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기야.”

가마영감은 언제나 그렇게 서두를 떼었었다.

“암만 발악을 해봐야 해 뜨는 기는 막을 수가 없는기지. 그니께 우리 같은 불쏘시개들은 가만히. 으이? 그냥 가만히. 내는 기냥 돌인기라~ 하면서 살아야제.”

그 말대로 가마영감은 싫은 소리 한번 없이 40년 가까이 불가마 앞에서 불을 지펴 시체를 태웠다.

제대로 된 염이 아닌 쓸모없어진 시체 조각을 처리하기 위한 소각.

“내가 소싯적 맨주먹으로 일어나가 이 건설 업계으 큰손이 되기까정 말 못할 고난과 역경..”

뒤이은 말 역시 언제나 똑같았다.

한때는 중장비를 몇 대나 가진 건설업체 사장이었다는 가마영감이

어떻게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어떻게 사장 자리를 빼앗겼으며,

어쩌다 이렇게 조폭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는지는 이미 일 년 내내 들었기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겨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혼자 불을 지피며 영감이 해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되뇌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영감과는 달리,

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도무지 납득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염병.... 건달 새끼들 뒤나 봐주려고 이제껏 그 지랄을 해댔나...”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열심히 산 기억은 없다.

그냥 적당히 놀다가 적당히 먹고살길 바랐을 뿐.

하지만 슬슬 내 미래에 불안감을 느낄 때쯤,

노름꾼 아버지 덕에 이리 어이없이 진로가 정해져 버린 것이다.

날 이 가마골에 끌고 온 떡대 실장은 내게 말했다.

‘이제부터 이 가마골이 네 집이고. 저 가마영감이 네 아버지다.

영감한테 기술 잘 배워. 영감이 죽으면 너 혼자 해야 하니까.’

그날 이후 난 가마골 가마영감의 아들 부지깽이가 되었다.

“어이 부지깽이!”

날 부르는 목소리에 다급히 몸을 돌려 울타리 문을 열었다.

부지깽이란 이름은 가마영감이 죽고 나서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봐야 날 부르는 사람이라곤 이 떡대를 포함한 몇 명 뿐이었다.

“실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수레 가져와. 오늘은 좀 많아.”

다급히 수레를 끌고 실장이 끌고 온 승합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다섯!

비닐에 칭칭 감긴 피투성이 고깃덩이가 다섯.

익숙한 손짓으로 짐을 꺼내 차곡차곡 쌓는 동안 실장은 담배를 태우며 가마를 훑어봤다.

“여태 다 못 태웠어?”

“그게 마지막입니다!”

실장은 못마땅하다는 듯 날 삐딱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밀리지 마라. 시체 쌓아놓고 있는 거 혹여나 누가 보면 감당 안 된다.”

“그럼요. 잘 알죠. 문제없이 처리 하겠습니다.”

굽신거리며 시체를 옮기고 있는 내 꼴이 한심스러웠지만, 지금으로선 별 방도가 없었다.

“요새 공급이 괜찮아서 계속 나올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까딱 잘못하면 다음에 가마 속에 처넣어지는 건 너야. 명심해.”

결국 실장이 돌아갈 때까지 노비마냥 굽신거린 뒤에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하...나 저 돼지 새끼가...”

한차례 소심한 욕을 퍼부어 주고는 가마를 살폈다.

꼴을 보니 슬슬 끝나가는 듯하니 일단 하나는 미리 꺼내서 작업해 놓고

나머지는 냉동창고에 넣어놓으면 될 것 같았다.

맨 위에 있던 시체를 꺼내어 작업대 위에 올렸다.

칼을 들고 비닐을 벗겨내려던 나는 문득 손을 멈추고는 한숨을 쉬었다.

또 다, 다시금 이 빌어먹을 상황에 대한 말 못 할 혐오감이 온몸을 기어 다녔다.

이런 짓을 해도 될지,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할지, 도망칠 수는 없을지.

수백 번이나 해왔던 생각들을 다시금 밟아보고는 마지막에 가서 가마영감의 말을 떠올리며 생각을 갈무리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내가 발악해봐야 바뀌는 건 없다. 그저 더 나빠지기만 할 뿐.

잡생각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자.

이게 내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자.

그렇게 생각을 하며 비닐을 벗겨내었다.

“어?”

