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은 언제나처럼 똑같은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시간에 몸을 벌벌 떨면서 나약한 자신을 안전하게 숨겨줄 쥐구멍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검은 열차의 승무원은 오늘도 당신을 찾기 위해 이토록 이슥한 밤 시간에 시끄러운 굉음을 울리며 복잡하게 뒤얽힌 사거리 교차로를 무성의하지만 난폭하게 지나간다. 언제부터인진 몰라도 저 검은 열차가 당신을 태우기 위해 이 동네 이곳저곳을 미친듯이 내달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부여잡을 수 있는 증거는 없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직감이라 함은 주관적인지라 틀릴 수도 있지만, 오답에 대한 관대한 자세는 자칫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직감이 옳았다면 당신은 저 검은 열차의 으슥한 좌석 한 구석에 포박당해 더 이상 이승이라 할 수없는, 당신 상상력 안에서 지옥이라 일컬을 만한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길은 오르막길에서 내리막길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당신은 오르막길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리막길을 뛰어내려가며 숨을 내뱉는다. 규칙적인 호흡 사이로 밀려드는 차디찬 한기는 사뭇 죽음이 가까워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저 차가움의 기운이 이토록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신은 이미 상당히 지쳤다는 것이다. 검은 열차의 승무원은 비뚤어진 간판들이 양쪽에 즐비한 도로 한복판에서 그 무서운 굉음을 분노를 담아 터뜨려댄다. 그 소리를 들은 당신은 두려움에 겨워 경악의 탄성을 내지르고 절망적으로 언덕길에서 굴러 떨어진다. 당신은 굴러 떨어지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미친 듯이 몸의 중심을 일으켜 세우려 한다. 그 때 악취가 날 듯한 물푸레나무 밑에서 한 번도 본적없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만큼 사람인지 괴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기괴한 실루엣을 목격한다.

실루엣도 당신을 알아보았는지 짐짓 몸동작을 당신 쪽으로 흔들더니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킨다. 어둠 속에서 짙은 안개때문에 시야가 막혀있어 그 쪽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 수없지만서도 당신은 일단 속는 셈치고 그쪽으로 뜀박질해간다. 검은 열차의 승무원은 분노의 기적소리를 토해내며 승객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승객들은 무표정하게 앞을 바라보며 아무 감정도 표현하지 않는다. 검은 열차의 승무원은 승객 한 명을 지목해 미탑승객을 쫓도록 지시한다. 지목당한 승객 A씨는 짐짓 화를 내며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냅다 뛰쳐나간다. 당신은 어디선가 창문이 깨지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당신 앞쪽에서 난 소리인지 뒤에서 난 소리인지 분간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이쪽 방향에 열차가 없기를 믿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신에게 빌며 더욱 세차게 달려나간다.

승객 A씨는 어둠과 안개가 뒤섞인 낡아빠진 빌라 앞에서 꾸깃꾸깃해진 어둠의 한 부분을 보며 검은 열차에 탑승할 때 승무원에게서 절망스럽게 하사받은 붉은 호루라기를 세차게 불어대면서 당신을 향해 뛰어간다. 당신은 신을 믿은 적이 없는 자신이 옳았음을 문득 느끼며 호루라기가 자신의 심장을 조이고 발이 늪 속에 빠진 듯 질퍼덕거리게 만들었음을 알고 공포에 경악한다. 승객 A씨는 이제 거의 당신에게 다다랐고 당신이 입고 있는 비루한 긴 체크무늬 남방 뒷덜미를 잡아채기 직전이다.

그 때 안개가 잠시 흩어지더니 완전한 암흑이 되고 그 암흑 속에서 약간 밝은 아까 물푸레나무 밑에서 보았던 실루엣이 승객 A씨를 감싸고 포박해버린다. 당신은 도대체 저 실루엣이 무엇인지 도저히 파악할 수없지만 어쨌든 내심으로 무척 고마워하며 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한 심장으로 다시 가벼워진 다리를 움직여 미친듯이 승객A씨와 붉은 호루라기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다. 저 실루엣은 왜 당신을 도와주는지 당신은 결코 알 수없을 테지만 일단은 고마워하며 정신없이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잔잔한 호수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면 온 호수가 진동하듯, 당신의 머리 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당신의 정신을 뒤흔들어놓는다.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 거지?'
당신은 검은 열차로부터 도망은 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지, 드디어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중요하며 당신의 뜀박질에 유일하게 의미를 부여해줄 질문을 떠올린다. 어디로 가야 검은 열차의 승무원은 감정 없는 눈의 시야에서 완전히 도망칠 수 있을까. 당신은 달리면서 생각해보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리 생각한다해도 당신은 답을 찾아내지 못할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일단은 달려보지만, 인간에겐 엄연히 체력의 한계라는 것이 있다. 당신은 곧 숨이 차오를 것이며 이 달리기도 곧 중지해버릴 거라는 걸 알아차린다. '힘들어. 이제는 정말 어디로 갈지 생각해야만해.' 어디로 갈지 정한다는 것은 이제 당신에게 유일한 사고거리가 되었고, 체력이 바닥나기 전에 어서 결정을 내려 그쪽으로 달려가야한다.

