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공게에서 깽판을 치고 사라지는

옛날 어느 마을, 푸른 색 수염을 가진 기묘한 귀족이 살았습니다.

그는 커다란 성에 살 정도로 매우 많은 부를 가진 남성이었습니다.

게다가 귀족인데도  평민인 마을 사람들에게도 정중히 대했고,

자신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는다면 상대를 존중하는, 젠틀맨이었죠.

무례를 범하더라도 그 것이 어지간한 것이라면 넘어가주는 대인배였습니다.

다만, 이 남성은 결혼 운만큼은 지독하게 없었습니다.

중년에 접어들 무렵 여섯 차례나 결혼을 했는데도 항상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은 그가 자리를 비우면 재산을 챙겨서 도주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남자의 주장이긴 하지만요.

여섯 번째 아내를 잃고도 이 남성은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뭐가 어찌됐든 이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은 사라졌습니다. 그가 신사적인 귀족이라고는 해도 확실한 물증도 없고 돈을 들고 도망쳤다는 것은 이 남성의 주장일 뿐이기도 했어요. 그러니 남성에게 쉬이 딸을 내주는 부모는 없었습니다. 남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품을 팔아 어느 집에 도착합니다. 많은 딸과 아들을 둔, 다소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물론 이 집의 사람들도 망설였습니다. 딸이 도망간다면, 이번에야 말로 푸른 수염이 단단히 화가 나 자신들을 해할 수도 있고 결정적으로 부모들이 대개 그렇듯 딸을 잃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집안은 결국 푸른 수염에게 막내딸을 내줬습니다.

왜냐구요? 막내딸이 제일 이뻤... 아 이 부분이 아닌가. 푸른 수염이 제시한 결혼 지참금이 이 사람들이 생각했던 금액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거액을 제시했죠. 판본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판본에서는 막내딸을 내 준 이유가 푸른 수염이 볼 때 막내가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첫째를 주겠다, 싫다 막내를 달라, 둘 째를 주겠다, 싫다 난 막내가 좋다... 실랑이를 좀 하긴 했지만 푸른 수염은 한번 더 지참금의 금액을 높이는 방법으로 부모를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물론 푸른 수염 입장에서는 딱히 아쉬울 건 없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에게 이 지참금은 푼돈에 불과할 정도로요. 

대단하죠? 이렇듯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겁니다.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교훈을 주는 동화네요. 아닌가? 어쨌든...

사실 이 막내 딸도 처음엔 불만을 품었습니다. 아무리 남펀으로 맞이한 사람이긴 하지만 귀족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혹시 미움을 사 변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막내의 생각도 얼마 안 가 바뀌게 되었죠.

성의 외관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성의 안 쪽에 비하면 외관이 초라해보일 정도로 내부가 엄청 아름다웠습니다. 무엇보다 매일 일을 해야 겨우 얼마 안되는 음식을 먹었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삶이 펼쳐졌습니다.

성의 하인들은 그녀에게 매우 깍듯하고 예의 바르게 굴었습니다.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저게 갖고 싶네... 라고 하기만 해도 그 들은 어떻게든 그 물건을 손에 넣어 그녀에게 주었고, 여지껏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옷들을 하녀들이 정성을 들여 입혀줬으며 식사도 산해진미로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성을 돌아 다닐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 했습니다. 무엇보다 푸른 수염이 막내의 생각과는 달리 매우 가정적이고 다정하게 대해주었다는 이유가 제일 컸습니다.

어린 아이마냥 즐거워하는 그녀를 보며 푸른 수염도 흐뭇해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푸른 수염이 일이 생겨 장기간 지방을 다녀와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푸른 수염은 그녀에게 성 안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주며, 돈은 어디에 있으니 써라, 부족할리 없겠지만 만일 부족하다면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이러한 곳들에 있으니 팔아서 쓰면 된다. 무엇이든 상관 없으니 마음 놓고 써라. 그런데, 지하실의 방은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방이니 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푸른 수염의 말대로 했죠. 듣도 보도 못한 아름다운 그림들과 보석, 금, 그리고 금으로 세공된 장신구, 가치가 높아 보이는 무구와 갑옷 등... 그녀의 눈은 문을 열때마다 휘둥그래졌습니다. 지하실이 궁금해지긴 했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언니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즐기며 그녀는 자랑을 해댔습니다. 언니들은 물었죠. 지하실엔 무엇이 있느냐고. 그녀는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모르니까요. 그러자 언니들은 그녀를 꼬드겼습니다. 아마 엄청난 물건이 지하실에 있는 모양이라고... 이 부분은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와 프쉬케 신화와 비슷하네요. 

