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치란 것이 그리 단순한 것입니다.”

기묘한 도롱이를 쓴 보따리장수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불행이 한번 오면 행운이 한번 오고, 행운이 한번 찾아온다면 다시금 불행이 달음질쳐 오지요.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단 거요?”

툴툴거리며 대답했지만, 이 장사치는 여전히 당당히 말할 뿐이었다.

“행운. 불행. 이것들이 번갈아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언제 무엇이 올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인위적으로 불행을 불러올 수만 있다면 내가 내킬 때 운수를 틀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운만 따라준다면 당신이 노름판에서 돈을 잃을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터무니없는 이야기란걸 잘 알지만, 쉬이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그때 운만 더 따라줬다면. 내가 좀 더 자신 있게 돈을 걸었다면.

그렇게 운 때문에 판을 말아먹은 것만 따져도 대략 밭 몇 마지기는 될 터였다.

“이것이 그 묘책입니다.”

장사치는 작은 묘목 하나를 내밀었다.

“이 나무는 불행목이라고 합니다. 조금만 가꿔준다면 하루에 몇 개씩이라도 열매를 맺지요.

그 열매를 먹는다면 얼마 안 가 당신에게 불행이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열매 하나 정도면 그저 발을 헛디뎌 생채기가 나는 정도로 별것 아니니까요.

다만, 그 작은 불행하나를 겪고 나면, 당신에게 무조건 적인 행운이 찾아옵니다.

일종의 액땜이지요.

혹 더 크고 대단한 행운을 얻고 싶으시다면 열매를 몇 개든 드시고 행운을 키우시면 됩니다.”

“그... 그래서 얼마요?”

장사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제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전 당신의 심장을 원합니다. 먼 훗날. 당신이 죽는 날.

그때 제가 당신의 심장을 가져가겠습니다.

이 불행목이 당신에게 끝없는 재물을 가져다줄 터이니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겝니다.”

“심장이라니.. 죽은 이의 심장을 어디에 쓰려고?”

“전 세상 모든 기이한 것들을 사고파는 장사치입니다.

이는 다 쓸모가 있어서니 크게 신경 쓰지 마시고 결정을 내리시지요.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찜찜함이야 있었지만 막대한 재물을 가져다준다 하니 못 이기는 척 묘목을 받아들 뿐 별수가 없었다.





“서방님! 열매가 열렸습니다.”

아내의 말에 부리나케 밖으로 튀어 나갔다.

과연 그 작은 나무에 어디서 그런 기운이 솟는지

기른지 며칠 만에 버찌같이 작은 과실이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옳거니! 너 이 열매는 절대 손대지 마라. 내 크게 돈벌어서 호강시켜줄 터이니.

그리고 장모님이 챙겨주신 돈 숨겨 놓은 거 있지. 그것도 내와.”

혹여나 떨굴세라 덜덜 떨면서 손톱만 한 것을 대여섯 개 따내었다.

“돈이라니…. 혹 다시 노름판에 가시려는 건지요? 그러지 마셔요.

이미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혹시 모르니 하나만 먹어볼까 싶었지만, 아내의 말에 열이 훅 뻗쳐 여섯 알 전부 입에 털어 넣고는 호통을 쳤다.

“우라질! 입에 풀칠하기 힘드니까 더 가야지.

어디 가서 포댓자루 몇 개 나른다고 돈이나 될 것 같아?

내조하려면 재주껏 자금이라도 융통해 오지 못할망정.

있는 돈도 숨겨대?

뭘 모르면 얌전히 방에나 들어앉아 있어.”

기어코 숨겨놨던 쌈짓돈까지 싹 끌어와서 기세 좋게 집을 나선 것까진 좋았으나,

너무 다급하게 나선 탓인지 논두렁에서 미끄러져 그대로 고랑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염병 맞을... 더럽게 아프네.”

그렇게 쏘아대긴 했지만, 웃음이 나오는걸 멈출 수는 없었다.

온몸이 아파오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데다, 옷까지 다 버렸지만,

이 불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큰 판... 큰 판으로 가야 된다.”

온몸에 느껴지는 고통이 다 돈이라 생각하니 서두르는 걸음에도 지칠 것이 없었다.





“내 뭐라 했어? 호강시켜준다 했지?”

아내는 줄줄이 엮어온 찬거리며 쌀 주머니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투전이란 게 그래. 운이랑 기세만 있으면 알아서 돈을 쥐여주는 게 투전판이라 이거야.