검은 열차의 승무원은 물푸레나무 실루엣이 승객 A씨를 포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둘을 열차장에게 보고한다. 열차장은 큼직한 몸둥어리를 이리저리 뒤흔들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열차에서 내린다. 그러고선 성큼성큼 실루엣에게 다가가 거친 손아귀로 움켜잡는다. 그 때 실루엣은 승객 A씨의 입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버리고 승객 A씨의 몸은 일순간 정전되듯 주변의 암흑과 완전히 동화화듯 분별이 되지 않아지고 검은 투명인간이 되고 차장의 턱을 주먹을 냅다 후려쳐버린다. 차장은 그 타격의 강도와는 무관하게 일순간 당황하여 검은 승객 A씨를 놓쳐버리고 암흑 속에서 그 둘인듯한 하나를 놓쳐버리고 만다.
차장은 괜히 승무원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더욱 거칠게 굉음을 내며 열차를 몰기 시작한다.

당신은 열차의 기적소리를 어렴풋이 듣고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이번에 확실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당신은 드디어 가야할 방향과 장소를 정한 것이다.

2.

병신.

당신이 일상에서 지겹도록 듣고 귀에 딱지를 만들게 한 단어이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택배상자들은 당신을 압사시킬듯하고 텅 비어버린 멍텅구리 잔고는 휑한 당신의 마음만큼이나 공허하다. 짓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일상 속에 당신이 바란 것은 단 한가지였다. 단 한가지가 무엇인지는 승객 보호정책상 밝힐 수 없다. 다만, 당신은 인생의 평균치를 매기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친절히 정해놓은, 여러 기준들을 포기한 당신에게 돈은 비록 자본적 생존을 위해 필요불가결하지만 단 한가지가 필요하다면 돈이라고 말할 만큼 중요치를 가지진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바랬던 걸까. 도대체 무엇을 입 밖으로 꺼내었길래 이 저주스럽고 무지막지한 검은 열차가 당신을 추격하는 것일까. 저주받은 소원은 저주를 불렀고 검은 열차의 탑승권을 당신은 발행받았다. 바로 그 저주스러운 소원이 삯이었다. 승무원의 임무는 강제로라도 탑승권을 발급받은 자를 태우고 목적지인 이 세상 끝에 데려가 당신의 소원을 큰 존재들 앞에서 검토받게하고 합당하다면 이뤄주고 부당하다면 당신을 퇴정조치하는 것이다.

칠흑이 세상을 감싼 시간에 검은 열차의 승무원은 당신의 삐걱대고 낡고 녹슨 현관문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해 폐기처분 직전의 소파 위에서 널브러져 자고 있는 당신에게 한기를 불어넣고 일으켜세운 뒤, 열차의 탑승권과 앞으로의 행로에 대해 간략하지만 장황하게 설명한다. 당신의 눈동자는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깜짝 놀란 것이 아닌 사뭇 멍청해보이는 표정을 짓고 짐짓 다시 누우려 한다. 꿈인줄 알고 말이다. 그 때 승무원은 자신의 예민함을 곧바로 드러낸다. 붉은 호루라기를 귀에 대고 힘차게 불어댄다. 당신의 심장이 조여들고 죽음의 공포가 눈 앞에 다가온다. 꿈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위험이 도래했음을 직감하고 당신은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묻는다.

"도대체 언제 소원을 빌었죠? 전 하루종일 일만 하다 지금 방금 막 집에 들어왔는데요..."

승무원은 더 이상 자신을 자극하지 않기를 바라며 날카로운 눈으로 당신을 뚫어지게 쳐다본 뒤 머뭇거리지만 그래도 친절히 설명해준다.

"5년 즉, 1825일 동안 빠짐없이 그 소원을 빌어댔잖습니까. 당신의 5년동안의 간절한 마음과 소원이 탑승권의 삯입니다. 물론 자동적으로 저희가 처리했습디만."

황당한 설명에 당신은 넋이 나갈듯하고 무엇보다 그 잔인하고 단호한 퇴정조치에 대해 듣고 당신은 달아나야 한다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파란 깃을 턱끝까지 세운 낡은 파란색 제복에, 눈은 보일 듯 말 듯한 노란빛 고양이 눈동자를 빛내고 있는 이 승무원을 실제의 존재로 받아들인 이상 무조건 달아나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당신은 짐짓 고개를 숙여 갑자기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다. 파란 제복의 승무원은 이같은 승객이 처음이 아닌 듯 대뜸 피식 웃더니 그의 머리 위로 그리고 귀에다 입을 대고 한 마디만 해주려 한다. 그 때 승무원의 턱이 당신의 머리 바로 위에 위치한 순간 당신은 무언가에 깜짝 놀란 듯 번개처럼 고개를 위로 휙 처들어버린다.

"...!"

승무원은 예상치 못한 순간엔 좀전 현관문을 무시해버린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 턱을 강타당하고 뒤로 텅하고 나자빠져버린다. 당신은 파란 제복에서 튀어나온 호루라기를 빼앗아 입에 불고 세차게 불어버린다. 그 때 당신은 자신의 심장 또한 조여드는 것을 느끼며 호루라기를 냅다 구석으로 던져버리고 도망쳐버린다. 검은 승무원은 쥐죽은 듯 누워있다.