언니들이 돌아가고 그녀는 궁금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생각했죠. 구경만 하는건데 큰 문제가 있겠냐구요. 즉시 지하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을 본 그녀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인지하자마자 그녀는 경악하며 열쇠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그 것들은 푸른 수염에게 시집을 갔던 여성들의 머리들이었습니다. 지하실을 연 처벌이었겠죠. 그 장소에서 바로 들킨 여성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하실의 바닥이 피로 흥건했기 때문이죠. 즉 열쇠에 피가 묻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서둘러 열쇠에 묻은 피를 닦아낸 뒤 지하실을 잠궜습니다. 그리고 거의 직후 푸른 수염이 돌아왔죠. 그녀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남편에게 열쇠를 돌려주었습니다. 푸른 수염은 허기가 진다며 하인들에게 식사를 차리도록 했습니다.

"오랜만에 왔으니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 좋겠소."

그녀는 그러자고 했습니다. 거절하면 이상해 보일테니까요. 그녀와 푸른 수염은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어색한 기류가 감도는 가운데 푸른 수염은 안 주머니에서 흰 손수건을 꺼내 열쇠를 신중하게 문지르기 시작하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약속을 지키지 않았소?"

그녀는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딱 잡아때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푸른 수염은 조용히 흰 손수건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피가 묻어 있었죠. 그녀는 열쇠의 틈에 묻어있던 피를 미처 닦아내지 못했던 겁니다. 푸른 수염의 슬픈 목소리는 계속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처음의 순수한 모습을 잃어버린게요?"

이제 푸른 수염은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슬픈 목소리가 아니라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첬습니다.

"그대가 약속을 어겼을 진정, 순수함을 잃지만 않았다면 난 용서했을 거요 !!"

푸른 수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녀도 거의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죠. 차이점은 푸른 수염에겐 날이 잘 선 검이 있고 그녀에겐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녀는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성 내부를 훤히 알고 있는 푸른 수염에게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잡히기 직전 그녀는 애원했습니다.

"...정말로 절 사랑하셨다면, 마지막으로 신에게 기도 드릴 시간이나마 주세요 !!"

푸른 수염은 잠시 갈등했지만 검을 내렸습니다. 슬픈 목소리로 그러도록 하시오... 라고 이야기했죠. 그녀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그녀를 도와주

지는 당연히 않았고, 대신 때마침 일이 있어 성을 방문한 그녀의 오빠들이 이 광경을 마주하곤 푸른 수염을 처단했습니다. 푸른 수염은 저항하긴 했지만 인원수에서 너무 밀렸죠. 이렇게 동화는 끝이 납니다. 뭐 동화들이 대개 그렇듯 타이밍이 기가 막히죠.

잔혹한 내용입니다만, 집필자가 자녀 교육을 위해 남겼다니, 어쨌든 동화입니다. 뭐, 사실 집필자라고 하긴 애매한 게... 이 사람은 민담 수집을 하면서 이 내용을 다듬은 거거든요. 일종의 구전설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화에는 현실적으로 무서운 부분이 있습니다.

푸른 수염은 현대로 치면 연쇄살인범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인 아내들의 머리를 보관한 인물이죠. 그런데 실제로 연쇄살인범들이 일종의 트로피 같은 개념으로 피해자의 신체 일부나 소지품을 가져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동화는 실화 기반일지도? 너무 확대해석 같긴 하네요.

이런 이야기는 의외로 많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거나 아내가 잘못하여 살해 당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푸른 수염이 상징적인 수염을 가지고 있어서 유명할 뿐이죠.

판본에 따라 아내의 수가 다릅니다... 수십명까지도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머리가 아닌 시신 그 자체를 보관한 판본도 있고...

구전 설화라는 게 대채로 그런 것이니 신경쓰지 마세요.

새로운 한 주간의 시작이네요. 부디 평안한 나날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