인상을 쓰며 시체를 마주했지만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여기에 들어오는 시체라고 하면

눈이며 장기며 쓸모 있는 것들은 전부 뽑힌 이른바 통나무 상태였기에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칼 댄 흔적도 없고 안구도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잠든 듯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은 상당한 외모였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형태를 갖춘 여자의 모습을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가만히. 그저 가만히 여자를 내려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가마를 살폈다.

이미 다 끝났으니 서둘러 시체를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 귀하다 할 수 있는 여자를 불태우자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에 급히 안아 들고는 냉동창고에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펼쳐낸 다른 시체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엉망으로 망가진 상태였다.

그 덕에 주저 없이 가마 속에 밀어 넣을 수 있었다.




“여기 온 지 이제 7년밖에 안 되었거든? 근데 벌써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아.

그냥 태어날 때부터 부지깽이었던 것 같다고.

그게 싫어.

그게 싫은데 가마영감은 그래야 한 대.

난 부지깽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라는 거야.

발악해봐야 달라질 건 없대.”

그나마 깨끗한 티셔츠를 입혀 놓은 시체.

새벽이라 이름을 붙여 놓은 이 여자 앞에 앉아 주절주절 떠들고 있었다.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너무도 외로웠던 모양이었다.

죽은 시체일지언정. 마음이 간 탓에 마치 연인인 듯 친구인 듯 대하는 것이다.

“새벽아. 생각해봐. 내가 태어날 때부터 부지깽이는 아니었을 거잖아?

지금이야 그렇다 치는데 내가 죽을 때도 부지깽이면 안 되잖아.

그건 잘못된 거 아니야?

난 가마영감이 가마영감으로 죽었던 것처럼 그리되기는 싫다고.”

냉동창고의 한기가 싸구려 재킷 속을 파고들었지만, 꾸역꾸역 버티며 말을 이었다.

“난 언젠가는 여기서 나갈 거야.

닭 모가지가 아니라 그 돼지 새끼 모가지를 비틀어서라도.

너를 보니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새벽아. 나 좀 응원해줘라. 네가 응원해주면, 나 진짜 할 수 있을 거 같거든?”

새벽이의 파리한 얼굴을 한참 들여다봐도 대답은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난, 마치 새벽이가 성심성의껏 응원을 해주고 있는 것 같은 기운을 받았다.

그 덕에 실장이 왔을 때도 조금은 당당히 마주 할 수 있었다.

“시체는?”

“다 처리 했습니다.”

물론 냉동창고 안쪽엔 새벽이가 곱게 앉혀져 있었지만,

내 당당한 태도를 본 실장은 크게 의심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몇 개 없으니까 빨리 옮겨.”

실장이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태우는 동안 기운차게 시체들을 옮겼다.

“요새 좀 시끄러워졌어.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짭새 새끼들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니까 너도 조심해.”

뒷좌석에 있던 음식과 생필품들까지 내리자 실장은 그대로 떠나갔다.

“조심은 무슨... 천벌 받을 새끼들....”

차라리 경찰이 건달 새끼들을 전부 쓸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돼지 놈이 헐레벌떡 와서는 여길 다 정리하라고 하겠지.

그때 난 주저 없이 그 돼지 놈의 모가지를 비틀어 죽여버리고 그대로 가마 안에 처넣으면 된다.

그리고 난 여기 없었던 사람인 양 떠나서 부지깽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새 삶을 찾는 거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짐을 정리하다가

문득 가만히 멈추고는 냉동창고를 바라보았다.

“그럼 새벽이는?”

아무리 그래도 데려가는 건 무리다.

그렇다고 저대로 방치해 놓고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염해주자. 제대로 격식 차려서 잘 화장해준 다음에 유골 모아서 양지바른 곳에 뿌려주자.”

괜찮은 생각 같았다.

다른 고깃덩어리 마냥 바싹 태운 다음 대충 한 데 섞어다가 땅에 묻어버리는 게 아니라

제대로 항아리에 모아 담아서 잘 보내주는 거다.

다시금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난 바다가 좋아. 바닷가에서 방을 하나 얻는 거야. 뱃일은 내 성향에 안 맞고,

물건 떼다가 시장에 날라주는 일을 해야지.

힘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생선이든 짐짝이든 수레에다 싣고 날라서 돈을 받는 거지.

그러다가 돈을 벌면 오토바이 하나 사고.

어때? 괜찮지 않아?”

새벽이 얼굴에 낀 성에를 깨끗한 수건으로 문질러 털어내며 말했다.