그렇게 당신은 여기까지 도망쳐 온 것이다. 물푸레나무의 실루엣은 무엇일지 모르겠지만 당신에게 도움을 주었으니 당신에게는 신이고 천사고 정령이다. 당신은 결정을 내렸다. 저 검은 열차와 승무원은 당신에게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이고 실재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열차를 가로막는 지상건물과 지하건물 등을 모조리 다 통과해버린다. 그렇다면 당신은 물리적으로도 비물리적으로도 결코 도망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다. 열차가 승객을 태울 수 없는 경우는 바로 승객의 죽음으로 인한 탑승권 무효처리이다. 당신은 그냥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 매우 복잡하고 매우 합리적인 사고회로를 통해 도출해낸 결론이다. 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열차에게서 도망칠 순 없다. 그렇다면 죽어야 한다. 물론 여기서 당신은 희망을 가진다. 이 희망은 당신을 지금까지 살게해준 직감에 기반한 것이라 사상누각과 다름없지만, 그 희망이란 운행중인 열차에 의해 승객이 죽는다면 그 열차는 당신을 탑승시킬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탑승권을 발급받았음에도 당사의 책임소재로 그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으므로 전액상환해줘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목숨까지도 말이다. 물론 희망이다. 희망적인 주관이고 주관적인 희망이지만 지금은 이것밖에 없다.

당신의 좁은 집 안에서 그 승무원을 기절시켰던 것을 떠올리고 당신은 그 열차와 승무원이 똑같은 성질을 가졌을 것이라 추론한다. 즉,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물리적 충돌은 무효화할 수 없다. 이 성질에 당신은 당신의 목숨을 역설적으로 걸어보고자 한다. 이 난폭하게 굉음을 내지르며 달려가는 열차에 뛰어드는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말이다.

당신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시간을 벌어준 그 실루엣에게 다시 한번 감사해하고 이상하게 커져버린 듯한, 내 몸까지도 덮어주는 전봇대 뒤에 몸을 숨긴다. 어차피 저 열차는 무조건 당신의 뒤를 쫓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숨죽이고 기다려본다.

차장은 이상한 빛을 띠고 누리끼리한 침을 튀기며 파란 제복의 승무원에게 고객명단에 대가리를 박고 당신이란 쥐새끼가 어디쯤있는지 확인할 것을 지시한다. 승무원은 짜증스레 고객명단을 확인하고 차장에게 직진과 좌우회전을 번갈아 가며 말하고 곧 당도할 것이라 말한다. 차장은 이 쥐새끼의 팔을 하나쯤은 뜯어도 큰 존재들에게 아무 피해도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그 때 갑자기 검은 물체 하나가 덩치 큰 차장과 파란 제복의 고양이 눈빛을 한 승무원도 예상치 못하게 툭하고 튀어나온다.

텅.

차장은 당황한다. 승무원은 재빨리 열차에서 뛰어내려 열차 앞으로 달려간다. 실루엣이자 승객 A씨는 열차 위에서 낄낄거리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기 시작한다. 차장은 그 실루엣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냥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앞칸의 문을 박살내고 멍청하게 서있는 승무원의 옆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당신은 완전히 기절한 것을 넘어 완벽하게 죽은 듯하다.

"하...이 쥐새끼가 대가리를 굴렸군."

승무원은 이 차장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살짝 행복해하지만 내색하진 않고 말을 이어간다.

"차장님 이같은 경우는 우리 정책상 유일하게 탑승권 무효처리를 하는 것이..."

"나도 아니까 닥쳐."

승무원은 오늘도 차장의 멍청하게 흔들리는 엉덩이를 걷어차고픈 마음을 애써 누르고 당신한테 다가간다.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아까 당신의 집에서 당신이 꾀를 내어 머리를 숙였을 때 친절하게 귀에다 대고 말해주려했던 말을 해준다. 물론 뒷문장까진 말해주려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탑승권은 무효처리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무조건 열차에 탑승해서 이 세상 끝까지 간 뒤에 당신의 소원을 검토받아야 합니다. 음...하지만...무효처리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 열차에...치여 사망하였을 경우에만."

그리고 10x10 사이즈의 낡은 붉은 색을 띤 1825 열차 탑승권을 당신의 입 안에 넣고 목 끝까지 밀어넣는다.

그러고선 승무원은 호루라기를 힘차게 분다.









"...?"

당신은 당신의 소파에서 일어난다. 아침인 것이다. 해가 뜨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버스가 지나가고 새가 지저귀기 때문에 아침인 것이 아니라, 살아움직이고 심장박동이 느껴지고 눈을 뜰 수 있기에 아침인 그런 아침인 것이다. 당신은 간밤의 추격전의 기억이 아주 또렷이 남아있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의 거울 앞에 똑바로 서본다.

"뭐였지...도대체..."

당신은 절망스러운 추격전에서 살아난 것이다. 죽음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