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붉은 노을 빛은
호수에 띄워진 꽃잎처럼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 뺨에도 붉은 물이 노을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쓰러진 등을 넘어 검은 것이 다가 오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후회했다.

노을이 지고 어두워 지기 전에 돌아갔어야 했는데..
발 밑이라도 제대로 봤어야 했는데.. 그깟 꽃이 뭐라고..
하지만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러니 저러니 죽는 건 똑같고
그 어두운 그림자는 나를 곧 삼킬 테니까..

그것은 붉은 혀로 내 뺨의 핏줄기를 핥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것은 곧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고통이 몰려왔지만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죽음인가.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온 세상이 검게 물들었지만 이상할치 만큼 따뜻했으니까.
죽음은 어둡고도 따뜻한 것이구나..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의미 없는 행동이겠지만.

그런데 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눈을 다시 뜨고 말았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한 쌍의 석류 알이 빛났고
검은 안개 속에서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처음에 봤던 그 기괴한 미소를..

그리고 그것은 기다란 붉은 혀를 낼름 거리고 있었고
그것이 내 입으로 들어왔다
목구멍까지 너무나 깊게 들어온 그것을 빼낼수가 없었다.
나는 발버둥쳤지만 그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기괴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계속 기다렸다.

"꿀꺽"

내가 무언가를 삼키는 소리를 내자 그제서야 나를 놔주었다.
그것은 그제서야 만족한듯 위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맞춰 위를 보니 하늘엔 달빛이 드리우고 있었다.

아.. 아직 죽은게 아니구나..
그리고 그것이 나를 놓는 순간부터 통증이 몰려왔다..
그것은 다시 웃으며 나를 감쌌다.

난 너무나 고통스러워 저항 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어둡고도 따뜻한 품에 난 다시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차가운 새벽 이슬이 나를 깨웠고
그것은 이미 떠나버린 것인지 꿈인지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꽃잎이 떨어진 꽃 한 송이가 있었을 뿐이였다.

그런데 그 꽃이 그토록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이였다.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높으신 분들이 찾았고
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숲속을 헤맨 것이다.

그날 밤 일은 그저 꿈이였던 것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두려움에 그 자리를 바로 떠났겠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옷에는 분명히 그 꽃처럼 붉은 빛이 물들어 있었지만
이상할 만큼 내 몸은 깨끗했으니까.
이 숲에 오기 전에부터 있던 상처와 흉터까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의 미소가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더이상 고민할 수 없었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가지 않는다면,
이 빌어먹을 꽃을 바치지 않으면
그분들이 절대로 가만 둘리가 없으니까..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 하던 숲속으로 도망칠까 고민도 했다.
그런데 혼자서 어떻게 이 숲속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차라리 밟히더라도 새장 속이 낫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아 질질 끌며 드디어 돌아왔다..

난 떨리는 손으로 꽃잎이 반쯤 떨어진 시든 것을 내밀었다.
바로 주먹이 날아왔고 난 그분들께 말그대로 밟히었다.
눈물이 나왔다.
그들이 바라던 대로, 그들이 두려워한 곳으로 가서,
그들이 원하던 것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미 반나절이 지났고 원하던 모양새가 아니라는
이유로 난 유린 당하였다.
처음으로 인정 받을 줄 알았는데 나의 큰 착각이였다.
아무것도 없던 내가 이곳을 낙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착각에 내 자신이 너무나 바보였던 것이다.

그것이 더욱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지금 찌를 듯하고 뼈가 부서질듯한 통증보다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속았고 그들의 욕심에 놀아난 것에 더욱이.

더이상 신음조차 내지 못할 때 그들은 그제서야 떠났다.

너무나 목이 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나도 모르게
나처럼 짓밟혀 곤죽이 되어 흩어진 꽃잎을 모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꿈속에서 본듯한 검은 미소와 붉은 혀가 떠올랐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목적지도 모른 채 발이 스스로 움직였다..

그렇게 정처없이 떠돌던 발걸음이 달빛을 따라가다가
모두가 두려워했고 외로웠던 검은 숲이
눈앞에 까마득하고도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더이상 걸을 힘조차도 없어 마지막으로 남을 힘을 짜내어
기어가기 시작했다..
따스한 곳을 그리워 하며 찾은 곳은 어디였을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카롭고도 흰 이빨을 드러내며
더욱 더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번에 그 꽃이 다발로 있었다.
난 한 손으로는 꽃다발을 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의 검은 털을 어루만졌다.

그는 그때처럼 내 뺨을 핥아주었고 난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가 어떻게 되었냐고? 나도 모르겠다.
그것보다 죽음이 과연 가장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이였을까?
그리고 그러한 두려움보다 그건 생각보다 따스한 것 아닐까?

그는 날 품었고 난 그를 받아들였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