다행히 아직 까지는 생전 모습 그대로 얌전하게 창고 한켠에 앉아있는 새벽이였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읍내 농협에서 일하는 젊은 아가씨랑 눈이 맞을지도 몰라.

그래. 딱 새벽이 널 닮은 예쁘장한 여자.

같이 시장 구경도 하고 바닷바람도 쐬고.

결혼하게 되면 해안 쪽에 작은 가게를 하나 내는 거야.

가게 이름도 생각해 놨어.

‘새벽이 오는 집’

네 이름을 땄어? 어때? 괜찮지 않아?”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이 망상은 날 움직이는 힘이 되어주었다.

이 모든 것들이 새벽이 덕분이었다.

내 외로움을 달래주고 말 상대가 되어주는 새벽이.

시체를 태우고 쓸쓸히 가마를 지키는 일일지언정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이 내적 평화마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야 이 새끼야 너 뭐해?”

갑자기 냉동창고 문이 열리며 실장이 들이닥쳤다.

오늘은 차 오는 날이 아니었을 텐데?

“실..장님?”

“너 뭐하냐고 묻잖아 이 새끼야? 그 시체는 또 뭐고.”

난 어버버 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아직 못 태워서... 이제 하려고..”

김실장은 새벽이의 모습을 훑어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저렇게 옷까지 입혀 놓고. 이제 태우려고 했다고?

가마는 다 꺼져있고, 불러도 대답 없어서 들어왔더니만.”

대답할 수 없었다.

“나와.”

얌전히 밖으로 나가자 곧바로 실장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야 이 또라이 새끼야.

내가 시체 제때제때 잘 처리하라고 했어 안 했어?

어딜 할 짓이 없어서 사람 시체랑 정분이 나?

어? 같이 불에 넣고 태워줘?”

새벽이와 대화하면서 몇 번이고 상상하던 모습은 보여줄 수 없었다.

실장의 주먹을 피해 가볍게 그의 목을 움켜잡는 내 모습 따윈 현실에 없었다.

그저 겁에 질려 웅크린 채 밟히고 있는 부지깽이만 있을 뿐.

잊고 있던 공포감이 다시금 피어오르자 비참함보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하겠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참이나 용서를 빌고 나서야 발길질이 멎었다.

“너. 지금 당장 저 시체 끌고 와.

내가 보는 앞에서 불구덩이에 처넣으라고.”

아파할 새도 없이 냉동창고로 뛰어 들어가 딱딱하게 굳은 새벽이를 꺼내왔다.

앉은 자세 그대로 얼어버린지라 이대로는 가마에 들어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뭐해? 안 들어가면 망치로 때려 부숴서라도 처넣으라고!

아님 네 대가리 먼저 깨줄까?”

화들짝 놀라며 망치와 톱을 집어왔다.

새벽이의 굽혀진 다리에 톱을 가져다 댄 순간.

망상 속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내게 미소 짓던 새벽이를 닮은 여인.

아니, 새벽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빨리 안 해? 아니 그래. 오늘 송장 하나 치루자 이 개새끼야.”

다가오는 실장의 발소리가 들린 그 순간,

옆에 있던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실장의 고개가 팩하고 꺾여 들어갔다.

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도 소름 돋는 감각은,

실장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임을 이야기해 주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이렇게 쉽다니. 그동안 날 괴롭히고 가둬둔 돼지의 결말이 고작 저거라니.

이리도 쉬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죽여버렸을 거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마음이 다급해졌다.

“새벽... 새벽이...”

마음 같아선 느긋하게 새벽이의 몸을 녹이고 정성스레 장례를 치른 뒤,

화장해서 유골을 수거하고 싶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새벽이를 그냥 두고 떠날 수도 없었다.

“새벽이 오는 집에 새벽이가 없으면 안 되잖아!”

실장 차의 뒷좌석에 새벽이를 고이 앉히고 안전띠를 채웠다.

가까이서 보면 알아채겠지만 멀리서 본다면 그리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짚이는 대로 음식과 물건을 싣고 실장의 제법 두툼한 지갑까지 꺼내어 차를 출발하고 나서야

슬슬 벅찬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꽁꽁 언 새벽이는 며칠 정도는 버텨 줄 것이었다.

커다란 냉장고를 구할지, 아니면 조용히 화장할 수 있는 곳을 찾을지는 나중 문제였다.

지금은 그저 새벽이와 함께 바다를 보고 싶었다.

“새벽아.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서 같이 한번 제대로 살아보자.”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