내 기세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사내니, 운만 조금 따라오면 이정도야 당연지사지.

자. 돈이라면야 얼마든지 있으니 어서 가서 한 상 푸짐하게 차려와!

술도 넉넉하게 떼오고. 이런 날 안 마시면 언제 마시나?”

기어코 비싼 돼지고기까지 끊어와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야 만족감이 몰려왔다.

만족감 뒤에 찾아온 것은 마땅한 기대였다.

지금은 자금도 있고 운도 따라준다. 그리고 기세도 좋으니 이걸 그냥 썩힐 이유가 없다.

그전에야 돈 떨어질 만하면 슬금슬금 찾아가던 투전판이지만,

지금은 과감하게 나서야 할 때였다.

해가 질 때까지 늘어지게 한숨 자고 난 다음, 불행 열매를 열 개쯤 집어삼키고 다시금 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후 무시무시한 행운과 또 그에 비하면 사소한 불행들이 찾아왔다.

열 개의 불행 열매는 씨암탉에 병아리까지 전부 채간 여우 놈으로,

스무 개의 불행 열매는 아내에게 지독한 고뿔로 돌아왔다.

하지만 괜찮다. 불행이 클수록 더 큰 행운이 찾아오니

가만히 들어앉아서 좋은 패를 받아들고 돈을 싹 쓸어오면 그만이었다.

몇 번의 투전에서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었지만, 슬슬 문제가 생겼다.

마르지 않을 것 같던 불행 열매가 슬슬 끝물을 보여서였다.

좋다는 거름도 줘보고 정성껏 돌봐보아도 더 열매가 열리지는 않는 걸 보니

지금 달린 게 전부인 듯했다.

대략 세어보니 쉰 개 남짓.

그전처럼 열 개 스무 개 나누어도 되겠지만,

보아하니 과실이 슬슬 곪아가는 듯하여 언제 땅에 떨어져 썩어버릴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 원래 한탕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 크게 걸어야 크게 먹지.

그까짓 불행쯤 기세로 버티고 운수만 뽑아가야지.”

쉰 개의 불행으로 어디 하나 부러진들, 누가 하나 실려 간들 뭐 어떠할까?

그 정도면 대궐 같은 집에서 온갖 산해진미를 즐기며 살 만한 돈을 벌 게 틀림이 없었다.

때문에 모든 불행 열매를 한입에 털어놓고는 천천히 주변을 돌았다.

혹여나 무너질까 싶어 방안에도 못 있고, 벼락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밖에도 못 있고.

나무 밑으로 피했다가, 넘의 집으로 들어갔다가, 한창 안절부절못하고 있자니 문득 아내 생각이 났다.

“혹시 이거.....”

다급히 방문을 열어보니 역시나 아내는 방안에 눈을 까뒤집고 고꾸라져 있었다.

숨은 붙었는지 움찔거리는 것이 어찌 손을 써볼 수도 있었지만,

다급히 의원을 부르는 대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마누라 살린다고 이 귀하디귀한 운수를 전부 써버릴 수는 없다.

세상 두 번은 없을 마지막 기회를 고작 그렇게 날릴 수는 없으니 일단 돈부터 따고 나서 생각하자.

그리 다짐하고는 서둘러 노름판으로 향했다.









“어째 관이 두 개나 있는 것입니까?”

도롱이를 걸친 나그네가 묻자 마을 청년이 대답해 주었다.

“부부입니다. 참 기구한 것이 한날에 운명을 달리했지요.

아내는 병으로 경기를 일으키다가 끝내 숨이 멎었고, 서방은 요괴한테 당했답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이 심장 뜯어먹는 요괴라도 다녀간 모양이랍니다.

내 참. 이 동네에 요괴라니.

듣자 하니 요새 들어 서방이 큰돈을 벌어와서 잘살 일만 남았었다던데,

하여간 사람일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습니다.”

나그네는 별다른 표정 없이 묵직해 보이는 등짐을 고쳐매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욕심 그득한 인간의 심장은 요괴들이 탐내는 먹잇감이지요.”

청년은 끄덕이며 혀를 찼다.

“또 환약으로 만들어 사람에게 먹이면 훌륭한 요괴로 만들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나 나그네의 뒤이은 그 말은 청년의 귀에 들리지 않은 듯했다.




By. neptunuse