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예빈이야. 너 어느학교에서 전학왔어?"

자리에 앉아마자 나에게 다가와 자기 소개를 한 애는 이름이 예빈이라고 했다.

"나? 성아여고."
"성아? 처음 들어보는데 멀리있나? 아무튼 너도 우리학교에 왔으니깐 내가 기본적인 학교정보를 알려줄게"

예빈이는 손에 들고있던 노트를 펼치며 왼손으로 안경을 한번 으쓱거렸다.

"우리학교는 일곱개의 미스터리가 있거든 지금 다 알려주기에는 시간이 없고 하나만 알려주면, 첫 번째는 목각인형 귀신이야."

나는 별로 관심이 있진 않았지만 전학 첫날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예빈이를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았다.

"목각인형 귀신?"

손을 입에 가져다대며 최대한 무섭고 놀란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빈이는 상기된 표정으로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응 목각인형 귀신이 뭐냐면 우리학교가 4층건물이자나. 건물 동편 끝에 비상계단이 있거든. 근데 거기서 학교 폭력이 있었던 거야. 근데 피해자가 괴롭힘을 당하다가 그만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어. 그때 뼈가 부러진건지 팔다리 관절이 원래 굽혀지는 방향과 반대로 꺽여진채 죽은거야. 마치 목각인형처럼. 그 뒤로 계단은 패쇄 되었지. 근데 밤이 되면 죽은 애가 귀신이 되어서 계단을 오른다는 거야. 죽은 모습 그대로... 그래서 목각인형 귀신이라고 불러."

"야 그런 얘기는 어디서 주워 들은 거야?"

옆 분단에 앉아 있던 예쁘장한 애가 처음 들어본 듯 퉁명스럽게 턱을 괴고서 물어보았다.

"내가 초자연현상연구부 회장이잖아. 졸업선배님들이 모아둔 자료에서 발견했지. 여튼 나머지 여섯 개도 궁금하다면 초자연현상연구부에 들어와. 그럼 나중에 점심때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이따 봐"

수업종이 울리자 예빈이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목각인형 귀신이라... 첫날부터 재미있네'

전학 첫날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전학교와 진도가 달라 따라가기 바빴다. 당분간은 적응하느라 힘들 것 같다. 예빈이와 주효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주효는 아까 퉁명스럽게 물어보던 옆분단 애다. 하루만에 친구가 두명이나 생겼다.

"매점갔다가 4층 동편 고?"

주효는 아까 들은 목각인형귀신이야기가 재미있었나보다.

"오케이 고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동편 4층복도 끝에 도착했다.

-공사중 관계자외 출입금지-

동편끝 복도에는 공사중 표시와 푯말이 비상계단문을 막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교환을 잠시한후 고개를 끄덕였다. 주효가 앞장서 푯말을 넘어 비상구 문을 열려는 순간.

"이자슥들아! 거기서 무하냐?

복도끝 교실문이 열리며 선생님 한분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황급히 도망치며 소리 질렀다.

"야! 느그들 몇학년 몇반이야!“

”죄송합니다!“

운동장까지 정신없이 달렸다. 운동장에 도착해서 선생님이 쫓아 오지 않는 걸 확인하자 웃음 터졌다. 그렇게 일주일은 4층 동편 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주효가 이틀째 학교에 오지 않는다.

전화도 카톡도 모두 연락두절. 담임선생님도 연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주효는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다. 돌아가신건지 따로 사는건지는 묻지 않았다. 선생님께 주소를 얻어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학교를 마치고 찾아간 주소는 어느 빌라의 반지하였다. 주효집은 급하게 이사를 한 듯 짐 대부분이 버려져 있었고 부서져 있었다.

"기집애. 이사가면 간다고 말이라도 해주지"

예빈이는 아쉬움과 배신감 사이의 감정을 쏟아내며 세 명이 있는 단톡방에 쉴세 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아쉬움을 담아 이사는 잘 갔는지 여유 생기면 연락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끝내 1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 예빈이와 만나 함께 등교했다. 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구급차와 경찰차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예빈이와 나도 급하게 학교로 뛰어갔다.

'누가 다친걸까?'

학교 안은 이미 많은 학생들이 나와 학교 동편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뭐야? 뭔 일이야?"

예빈이가 앞에 있는 무리에게 말을 걸었다.

"몰라 누가 119에 신고했다던데?"

"꺄아악!"

앞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려왔다. 뒤돌아 도망가는 애들 뒤편으로 선생님과 경찰들이 학생들을 물러나게 하고 있었다.

