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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 [5]

작성자

No치킨No해피

쪽지 | 작성자 글보기

번호 83221 추천 22 답글 5 조회 18,623 작성시간 2024-01-20 15: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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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을 당했다.

야생 버섯이 정력에 좋다느니, 값이 좀 나간다느니

하는 친구의 꼬임에 넘어간 걸과였다.

등산로를 벗어나 숲에 발을 딛는 멍청한 짓을 하지 말있어야 했다.

원래 이 즈음이면 유튜브 같은 걸 보고 있는 편인데...

어쨌든 상황은 좋지 않다.

방향 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

좌우는 커녕 위를 향하는 지

아래를 항하는 지도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이 조난이 벌써 닷새째라는 것이다.

가져온 식량은 진작에 바닥 났다. 원래 계획 자체가

당일치기로 정상에서 일몰을 촬영하고 내려간다는 것을

전제로 한 등산이었기 때문이다.

물도 이미 바닥났다. 이유는 위와 동일하다.

심각성을 인지한 뒤로 최대한 아껴 마시긴 했으나

준비해간 식수 자체가 워낙 적었다.

이 산에 야생동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맷돼지, 마주치자마자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은 고라니, 접근하긴 쉽지만 일정거리 이상 다가가면

재빨리 도망간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토끼. 승산이 있는 건 이 놈 뿐인데 이미 지칠대로

지친 우리에게 잡혀 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다람쥐. 토끼도 못 따라가는데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종종 나무 열매가 보이긴 했다.

실제로 먹었다. 친구와 나, 둘 다 설사로 고생했다.

결과적으로 식수를 낭비하게 된 꼴이었다.

나무의 껍질. 선조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을지 깨달았다.

도저히 먹을 수 없다. 아마 뭔가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는 모양인데 우린 그걸 몰랐다.

미칠듯이 배가 고프다.

도저히 걷는 것 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동을 해야 산을 벗어나든 뭘 하든 할 것 아닌가.

허기 때문에 정신이 나갈 거 같았다.

아니 실제로 정신이 나갔다.

친구에게 내기를 제안했으니까.

친구도 정신이 나갔을 거다.

내 내기를 받아 들인 걸 보면...

내가 제안한 내기는 초성 게임이었다.

내가 이겼다.

그러나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꽤나 고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가하게 핏물을 빼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질기고, 비리고, 누린내가 났다. 그래도 나는 많이 먹었다.

이제 어느 정도 배는 찼다. 친구는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았다.

대신 날 혐오스럽다는 듯이 쳐다볼 뿐이었다.

이제 토끼 정도는 도전해 볼 만 하다.

친구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지만.

연신 앓는 소리를 내니 오히려 방해가 됐음 됐지...

그러나 토끼를 마주치진 못 했다.

발달한 후각 덕택일까? 재수도 좋지, 빌어먹을 토끼 새끼들....

대신 맷돼지나 고라니는 종종 마주쳤다.

고라니는 역시 생각보다 빠르다.

게다가 자주 방향을 바꿔대서 체력만 소진했다.

고라니는 포기하기로 했다.

맷돼지는... 누가 봐도 우리에게 승산은 없어 보인다.

맷돼지도 포기하기로 했다.

나무 열매... 이번엔 신중을 기해 익혀 먹었다.

결과는 설사... 내천을 어서 발견해야 하는데....

흙탕물로 갈증을 해소하는데엔 이미 지쳤다.

뱀을 발견했다.

다행히 대가리가 둥근 놈이었다.

힘겹게 쫓아가야 하긴 했지만, 몇 차례 물리기는 했으나

잡는데에는 성공했다. 맥가이버 칼로 대충 껍질은 벗겨낼 수 있었다.

구워먹긴 했는데 맛은 최악이었다.

비리고 설명하기 힘든 맛이 난다. 이런 걸 굳이 돈 내고

먹는 인간들은 돈이 남아도나? 내 손질이 서툴렀을지도...?

그나마 친구는 제법 먹었다. 많이 허기졌던 모양이다. 웩-.

친구가 내기를 제안했다. 게임은 가위 바위 보...

난 팔 씨름을 하자고 했지만 욕만 먹었다.

결과는... 내가 이겼다.

이번에도 힘겨웠다.

