 끌어모으고는 빌었지.

별님 별님 우리 동생 살려만 주세요.

제발 우리 사랑하는 동생 좀 살려주세요.

하... 그 처절한 꼴을 보고도 누구 하나 도와주질 않아서

결국 동생은 그 시장 길바닥에서 숨이 끊어졌지.








안양댁은 마음이 안 좋은지 연신 탄식하며 술잔을 비워대었다.

“하이고. 참혹해라.. 사람들이 어찌 그리 모질대요...”

장씨 역시 술을 입안에 털어 넣고는 말했다.

“모질지. 모질고말고. 그래. 결국 동생 보낸 밤톨이도 식음을 전폐하다 얼마 안 가 그 냉골에서 얼어 죽었어. 누가 한 번만 들여다봐도 좋았을걸”

장씨의 말에 임씨는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듯 입을 움찔거렸지만 끝내 들썩이는 입에 말린 감을 집어넣고 우물거릴 뿐이었다.

이리 속이 쓴 이유는 장씨가 말하지 않은 뒷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 장호시장에서 식당 하던 사람에게 듣기를

그 형제의 친모가 실은 장씨의 누이였다고 한다.

그러니 밤톨 형제는 장씨의 조카가 되는 셈이다.

말로는 챙겨주었다 했지만 실상 국가 보조금을 중간에서 날름하고

그 단칸방에 애들을 방치한 꼴이었다.

중요한 얘기는 쏙 빼고 시장 사람들만 욕하는 장씨 꼴이 영 보기 싫었지만

안 좋은 소리라도 할라치면 다짜고짜 상부터 엎어버리고 역정을 내는 통에 그냥 참고 있는 것이었다.

‘거 욕이나 하지 말지.’

속으로 중얼거린 임씨는 마지막 잔을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어쩌면 장씨는 은근히 남은 죄책감을 장호시장에 떠넘기려 부러 더 떠들어대는지도 몰랐다.

“모질어. 사람들이 어찌 그리 모진지. 다 지옥에 가 마땅해.”

장씨는 주문을 외듯이 떠들어 대었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