"교실로 다 들어가!"

남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통솔하며 교실로 들여보냈다. 경찰들은 서둘러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있었다. 혼란한 틈에 예빈이는 경찰과 선생님을 뚫고 폴리스라인을 넘어갔다. 나도 예빈이를 따라 더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거기에는 철제 계단 난간대 사이에 팔과 다리가 끼어 기괴한방향으로 꺾인채 주효가 죽어있었다. 예빈이가 털썩 주저앉으며 들리듯 말듯 혼잣말을 했다.

"목...목각인형"




다음날 학교는 예정보다 일주일 빨리 여름방학을 시작한다고 했다. 방학식도 없고 학교는 전면 출입금지가 되었다.

‘내일 학교에 가봐야 될거 같아. 같이 갈래?’

예빈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선뜻 같이 가자고 보내지 못했다. 계단에서 본 주효의 모습이 아직 눈에 맺혀 있는거 같다.

‘안 와도 괜찮아. 일단 말은 해놓는거야. 내일 선생님들 없는 6시쯤 갈 듯. 동아리실에 목각인형귀신에 대한 다이어리를 본거 같아. 그거 찾으러 감.’

사실 학교에 초자연현상연구부는 없다. 예빈이 혼자뿐이라 동아리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동아리실이라고 말하는 곳도 학생이 줄어들며 비어있는 교실을 창고처럼 사용하던 곳이다. 가끔 주효와 예빈이랑 몰래 숨어들어 학교의 비밀을 밝히겠다며 이것 저것 찾아 다녔었다.

‘나도 감’

‘그럼 6시까지 학교앞으로 와’

5시 50분쯤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앞을 서성이며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멀리서 예빈이가 엄청난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가방은 뭐야?”

“혹시 몰라서. 아직 학교에 누가 있나보네. 밥 먹었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분식집이나 갈까?”

분식집에 앉아서 앞으로 계획을 얘기했다.

“일단 우리는 주효가 왜 죽었는지 밝혀야해. 진짜 목각인형 귀신 짓인지 아니면 누군가 흉내낸걸 수도 있잖아. 만약에 주효가 억울하게 죽은거면 우리가 억울함을 풀어줘야지.”

예빈이는 말없이 당찬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주효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꼭 밝혀 낼거다. 7시가 넘어가자 학교에 모든 불이 꺼졌다. 우리는 닫힌 정문을 몰래 넘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예빈이는 매고 왔던 커다란 가방을 열었다. 가방안에서 십자가가 달린 모자와 마늘로 만든 목걸이를 꺼내 나에게 씌워줬다.

“혹시 몰라서. 혹시 몰라서”

라며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나를 달래었다. 그리고 예빈이 자신도 십자가 모자와 마늘목걸이를 둘렀다.

불꺼진 학교 안은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아 어둡지 않았다. 다만 고요한 적막 속 나와 예빈이의 발소리가 음산함만을 더해 주었다. 동아리실은 2층에 있다. 동아리실에 먼저 도착한 나는 문을 조심스레 열었지만 잠겨있었다.

“잠겼어.”

“있어봐. 두 번째였나. 세 번째였나.”

예빈이는 복도 창문을 순서대로 확인했다.

“찾았다.”

창문을 몇 번 흔들더니 드르륵하고 열었다. 창문으로 겨우 들어간 동아실은 교실 두 개를 터서 만든 창고였다. 우리는 흩어져서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찾았다. 쓰다버린 각종 미술도구, 찢으진 북, 축구골대 그물, 예전에 사용하던 교과서와 도서관에서 폐기한 책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뒤엉켜있었다.

“여기서 본거 맞아?”

“맞아. 다이어리같은거였는데...”

한참을 찾았지만 딱히 눈에 뛰는 것은 없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학교도 어둑어둑해졌다.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구석에 있는 오래된 책꽂이에 꽂혀 있는 낡은 교과서 사이로 핑크색 다이어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꺼내어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201X년 3월 14일
친구가 없다. 소심한 내 성격이 싫다. 이러다 졸업할때까지 아무도 못 사귀면 어쩌지?

201X년 4월 17일
친구들이 생겼다. 나에게 잘 대해준다. 정말 잘 지내고싶다.

201X년 4월 18일
처음으로 담배를 펴봤다. 친구들은 점심시간이 끝나면 동편 비상계단에 항상 모였다. 나도 펴보라길래 도전해봤다. 기침하는 나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래도 친구들이 웃어 주니 좋아.

201X년 5월 19일
괴롭힘이 점점 심해진다. 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얘네들 마저 날 버리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야.