물이 없으니 구울 수 밖에... 좀 많이 구우니

더 질겨지긴 했는데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나는 많이 먹었고... 친구도 그럭저럭 먹었다.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조난을 당한지 열흘 정도... 생각해보니 구조요청을 했어야 했는데.

이 쪽 길이다, 저 쪽 길이다를 두고 친구와 다투다 보니

미처 핸드폰이란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이제와서는 이미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불가능하지만...

다음에도 조난을 당하면 구조요청 전화부터 해야지.

여전히 토끼는 보이지 않는다.

친구의 앓는 소리가 더 커진 탓일까...

토끼는 청각이 발달된 동물이니까.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맷돼지 뿐이다.

신기한가 보다. 하긴 날이 갈수록 후줄근해지는 동물은

처음 봤겠지. 맷돼지 입장에서는 신기할지도...

일단 저 놈도 잡식성이니 조심해야지,

아직 우릴 공격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나무 열매는 포기했다. 최근에 먹은 건

버섯 뿐이다. 신중을 기해 흰 버섯만 먹었다.

조금이라도 색이 이상한 건 손도 대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구워 먹었다.

애시당초 이 숲엔 버섯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친구는 최근 들어 식물의 줄기를 씹어대고 있다.

어지간히 배가 고픈 모양이다. 의도대로 잘 되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15일 정도 된 거 같다.

둘 중 하나다.

숲이 더럽게 넓거나 우리가 일정 지역을 맴돌고 있거나.

최근 들어 뱀을 보긴 했다. 다만 머리가 뾰족했다.

내가 내기를 제안했다. 종목은 끝말잇기.

친구는 상당히 고민하긴 했지만 마지못해 응했다.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거 같다.

수월하게 이길 수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먹을 만 하다.

요 며칠 맷돼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건 긍정적인 소식이다.

맷돼지가 보이지 않는 건 그 놈들의 영역을

벗어났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최소한 우리가 한 지점을 맴도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물가는 아직인가. 물줄기가 내려가는 대로 내려 가기만 하면 되는데...

친구와 내기, 승리, 유쾌하지 않은 식사를 한번 더 했다.

이젠 그냥 좀 질긴 고무를 먹는 기분이다.

토끼도 버섯도 뱀도 보이지 않는다.

나무 열매... 포기했다. 식사는 어떻게든 하더라도

수분을 섭취할 방도가 마땅치 않은데 설사가 재발하면...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내천이다 !!

물을 잔뜩 마셨다.

물이란 게 이렇게나 맛있는 거였다니 !!

이제 내천을 따라 내려 가기만 하면 된다.

오래 걸려도 이틀 안엔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뭐, 어쩔 수 없나. 처음 내기를 한 이후로

줄 곧 생각 해보긴 했는데 마땅한 방법도 없고...

저 놈을 데려가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래, 어쩔 수 없지.

현실로 돌아왔다.

회사에서 욕을 좀 얻어먹긴 했지만 사정을 알게 되곤

그리 심하게 나무라진 않는다. 아예 나무라지 않는 건

아니지만... 뭐, 조난에서 벗어났으니 그 걸로 만족해야지...

역시 현대사회는 좋구나.

사람은 도시에 사는 게 맞아.

친구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는다.

뭐, 당연한 거지만.

앞으로 평생 안 마주했으면 좋겠는데...

* 컨텐츠 출처 : 작성자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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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마당 (5)

웝웝뿌워업

오 쩐다

추천

반대

답글

2024-01-21 03:25:09

No치킨No해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공포글을 작성한 건 처음인지라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을 지 조금 우려가 되긴 하는군요...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3

추천

반대

2024-01-21 08:49:39

neptunuse팬

친구와의 내기는… 진 사람의 신체 일부를 먹는건가요..?

추천

반대

답글

2024-06-20 13:26:27

neptunuse팬

제가 이해력이 떨어져서… 어렵기는 해도 재밌네요 해석 적어주시면 2배로 재밌을지도?

추천

반대

답글

2024-06-20 13:27:40

No치킨No해피

조난자는 말하는 이와 그의 친구인데 점점 갈수록 친구가 신음소리가 커지고 제대로 행동하지 못 하는 등을 단서로 달아 글을 적었던 기억이 나네요. 인육 걸고 내기하는 거 맞습니다. 이제와 읽어보니 제 글이 좀 불친절하긴 하네요. ^^

추천

반대

2024-06-22 07: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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