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처음으로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기념으로 중고차도 한대 샀습니다. 첫 직장, 첫 차를 기념해서 친구들과 술 자리를 가졌습니다. 차를 가져왔기에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지만 친구들의 짓궂은 도발에 소주 두잔을 마셨습니다.

술자리가 끝나고 대리를 부를까 하다가 설마 소주두잔인데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집까지는 30분 거리였습니다. 반정도 왔을까요? 음주운전 검문하는 경찰들이 보였습니다. 이제 막 취업했는데 혹시라도 잘못될 수 있다는 걱정에 집까지 조금 돌아가게 되는 산길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산길은 꼬불 꼬불 하기도 했도 가로등도 몇 없는 어두컴컴한 길입니다. 자주 다니는 길은 아니었지만 어릴때부터 살던 동네라 무섭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산 정상부근에 다달았을때 빨리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때문인지 평소보다 엑셀을 조금 세게 밟았습니다. 순간 무언가 차앞으로 돌진 했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쿵 소리가 났습니다.

차마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사람을 친건가라는 두려움과 술을 마셨다는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천천히 차문을 열고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범퍼를 확인했습니다. 멀쩡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휴대폰 손전등으로 여기저기 비춰 보았지만 어떤 흔적도 안 보였습니다. 술기운에 헛것을 본건가싶은 생각도 들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차에 올라타 크게 숨을 내뱉고 다시 출발하려다 문득 낡은 건물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 호텔이 있었나?'

다 꺼진 네온사인 사이로 불 들어온 H글자 하나가 호텔인걸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술은 다 깻지만 호텔에서 자고 가기로 정했습니다. 더이상 맘졸이기 싫었습니다.

호텔에 들어가 카운터앞에 섰습니다. 카운터에는 옛날 학교에서나 보던 교탁종이 있었습니다. 땡 땡 땡 종을 울리자 안 쪽에서 여자 한분이 나왔습니다.

"오서오십시요. 체크인 하시겠습니까?"

"네, 어...내일 아침까지만 있을겁니다."

"네 그럼 여기 체크 리스트만 작성해 주십시요"

여자는 조그만한 종이를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조식을 드시겠습니까?（예/아니요）

-룸 서비스는 미리 말씀해주셔야합니다. 룸 서비스를 이용하시겠습니까?（예/아니요）

여러가지 리스트를 대충 훑어보며 아니요에 체크를 하다가 흠칫 놀랐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죽인적이 있습니까?（예）

당혹스러움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종이를 쳐다보았습니다.

-당신이 내 딸 죽였잖아

놀라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종이를 던져버리고 몇걸음 물러섰습니다. 카운터에 다시 나타난 여자손에는 커다란 식칼이 들려있었습니다.

"니가 우리딸 죽였지!"

여자는 칼을 휘두르며 저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휘두르는 칼을 가까스로 피하고 호텔 문을 향해 달렸습니다. 호텔문에 몸 던져봤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힘껏 당겨봐도 밀어봐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호텔이 저를 못나가게 막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딸 죽여 놓고 어딜 도망갈려고 해!"

"무슨 소리에요. 저 사람 죽인적 없어요."

"그럼 니 손에 칼은 뭐야"

어느새 식칼은 제 손에 들려있었고 호텔로비 가운데에 흰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피범벅이된 체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내가 죽인게 아니에요."

"너가 죽였어. 내가 봤어. 분명히 너야."

"아냐! 진짜 아냐!"

손에 든 칼을 던지고 호텔안으로 도망쳤습니다. 모든 문은 닫혀있었고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습니다. 결국 옥상에 도착했습니다. 더이상 도망칠수도 없어 구석으로 구석으로 몰렸습니다. 여자는 천천히 저를 옥죄어 왔습니다. 저는 울음이 터졌습니다.

"진짜 저 한테 왜 그러세요."

"니가 내딸 죽였어."

"저 아니라구요."

여자는 제게 달려와 손에든 식칼로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리고 저는 옥상에서 떨어졌습니다.



정신을 차리니 차안이었습니다. 꿈이었을까요? 가슴이 욱씬거려 옷을 들추니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칼에 찔렸던 위치였습니다. 차가 멈추면서 핸들에 가슴을 부딪히고 기절했었나 봅니다.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차문을 열고 내렸습니다. 차는 호텔에 오기전 멈췄던 사고장소에 있었습니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 갔습니다. 거기에는 백구 한마리가 죽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짓이 조금 더 큰 다른 백구 한마리가 연신 죽은 개를 핥고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꿈에 나타난 모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죽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미로 보이는 백구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습니다. 백구는 도망가지도 달려들지도 않고 그자리에 서서 저를 빤히 쳐다만 봤습니다.

경찰에 사고가 났다고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생각보다 금방 왔습니다. 음주측정을 했고 다행히 훈방조치되었습니다. 사고 현장을 둘러본 경찰은 단순 로드킬이라 사건접수는 따로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사체는 구청에 전화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혹시 제가 직접 묻어 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디에 묻으실려구요? 산에 묻는 것은 불법입니다."

"아... 안될까요?"

"흠...원래는 안되는데 크기도 고라니처럼 안 크고... 알아서 하십시요. 그럼 그렇게 알고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경찰이 떠나고 개 사체를 길 가장자리로 옮겨두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서 삽과 포대자루를 구해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고현장에 돌아와 사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위치가 틀렸나 싶어 차를 타고 천천히 주변을 훑으며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꿈에서 본 호텔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옥상에는 죽은 백구를 끌어 안은 카운터의 그 여자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다시 사과의 인사를 했습니다. 미안함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정말 죄송하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때는 호텔도 여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정말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 뒤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용서받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