201X년 5월 22일
담배를 피다 기침을 했는데 침이 튀었다고 계단에서 나를 밀었다. 넘어지면서 팔이 비틀리고 부러졌다. 다리도 부러진거 같다. 친구들은 나를 보며 비웃더니 그냥 돌아갔다. 얘들아 나 숨이 안쉬어져. 죽을거 같아.

2023년 4월 25일
전학생이 왔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다가가 봐야지. 우리 우정 영원하자. 지영아. 주효야.


다이어리를 천천히 닫고 조심스레 뒤를 돌아봤다. 예빈이는 반대편을 찾고 있었다.

“찾았어?”

몸은 고정된채로 천천히 예빈이의 고개가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리고 예빈이 옆에는 끈이 풀려버린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축쳐져 죽었던 주효가 몸을 일으켰다. 주효의 눈에는 붉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선반을 힘껏 밀어 넘어뜨리고 뒷문으로 뛰었다, 뒷문의 잠금장치를 돌려 문을 열고 달렸다. 창문을 깨뜨리며 예빈이와 주효가 뒤쫓아 왔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기괴한 모양으로 양손과 발을 이용해 커다란 거미처럼 움직이며 달려왔다. 계단으로 뛰어 1층으로 내려왔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나가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2층이었다. 다시 계단으로 내려갔다. 또 2층이었다. 학교에 갇혔다.

“지영아 이제 우리 영원히 함께하는거야, 너도 좋지?”

계단으로 나를 내려보는 예빈이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을 찾아야해.’

복도를 무작정 뛰어 다니며 교실을 둘러보다 숙직실을 발견했다. 다행히 열려있었다. 얼른 들어가 문을 잠그고 쓸만한 것들을 찾았다. 라이터, 버너, 벌레살충제 등등이 보였다. 중학교때 남자아이들이 벌레살충제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장난치던게 떠올랐다.

‘이걸로 될까?’

쾅! 쾅! 우지직!

숙직실 문이 부서지며 예빈이와 주효가 문틈 사이로 앞다퉈 들어오려고 했다. 버너안의 부탄가스를 꺼내 모서리에 힘껏 내리쳤다. 손이 부들부들 떨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제발!!”

다시 한번 힘껏 내리쳤다. 모서리에 부딪힌 부탄가스가 찢어지며 가스가 세어나왔다. 문을 향해 가스통을 던지고 라이터에 불을 킨채 벌레 살충제를 발사했다.

펑! 소리와 함께 주효 몸에 불이 붙었다. 주효가 뒤로 물러서자 예빈이가 문을 부수며 들어왔다.

“지영아 우리 친구잖아 왜 도망치는거야?”

“저리꺼져!”

남아있던 부탄가스를 던졌다. 예빈이는 손쉽게 손으로 쳐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끝일까? 그때 예빈이 뒤에서 몸에 불이 붙은 주효가 예빈이를 끌어안아 붙잡았다. 주효의 팔이 예빈이의 팔을, 주효의 발이 예빈이의 발을 얽어들어갔다.

‘얼른 도망가’

주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둘을 뿌리치고 숙직실을 빠져나와 도망쳤다.

“강지영! 어딜 도망가! 넌 벗어날 수 없어!”

등뒤로 예빈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다시 동아리실로 들어가 다이어리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번져가는 불길속으로 다이어리를 던졌다. 나는 무사히 학교 밖으로 빠져 나왔다. 학교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잠시뒤 소방차들이 학교에 도착했다.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마치 학교 전체를 태워 없애고 싶어하는 거 같았다. 나는 운동장에 앉아 불타는 학교를 멍하니 바라봤다.

“학생, 학교에 왜 불이 난거야? 학생이 불낸건 아니지?”

“네... 제가 불냈어요...”

같이 도착한 경찰들이 화들짝 놀랐다. 경찰들과 함께 경찰서에 도착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학생. 학교에서는 아무런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어. 죽은 주효학생의 시체는 부검 때문에 서울에 있는게 확인 되었고, 예빈이 학생은 집에서 쉬고 있다고 연락왔어. 그리고 예빈이는 학생반이 아니라 옆옆반이야.”

“그럼 제가 만났던 예빈이는 누구죠?”

경찰은 나에게 옆옆반이라는 예빈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가 알던 예빈이가 아니었다. 휴대폰을 확인해봤다. 셋이 있던 단톡방은 어느새 주효와 나 둘뿐이었다. 예빈이는 아니 목각인형 귀신은 사라진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